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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종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연구실장] ‘하늘과 땅 사이’
2019년 11월 05일(화) 04:50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이 무엇일까. 강연균 화백은 ‘하늘과 땅 사이’라고 말한다.

강 화백은 한국을 대표하는 수채화 화가 중 한 분이다. ‘계간미술’ 1981년 봄호에서 소설가 문순태는 그의 작품 세계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한국 수채화의 거장 강연균의 그림 속에는 그가 겪어 온 슬픔과 번민과 분노가 맑은 빛깔로 응결되어 있다. 그리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음악으로 흐르고 있다. 그는 외형의 껍질을 벗기고 가장 깊숙한 곳에 감추어진 본질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광주 토박이로 평생 광주에서 살고 있다. 그의 초기 작품은 맑고 서정적이다. 그러나 고향에 깔린 향토적 서정을 사실적으로 그려 내던 그도 80년 5월을 비껴가지는 못했다.

한국 예술가들이 80년 5월을 기점으로 심미적 관점보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더욱 더 고민하기 시작했듯이, 5·18의 현장을 목격한 그는 그날의 참상과 기억을 그려 내기 시작한다. 5·18 직후 붓을 잡아 몇 번이나 캔버스를 뜯어 낸 끝에 완성된 그림이 한국의 게르니카 ‘하늘과 땅 사이 1’(1981)이다. 서울 신세계백화점 미술관에 전시된 이 그림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하늘과 땅 사이 1’


이 작품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 가장 큰 절규, 가장 큰 비원이 녹아 있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이 ‘하늘과 땅 사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천지지간 만물지중 유인최귀’(天地之間萬物之中惟人最貴: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모든 것 중에 오직 사람이 가장 귀하다). 그 후 그는 ‘하늘과 땅 사이’를 연작으로 4편까지 그려 내었다.

1995년 안티비엔날레 만장전(‘하늘과 땅 사이-4’)을 끝으로 연작을 중단했던 강연균 화백은 5·18 40주년을 앞두고 ‘하늘과 땅 사이-5’를 선보일 예정이다. 오는 11월 7일 목요일 오후 4시, 광주 금남로에 위치한 역사적 장소 5·18기록관에서 신작 일곱 점을 공개하는 것이다. 이 작품들 역시 80년 5월 광주 이야기다. 이날 기록관에서는 작가로부터 작품에 얽힌 사연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도 마련된다.

강연균 작 ‘박용준의 피’


작가는 그림을 5·18 사진이나 영상을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간직해 왔던 감정과 인상을 바탕으로 그려냈다고 한다. 5월 27일 새벽 YWCA에서 산화한 시민군을 떠올리며 그린 ‘박용준의 피’ 같은 작품이 그것이다. 이들 작품에는 지금까지도 우리의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아무리 잊으려고 애를 써도 사라지지 않는, 학살의 참상들과 그날의 기억이 담겨 있다.

기억은 어떻게 그림이 되는가. 사람들은 대개 가장 절실했던 때를 기억하고, 화가는 자기가 목도했던 바로 그 시대를 그린다. 멀리 있는 것을 그리지 않고 늘 주위에 있는 것을 그렸던 사람. 사회과학 책이 아니라 길바닥에서 시대의 아픔과 역사를 배우고 그렸던 사람. 그가 바로 강연균 화백이다. 동시대에 살면서 그런 그의 생각을 들어 보고, 게다가 그의 새 그림까지 만나 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는 것은 또 얼마나 다행스럽고 행복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