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감독·무명 선수…광주FC가 쓰는 ‘가을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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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감독·무명 선수…광주FC가 쓰는 ‘가을동화’
2부리그서 승격 팀 기적의 질주
시민구단 한계 정신력으로 극복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무대 도전
화끈한 축구에 ‘티켓 구하기 전쟁’
2023년 10월 22일(일) 20:30
광주FC의 이정효 감독(앞줄)이 지난 21일 광주축구전용구장에서 열린 울산현대와의 경기가 1-0승리로 끝난 뒤 이희균(왼쪽부터), 하승운, 이건희, 이강현, 김승우와 밝은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김여울 기자 wool@kwangju.co.kr
프로축구계에서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광주FC(이하 광주)가 ‘불가능’을 가능성으로 만들고 있다. 기적같은 행진으로 희망과 열정의 아이콘이 되면서 지역민들과 축구팬들에게 뜨거운 응원을 받고 있다. <관련기사 18면>

광주는 지난 21일 광주축구전용구장에서 열린 ‘1위’ 울산현대와의 K리그1 파이널A 34라운드 홈 경기에서 후반 42분 나온 이건희의 골로 1-0 승리를 거뒀다. 승점 3점을 더한 광주는 2위 포항스틸러스를 2점 차로 추격하면서 3위를 넘어 그 이상의 성적을 바라보게 됐다.

시작은 미약했다.

광주는 지난해 2부 리그인 ‘K리그2’에서 최다승·최다승점 기록을 갈아치우고 ‘우승팀’ 자격으로 1년 만에 1부 리그인 ‘K리그1’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지난 2월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광주를 주목하는 이는 없었다. ‘디펜딩 챔피언’ 울산과 ‘우승 후보’ 전북현대에만 눈길이 쏠렸던 이날 광주의 이름은 언급도 되지 않았다.

광주 이정효 감독은 K리그2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긴 했지만, 사령탑 2년 차이자 K리그1 데뷔를 앞둔 ‘초보 감독’이었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즐비한 ‘올스타 군단’들과 비교하면 광주에는 흔히 말하는 특급 선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정효 감독은 이 자리에서 “잔류가 목표가 아니다. 광주만의 색을 내면서 소신을 꺾지 않고 우리의 색 그대로 밀고 가겠다”고 밝혔고, ‘주장’ 안영규도 “마지막에 웃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현실이 됐다.

광주는 시즌 초반 방심한 상대들을 잇달아 제압하며 거센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광주 경계령’이 떨어지면서 4경기에서 승리를 신고하지 못하는 등 위기의 순간도 맞았다. 거침 없던 ‘이정효표 공격 축구’가 시험대에 올랐지만 광주는 ‘광주 스타일’을 고수했다.

대신 더 세밀하게, 더 공격적으로 뛰면서 상대를 압박했다. 그 결과는 2020년 이후 팀의 두 번째 파이널A였다.

강원FC와의 33라운드 정규리그 최종전 1-0 승리로 올 시즌 K리그1의 유일, 팀 첫번째 K리그1 전 구단 상대 승리 기록도 만들며 3위로 파이널A 무대에 올랐다.

파이널라운드를 앞두고 진행된 미디어데이에서는 광주의 위상이 달라졌다. 광주는 강팀들이 꼽는 난적이 됐고, 이정효 감독은 “시끄럽고 야단스럽게 여기에 올라왔다. 파이널A에서도 시끄럽게 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예고대로 파이널A 첫판이었던 울산전 1-0 승리로 광주는 이번 라운드에서 가장 요란한 팀이 됐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티켓이 주어지는 3위를 넘어 2위까지 가시권에 둔 광주가 됐다. 시민구단의 한계를 깬 놀라운 여정이다. 열악한 인프라 때문에 선수들이 시즌 내내 “마음 놓고 훈련하게 해주세요”라고 하소연을 할 정도였지만 광주는 ‘꺾이지 않은 마음’으로 만든 실력과 정신력으로 이를 극복했다.

이정효 감독의 리더십도 빛났다. 그는 경기가 끝난 뒤에는 정 많은 ‘형님’이지만 그라운드에서는 승부사이자 독사다.

베테랑 안영규도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선수들과 감독은 매 경기 성장했다. 자신감을 얻은 선수들에게 더는 ‘강팀’이 없다.

지난 21일 울산전이 끝난 뒤 이정효 감독은 “전반 끝나고 선수들에게 ‘재미있냐?’고 물었다. 얼굴이 정말 즐거워 보였다”고 이야기했다.

광주의 공격 축구에 울산도 응답하면서 두 팀은 뺏고 뺏기는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고, 광주는 주축 선수들이 대거 빠진 상황에서도 승리를 만들었다.

‘핑계’없던 광주가 만든 탄탄한 힘도 엿볼 수 있다. 선수층이 얇다는 평가 속에 시즌을 시작했고, 주축 선수들의 부상도 이어졌지만 광주는 안정적으로 전력을 유지하면서 순위 싸움을 이어왔다. 선수들 면면에 맞춰 잠재력을 끌어낸 이 감독은 효율적으로 선수들을 기용하면서 성적과 성장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

모두가 주전이고, 모두가 공격수이자 수비수가 되는 ‘원팀’. 광주는 성적과 함께 팬들의 마음도 얻었다. 지키면서 만든 자리가 아니다. 광주는 “팬들을 위한 플레이”를 강조하면서 끝까지 상대를 몰아붙이며, 팬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이 때문에 경기에서 패하더라도 박수를 받는 경기를 만들어냈다.

광주의 뜨거운 행보에 매진 사례가 이뤄지기도 하는 등 관중석도 뜨겁다. 기온이 뚝 떨어졌던 지난 주말, 경기 전 비까지 내렸지만 울산전에 5553명이 입장해 뜨거운 축구 열기를 보여줬다. 올 시즌 홈 17경기에 7만5550명이 입장해 평균 관중은 4444명을 기록하고 있다. 이같은 열기로 일부 경기는 일찌감치 표가 매진되면서 ‘표 구하기 전쟁’도 벌어졌다. 구단주인 강기정 광주시장도 올 시즌 홈 경기는 물론 원정 응원까지 나서는 등 ‘광주 서포터즈’로 맹활약하면서 축구 열기를 끌어올리고 있다. 이정효 감독이 깨운 승부 본능과 지도자의 열정에 응답한 선수들의 노력이 어우러지면서 광주 축구는 새 역사의 첫 페이지를 써내려가고 있다.

/김여울 기자 wool@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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