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상무대, 역사적 군사 요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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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상무대, 역사적 군사 요충지”
향토사학자 김정호 씨 발품 팔아 ‘요새의 땅, 광주 상무대’ 펴내
6·25 때 포로수용소 설치 등 역사와 결부된 희로애락 담아
2023년 12월 11일(월) 20:20
5·18자유공원으로 옮겨진 상무대 표지석. <심미안 제공>
“광주가 ‘5·18항쟁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만큼 ‘상무대’에 대해서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군과 관련한 아픔이나 혐오 때문인지 상무대의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노(老) 향토사학자의 말을 듣고 뜨끔했다. 광주에서 상무대는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지역임에도 정작 상무대에 대해 많이 알고 있지 않아서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특히 남자들에게 상무대는 청춘의 시절 군과 관련된 추억들이 있는 곳일 뿐이었다.

그러나 상무대는 경제적 비중 등 여러 관점에서 광주가 성장하는 데 중요한 모티브가 됐던 지역이다. 또한 “역사적으로 삼국시대와 고려, 조선, 일제 강점기와 해방 이후에도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했다.

김정호 씨
언론인 출신 김정호(85) 향토사학자(전 진도문화원장)가 ‘요새의 땅, 광주 상무대’(심미안)를 펴냈다.

김 원장은 “군사시설이 철수한 후 시민들이 들어가 살기 시작한 지 30년이 가까워 오는 데도 이곳 옛 군사시설 내용은 아직도 공개 불가다”며 “설사 광주 상무대에 관계된 자료들이 보안에서 해제되었다 하더라도 현재 이 업무를 보고 있는 장병들이 광주 상무대 시절 이후에 태어난 탓에 30여 년 전 일에 대해서는 서름서름한 것이 문제였다”고 말했다.

그는 2~3년간 발품을 팔아가며 때로는 택시를 타고 현장을 답사했다. 혼자 자료를 모으고 현장을 확인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군에서는 아직도 보안이 안 풀렸다는 이유로 자료 공개를 안 해 책을 쓰는데 적잖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후백제시대 견훤이 왕건과 전쟁을 벌이던 장시 중간 지역이 바로 상무대입니다. 지금의 운암동에 후백제가, 왕건은 지금의 서창인 벽진에 주둔했지요. 상무대는 중간목이었던 셈이죠.”

김 원장에 따르면 조선시대 때 상무대가 있던 곳은 군분면(軍盆面)에 속해 있었다. 군분면은 지명이 뜻하는 것처럼 ‘군대를 주둔시키는 요새’라는 의미다. 또한 “무각사라는 절이 있는 망덕산 자락에는 쌍촌동 노치(老雉)마을이 있었는데, ‘치’(雉)는 성 ‘치’자로 옛 성이 있었다”며 “망덕산 그리고 농성동에서 화정동까지가 당시 군분면에 속해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 고려 때는 광주가 왕건의 미움을 사서 광주가 크게 쓰임받지 못했다. 왕건의 두 번째 처가 고을 나주가 우대를 받는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김 원장은 또한 광주 행정의 중심 동네인 치평동은 “조선시대에는 내정면(內丁面)이라 부르던 강변의 평촌과 하촌 두 동네와 하촌의 언덕바지에 있던 군분면의 노치 동네를 합해 만든 이름”이라고 했다. 내정은 내의 안쪽이라는 뜻이다. 그에 따르면 오늘의 치평동은 1914년 일본 통치자들이 새로 만든 행정 동네 이름인 셈이다.

일제강점기인 1937년 조선총독부는 광주군 극락면 영산강변에 비행장을 건설하라는 긴급 지시를 내린다. 조선시대 이름(내정면과 군분면)을 버리고 극락면이라는 새 이름이 붙여진데다, 극락면 영산강변에 비행장을 건설함으로써 군용징발을 용이하게 하려는 속셈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6·25 때는 상무대에 포로수용소가 있었습니다. 광주는 군사시설과 비행장이 같이 있어서 당시 비행장은 상무대포병학교 항공과 훈련비행장이자 부산에 있는 미군이나 고문단이 해운대비행장에서 비행기를 타고 광주로 올 때 사용하는 군용비행장으로 쓰이고 있었지요. 이 비행장은 철조망이 민간 출입을 가로막아 비행장 끝부분 활주로와 공지에 텐트를 치고 포로를 수용했습니다.”

저자는 “무생물인 땅에도 천부의 권리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땅도 혼이 있다. 생명은 사람이나 무생체인 흙이나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저자는 책을 쓰기 위해 1997년 간행한 ‘광주시사’ 제9장의 ‘군사’, 1996년 전남대박물관이 용역을 맡아 쓴 ‘상무대 개발지구 조사보고서’를 참조했다.

한편 진도 출신인 김 원장은 향토문화진흥원장, 전남도 문화재위원, 진도문화원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영호남의 인문지리-동서 지역갈등의 사회사’, ‘한국의 귀화성씨’ 등을 펴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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