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는 복구되지 않는다…SKT 사태의 대가- 박 진 표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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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는 복구되지 않는다…SKT 사태의 대가- 박 진 표 경제부장
2025년 04월 30일(수) 00:00
지난 28일 이른 아침, 광주 도심 SK텔레콤(SKT) 대리점 앞에는 이례적으로 긴 대기 행렬이 이어졌다.

유심(USIM) 무상 교체가 시작되자 시민들이 몰려들었지만, 상당수는 허탈한 표정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준비된 유심 수량은 수요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했고 온라인 예약 시스템은 개시와 동시에 마비됐다. 거대 통신사가 위기 상황을 얼마나 안일하게 인식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표면적 혼란 이면에 더 심각한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SK텔레콤은 지난 18일 유심 정보 일부가 해킹으로 유출된 사실을 인지했는데도 공식 발표까지 열흘 가까운 시간을 소요했다.그 사이 이용자들은 아무런 경고도 받지 못한 채 개인정보 유출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



공짜폰으로 무너진 신뢰 회복 힘들어

통신 서비스는 현대사회에서 물과 전기처럼 필수적인 기반시설이라는 점에서 이번 SK텔레콤의 늑장 대응은 사회적 책무를 방기한 중대 과오로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특히 유심 정보는 단독으로는 금융 사고를 직접 유발하지 않지만 다른 개인정보와 결합될 경우 심각한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주민등록번호, 주소, 이름 등이 함께 유출될 경우 계좌 탈취나 신용사기 등으로 급속히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SK텔레콤의 대응은 한심하다 못해 어이가 없을 정도다. 사건 초기부터 “실질적인 피해는 없다”는 메시지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소비자 보호보다 기업의 이미지 관리에만 신경 쓰는 모습이다.

이번 사태는 SK텔레콤이 고객을 어떤 존재로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전국 2600여개 대리점에서 무상 교체를 진행했지만 준비된 유심 수량은 전체 교체 대상자의 5%에도 못 미쳤다. 광주지역 대리점들도 초도 물량이 소진되면서 시민들은 긴 대기 끝에 허탈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SK텔레콤은 자사 가입자 2300만명과 알뜰폰 이용자 187만명을 포함해 약 2500만명이 유심칩 교체 대상임을 알고 있었지만 초도 준비 물량은 고작 100만개 뿐이었다. 뒤늦게 5월 말까지 500만개를 추가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긴 했지만 이마저도 초기 혼란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SK텔레콤은 고객 이탈 등으로 사태가 확산하자 파격적인 판매 전략까지 동원하고 있다. 갤럭시 S25 모델을 번호이동 고객에게 5만원대에 제공하거나, ‘공짜폰’을 내세우는 방식이다.



기술적 오류라며 본질 외면 안돼

그러나 소비자가 바라는 것은 최신 기기 공짜폰이 아니다.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내 개인정보가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다는 확신이다. 정보 유출 사태가 SK텔레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소비자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최근 콜센터 운영업체 KS한국고용정보, 대형 법인보험대리점(GA) 등에서도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다크웹에서는 이 데이터가 20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제부터라도 정부와 기업이 함께 해킹에 대비한 보안 예산 지원과 전문 인력 파견, 정기적 점검 체계 등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 특히 기업들은 기술적 조치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투명한 정보 공개, 신속한 사고 통지, 실질적 피해자 구제라는 세 축을 기반으로 신뢰 회복에 나서야 한다.

또한 이번 사태를 단순한 기술적 오류로 축소해 문제의 본질을 외면해서도 안된다. 기술은 빠르게 복구할 수 있지만 무너진 신뢰는 수십 년이 지나도 쉽사리 복원되지 않기 때문이다.

SK텔레콤 역시 이번에 상실한 것이 단순한 가입자 수가 아니라 브랜드를 지탱해온 ‘신뢰’ 그 자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 SK텔레콤이 해야 할 일도 명확하다. 피해자 앞에 투명하게 서고 실질적 구제와 신뢰 회복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SK텔레콤이 이번에 잃게 될 것은 단지 고객 수가 아니라 통신 시장에서의 존재 이유 그 자체가 될 게 분명하다.

경제와 신뢰의 관계에 대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케네스 애로는 “신뢰는 모든 경제활동의 윤활유다. 신뢰가 없으면 교환과 계약은 무너진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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