야근하는 나무·재충전 잡초…풀의 시선으로 세상보기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원더 풀 월드, 김제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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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삭물과 나무를 사람의 시선이 아닌 자연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야근’(아래)와 ‘재충전’ |
5월을 지나며 산과들의 초목들이 무성해지고 푸르러진다. 초여름으로 접어들면서는 그 색깔이 더욱 짙어지고 특유의 싱그러움을 발한다.
사실 익숙한 나무들과 꽃들을 보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루하루 도시생활에 지쳐 생활하다 자연이 있는 곳을 찾다보면 스트레스와 피로가 씻겨가는 느낌이다.
‘잡풀’이라고, 전혀 쓸모없는 식물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편견일지도 모른다. 인간 중심주의, 강자의 논리가 만들어낸 일방적 시각일 수도 있다. 김제민 작가의 ‘원더 풀 월드’를 읽고 나면 그동안 가졌던 풀에 대한 편협한 생각은 교정할 필요가 있겠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시각예술가이자 교육자인 저자는 다양한 자연 그 가운데에서도 식물에 관심이 많다. 식물을 관찰하고 촬영하며 그리며 이런 과정에서 스스로를 사유한다. 그의 표현대로 “얕은 지식과 썰렁한 유머를 무기 삼아 소소한 식물을 소재로 인간 사회에 일침을 가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저자가 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만학도로 미술을 배우기 위해 화실에 들렀을 무렵이었다. 아무 그림이나 그려오라는 선생님의 말에 따라 길거리 모퉁이 사이로 삐져나온 잡초를 그렸다. 그림을 보고 선생님은 이렇다 할 말씀이 없었고, 저자도 그림을 한곳에 처박아놓고 관심을 두지 않았다.
미대 4학년 졸업전을 앞두고 수풀을 찍었고 그 이미지가 가슴에 와 닿았다. 어릴 적 북한산 인근에 살았기에 접했던 자연은 그의 내면에 남다른 감성을 선사했고 서로 다른 이종이 어울려 사는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졸업전 때 자화상과 ‘Heterogeneous’라는 작품을 내걸었는데 공통점이 없는 두 그림이 자화상이었다고 고백하는 부분은 사뭇 이채롭다.
언급한 대로 책은 풀이 바라보는 시선으로 기술돼 있다. ‘야근’이라는 작품은 풀이 밤중에 일을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대학원 졸업 후 조교를 하던 무렵, 학과 사무실에 있던 큰 나무 화분이 모티브가 됐다.
일이 많거나 급히 처리해야 할 경우에는 부득이하게 야근을 해야 했다. 일에 매달려 있는 동안 나무는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들고 형광등 불빛으로 광합성을 해 소량의 산소를 만들어낸다. ‘야근’은 나무가 사람과 똑같이 사무용 의자에 앉아 근무를 하는 장면을 초점화했다. 사무용 의자에 앉아 가지를 뻗어 마우스를 잡고 있는 모습은 당시 일에 파묻혀 있던 작가의 모습을 대변한다.
잡초와의 인터뷰를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도 있다. ‘비인간’ 존재와 공감하고 소통하기 위한 차원으로 식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감정을 이입해 본 것이다. ‘잡초와의 인터뷰 Ⅰ-당신이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입니까?’는 희극적이면서도 심오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풀이 공포에 질릴 수 있게끔 잡초 제거 도구가 주변에 놓여 있다. 뽑고 끊고 파내는 도구에서부터 아예 불에 태워버릴 화염방사기까지 비치돼 있다.
‘잡초와의 인터뷰 Ⅱ-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는 잡초의 관점에서 바라는 삶의 모습을 묘사했다. 어떤 풀은 선베드에 누워 음료를 마시고 휴가를 떠나거나 연인과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고급스러운 도자기 화분에 담긴 난초는 ‘신분상승’을 학수고대한다. 풀을 의인화했을 뿐, 그림은 모두 인간이 원하고 추구하는 삶의 모습들을 반영한다.
저자는 식물에 대해 “제멋대로 뻗어 나가는 것 같지만 실은 주어진 조건 속에서 법칙과 질서를 따라 성장하고 움직인다”고 언급한다. <목수책방·1만7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