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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재난 속 인간의 힘-주윤정 부산대 사회학과 조교수
2022년 08월 23일(화) 00:30
동래의 한 영화관에서 ‘한산’을 보았다. 임진왜란과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배운 것 이상으로는 잘 알지 못했다. 임진왜란의 시작인 동래에 와서 살기 시작한 이후 동래의총 등 집 주변의 유적지를 답사하면서, 임진왜란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야기했는지에 대해 어렴풋이 생각해 본 정도였다. 치열한 전투가 이루어지고, 그 흔적이 어딘가 묻혀 있을지 모르는 곳, 그리고 왜군의 본진이었던 부산성 근처란 생각에 영화를 훨씬 몰입해서 보게 된 것 같다. 또한 절제된 박해일의 연기 덕에 이순신 장군의 고뇌에 대해 보다 공감할 수 있었다.

영화는 전쟁 초기의 한산대첩을 다루지만, 이후 7년 전쟁 기간 동안의 사회가 궁금해져서 ‘징비록’ ‘난중일기’ ‘쇄미록’ ‘선조실록’ 및 관련 연구서와 논문들을 찾아 읽으며 전쟁이란 재난 속에서 사람들은 어떤 힘으로, 무엇을 버팀목 삼아 살아갈 수 있었을지 생각해 보며 폭염과 폭우의 2022년 여름을 보냈다. 조선 개국 이후 북쪽을 제외하고는 별 전쟁 없이 살던 사회에서 왜군의 진격은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다. 왕도 도망가고, 모든 장수가 도망가 버리는 상황에서 왜 의병들은 나라와 민을 지켰을까? 왜 이순신 장군은 백의종군까지 하고 나서도 그렇게 진력을 다해 치열하게 싸웠을까? 인간의 모든 도덕과 질서가 파탄날 정도의 엄청난 살육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어떻게 인간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임진왜란과 관련된 글들을 찾아 읽다 보니 여러 흥미로운 일화가 있었다.

‘징비록’에는 상주전투에서 왜군에게 대패한 이일 장군이 초라한 행색으로, 평양으로 피난가고 있는 왕의 행렬에 합류했을 때의 이야기가 있다. 류성룡은 장군의 행색이 초라하면 사람들의 사기가 떨어질 수 있으니, 의관을 갖추어야 한다며 이일 장군에게 행장을 뒤져서 남색 비단 옷을 찾아 입혀주고, 다른 사람들도 여러 물건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가죽신을 구하지 못해, 짚신을 신은 채 이일 장군이 걸어야 했다. 이에 류성룡이 “비단옷에 짚신이라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구려” 하고 웃자, 주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징비록’에는 류성룡이 남의 나라 싸움에 별 전투 의지가 없는 명군을 때로는 명분으로, 때로는 실리로 어르고 달래 가며 명나라 군인과 말들을 먹일 군량미를 힘겹게 조달해 평양성과 한양을 수복하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또한 ‘한산’ 영화에는 준사라고 하는 항왜의 이야기가 나온다. 왜군이었지만 조선에 투항해 싸웠던 항왜 중 한 명이 왜군은 부녀자와 아이를 아주 잔학하게 학살하는 반면, 조선인들은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부모들을 섬기는 모습에서 감명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임진왜란이 지속되며, 수많은 살육과 엄청난 폭력 고통이 조선을 휩쓸고 있었다. 하지만 또한 그런 폭력의 상황에서도 인륜과 도덕, 사회의 질서 등 인간의 꼴을 지키기 위해 제 자리에서 품위를 지키며 역할을 다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전쟁이란 엄청난 재난 이후 사회는 회복될 수 있었던게 아닐까?

모든 질서가 뒤집어지고 파천을 하는 상황에서도, 임금이 임금 역할을 하게 하기 위해 충언을 다하는 신하, 신하는 신하다운 꼴, 품위와 자존심을 유지하기 위해 의관을 갖추며 제자리를 지키는 신하들이 있었다. 난리 통에 도망가는 사람들, 자신의 이익만을 탐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었지만, 그렇게 제자리에서 역할을 다하는 사람들, 직업 윤리와 사(士)의 역할에 충실한 사람들과 신의를 지키며 이순신 장군은 개인의 굴욕과 상관없이 자신의 자리를 목숨을 다해 지킨 것이 아닐까?

임진왜란의 참상과 전모, 조선과 동아시아 사회에 미친 영향 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평생 공부를 해도 부족할 것이다. 하지만 위의 두 일화는 임진왜란이란 엄청난 재난 속에서 인간의 삶이 지속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작은 실마리를 제공한다. 많은 이들이 도망가더라도 자리를 지키려는 장수와 선비들, 그리고 인간의 무참함이 드러나는 살육의 공간 속에서도 자신들의 직분과 품위, 인간의 도리를 잊지 않은 사람들, 그들 간의 신뢰와 공유되는 세계관이 있었기에 전쟁의 승패와 상관없이 인간의 삶은 전쟁이란 참화 이후 다시 이어지고 되살려질 수 있었을 것이다.

20세기의 짧은 평화의 시기 이후, 기후 위기와 전쟁 등 복합 재난의 전조가 드리운 지금, 우리는 역사의 처절한 경험들을 살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버티어 내고 재난에 대비할지 관료제적 합리성을 넘는 ‘징비’(懲毖)의 지혜를 익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