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단상(斷想)-오광록 서울취재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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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단상(斷想)-오광록 서울취재본부 부장
2025년 05월 02일(금) 00:00
선거철, 서울 국회의사당 인근에서는 이사가 잦다. 전통적으로 선거 캠프로 활용하는 여의도 건물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가까운 거리에서 각 당 후보들이 ‘이사 전쟁’을 치러야 한다. 선거 캠프를 새로 차리거나 낙마한 뒤 캠프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에 선거철만 되면 이사가 빈번하다. 도로변 주정차가 금지돼 있는 건물 입구에는 사무용품을 쌓아둔 채 화물차를 기다리는 경우도 잦다.

특히 대통령선거를 준비하는 캠프는 인력도 많고 사무용품도 다양해 이삿짐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최근 경선을 마친 더불어민주당과 막바지 경선을 진행하고 있는 국민의힘 대선 주자들은 당락에 따라 사무실 짐을 처분하거나 살림을 늘리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삿짐을 보면 ‘어느 캠프가 방을 뺐는지’도 알 수 있다.

재미 있는 것은 여의도 이삿짐에는 ‘표정’이 있다는 것이다. 정당 경선에 승리하거나 당선돼 국회나 대통령실 등지로 이사를 하기 위해 짐을 빼는 경우는 왠지 모르게 활기가 느껴진다. 반대로 낙마한 캠프 이삿짐은 어수선해 보인다. 관계자들도 거의 볼 수 없고 이삿짐센터 직원들만 분주하게 움직인다.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삿짐도 초라하게 쌓여있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선거 이후에는 패배한 정당 사무실에서 내놓은 책상과 의자의 숫자를 일일이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로 많고 어수선하다. 보고있자면 “저 많은 수의 의자 만큼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의자’에는 권력의 의미가 담겨있다. 고대에는 대성당이라는 의미가 있었고 ‘의장’을 뜻하는 ‘체어맨’이란 단어에도 의자의 의미가 포함돼 있다고 한다. 심지어 은행도 의자와 연관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영어 ‘뱅크(Bank)’가 공원에 놓인 ‘벤치(Bench)’와 어원이 같다는 것이다. 과거 신전 앞 마당 벽에 고정한 탁자와 의자가 있었고 이 곳 의자에 앉아 돈을 빌려주고 받았다. “의자를 뺀다”는 말에는 해고의 의미가 담겨 있다. 여의도 사무실 이사 풍경은 일종의 권력 이동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의자를 빼는 주체’가 국민이라는 것이다.

/kro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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