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누비며 얻은 요리 실력, 한 그릇에 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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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누비며 얻은 요리 실력, 한 그릇에 담았죠”
광주 동명동 전통주점 ‘우’ 김지열 셰프
호주·독일서 요리 배우고 주인도한국대사관 주방장…장관 표창
전통주 제조 클래스·요리 이벤트도…“남극요리사 꼭 이루고파”
2025년 06월 10일(화) 19:55
광주시 동구 동명동에서 전통주점 ‘우’를 운영하는 김지열 셰프.
“세계를 누비며 얻은 경험과 사람, 그 모든 게 다 결국 삶의 재료가 됐어요.”

완도 소안도에서 나고 자라 호주와 독일, 인도 대사관 주방까지 세계를 누비던 김지열(32) 씨는 1년 전 인수한 광주 동명동의 전통주점 ‘우’에서 자신의 경험을 한 그릇에 담고 있다.

김 씨는 학교 급식조리사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일찌감치 요리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중학생 때 이미 완도 바다에서 바지락을 캐다 칼국수를 끓여 먹는 등 자급자족이 일상이었던 그는 자연스레 곡성 조리과학고등학교 조리과 진학을 선택했다.

그는 미래 요리사들의 치열한 경쟁 속 기초를 배우고 현장실습을 통해 내실을 다졌다. 하지만 장시간 노동과 낮은 급여, 나이 중심의한국 주방 문화에 답답함이 생겨 해외 경험을 꿈꾸게 됐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나이가 어리면 기회가 잘 안 와요. 해외에선 실력과 열정만 있으면 얼마든지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게 새로웠죠.”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호주 브리즈번 한인 식당에서 매일 18시간씩 3개월간 일해 돈을 모은 그는 어학원을 다니며 영어 실력을 쌓아 현지 레스토랑으로 옮기고서야 주방장급 대우를 받았다. 국내 복귀 후에도 한국 고용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성장에 목말랐던 그는 영화를 비롯한 각종 광고·드라마 촬영 현장을 누비는 푸드스타일링 회사에서도 일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길은 요리임을 깨닫고 독일로 건너갔다.

독일의 한식당 주방장으로 일하며 현지 직원들과 수평적으로 소통하고, 휴일마다 각국을 여행하며 다양한 식재료와 조리법을 익혔다. 그 경험 속에서 요리사로서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한 그는 국내로 돌아오기보다 더욱 넓은 무대로 나아가기로 결심한다.

김 씨는 주인도한국대사관 한식 셰프로 근무하던 2022년 외교부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김지열씨 제공>
이 무렵 인도 뉴델리 주인도한국대사관 한식 셰프로 선발된 그는 5년간 대통령·외교부 장관 만찬, G20 등 굵직한 국제 행사를 이끌며 2022년 외교부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인도 주방의 계급 문화, 각자 맡은 일 외엔 움직이지 않는 현지 직원들 속에서 300인분을 혼자 준비하는 고비도 넘겼다.

“함께 일하는 법을 몸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었죠. 설거지와 청소도 주방장인 제가 먼저 하고 나서니 조금씩 분위기가 바뀌었어요.”

코로나19가 덮친 뒤에는 SNS에 한식 요리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다. 힌디어, 영어로 만든 요리 영상이 주목받으면서 현지 셰프·기업·호텔 등 네트워크도 확장했고, 인도 유일의 한국인 셰프로 이름을 알렸다.

긴 해외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건 ‘계기 없는 우연’에서 비롯됐다. 대사관 셰프 일을 마친 2024년, 우연히 부동산 매물 사이트에서 지금 가게의 인수자를 찾는 글을 발견했다.

지금 운영하는 가게명 ‘우(遇)’에는 ‘다시 만남’이라는 뜻을 담았다. 김 씨는 “이곳이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는 공간이길 바란다”고 말한다.

그는 막걸리와 전통주 제조 클래스, 요리 이벤트 등 가게를 놀이터 삼아 다양한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다양한 나라의 주방과 시장에서 만난 재료, 문화, 사람들 덕에 인생의 절반을 요리만 한 그의 인생은 예측불허의 연속이었다.

김 씨는 “훗날 반찬가게, 해외 한식당, 자체 요리 클래스 등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그중에서도 남극에서 요리하는 ‘남극요리사’는 언젠가는 꼭 이루고 말 버킷리스트”라고 의욕을 드러냈다.

“당장의 목표는 ‘우’를 문제없이 잘 운영하는 일이지만, 훗날 또 제가 어디에 꽂힐 지 모르겠어요. 적어도 지금 이 공간에서는 내가 해왔던 경험과 스펙, 능력을 100% 쓸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이 늘 샘솟는다는 사실만으로 저에겐 더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거죠.”

/글·사진=서민경 기자 mink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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