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C 야외 쉼터’가 반가운 까닭은 - 박진현 문화·예향담당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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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 야외 쉼터’가 반가운 까닭은 - 박진현 문화·예향담당 국장
2025년 05월 14일(수) 00:00
유럽의 도시들을 여행하다 보면 부러운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100년을 훌쩍 넘은 건축물, 세기의 명작들로 가득한 미술관, 햇볕을 쬐며 커피를 즐길 수 있는 노천카페들이다. 국내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이국적인 풍경은 이방인의 마음을 설레이게 한다.

하지만 기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건 따로 있다. 번잡한 도시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공원과 벤치다. 수많은 인파와 온갖 소음들로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질 무렵, 마치 사막 한 가운데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 마냥 반갑다.

3년 전, 취재차 방문한 체코의 프라하가 그랬다. 동유럽의 보석으로 불리는 체코의 프라하는 세계적인 관광지라는 명성과 달리 ‘정겨운 동네’ 같았다. 프라하의 예술가 공간들을 둘러 보느라 하루에 2만 보 이상을 걷는 빡센 일정이었지만 피곤함을 느끼기 힘들었다. 바로 도심 속 공원과 벤치 덕분이었다.



삶의 질 높이는 공원과 벤치

기자가 머문 숙소에서 5분 거리인 공원은 멍때리기의 최적지였다. 연못 앞 벤치에 앉아 사색을 하거나 잔디 위에 엎드려 책을 읽는 시민들의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독일의 문화도시로 꼽히는 뮌헨은 프라하와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관광 1번지인 마리엔 광장에는 유독 벤치가 눈에 많이 띄었다. 일년 내내 시민들과 관광객들로 북적이지만 핫플레이스 앞이나 도로 옆에 자리한 벤치에 앉는 순간, 호젓한 숲 속으로 들어가는 듯 했다. 흡사 고즈넉한 카페에서 창밖을 보며 활기찬 거리의 풍경을 감상하는 것 처럼 말이다.

얼마 전, 광주에서 이들 도시와 오버랩되는 현장을 목격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과 장동 로터리 사이에 들어선 ‘야외 쉼터’다. ACC가 도심 속 휴게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40여 개의 나무 탁자와 벤치들로 꾸민 이 곳에 10여 명의 시민들이 앉아 대화를 나누며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야외쉼터 앞에 설치된 7.2m 높이의 화강석 조형물 ‘ACC 마운틴’(우고 론디노네 작, 2017년)을 신기한 듯 바라봤다.

지난해 9월 광주 북구 중외근린공원에 둥지를 튼 ‘아시아 예술정원’(5만6200㎡ 부지)도 비슷한 곳이다. 지난 2020년 광주시립미술관, 광주비엔날레, 예술의전당, 역사민속박물관 등 지역의 대표 문화시설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기 위해 총 사업비 190억 원을 들여 완공한 녹색공간이다.

메인 시설인 ‘미술관 옆 문화정원’은 아시아 경관을 테마로 중앙아시아 초지 경관을 모티브 삼은 그라스 가든, 서아시아 사막을 재현한 드라이 가든, 동남아 우림을 표현한 쉐이드 가든 등으로 꾸며졌다.

사실, 도시의 품격은 화려한 인프라에서만 나오는 건 아니다. 굳이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카페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숲이나 공원, 벤치 등에서 편히 쉴 수 있는 ‘소소한 공간’들이 많아야 ‘살기 좋은 도시’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서울시와 경기도가 ‘걷기 좋은 도시, 서울’, ‘쉼이 있는 도시공간’을 내걸고 산책로와 공원, 벤치 등을 늘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공원도시, 문화광주의 미래다

그러고 보면 광주는 ‘아시아의 문화허브’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만큼 삭막하기 짝이 없다. ‘광주의 랜드마크는 아파트’라는 쓴소리가 말해주듯 도심 곳곳은 재개발사업으로 건립된 수천 세대의 아파트가 빽빽하게 들어서 도시 미관을 헤치고 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최근 광주시가 ‘도심 속 공원’을 모토로 최대 도심 공원인 중앙근린 공원을 전국 최초의 국가공원으로 지정받기 위해 팔을 걷고 나섰다. 서구 금호동·화정동·풍암동·남구 주월동 일대를 아우르는 중앙근린공원이 국가도시공원으로 지정되면 ‘공원도시 광주’라는 브랜딩과 관광,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할 수 있어서다.

특히 광주는 무등산국립공원과 무등산권국가지질공원, 국가도시공원 등 3대 국가공원을 보유한 유일한 도시로, 만약 국가공원 지정을 통해 자연경관과 역사·문화유산을 인정받는 다면 도시공원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된다.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정치력과 행정역량이 뒤따라야 하는 이유다.

제21대 대통령선거가 20일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달 초, 광주시는 지역발전 3대전략을 ‘인공지능(AI)·문화·서남권 시대’로 설정하고 각 당의 대선 전략에 반영할 ‘광주공약’을 제안했다. 이들 3대 공약은 광주의 미래 먹거리라는 점에서 이론의 여지가 없다. 무엇보다 ACC의 도시, 비엔날레 도시, 노벨상의 도시,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 등 ‘팔색조’의 광주는 이들 역사·문화자산을 도시발전의 성장축으로 활용한다면 경쟁력 있는 글로벌 문화도시로 거듭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같은 메가 프로젝트나 최첨단 미래 산업이 꽃을 피우기 위해선 삶의 질을 높이는 공원이나 광장, 벤치 등을 확대하는 도시 공간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중앙근린공원이 제1호 국가도시공원으로 지정받을 수 있도록 대선 공약과 연계시키는 등 지역의 모든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공원도시 광주’는 문화도시의 또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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