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회복력과 국가 거점대학 - 주윤정 부산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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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회복력과 국가 거점대학 - 주윤정 부산대 사회학과 교수
2025년 04월 29일(화) 00:00
앞으로 12·3 계엄 이후 출범할 새 정부의 핵심 과제는 ‘성장’과 ‘통합’이라는 공허한 구호가 아니라, 민주주의 회복력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경제·국방·안보·복지·환경·사회·노동·문화 등 모든 단위 과제의 구체적 비전과 전략 체계를 설계하는 일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트럼프가 복귀했듯 윤석열도 다른 얼굴로 언제든 돌아올 수 있다.

현재 대학은 구조조정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는 대학 본연의 기능과 미래 사회에서 대학이 수행할 역할을 간과한 근시안적 시각과 무지에서 비롯되었다. 민주주의 회복력 차원에서 대학은 첫째, 한국 사회 리더십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둘째, 수도권 집중을 완화해 지방 소멸과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 클러스터라는 두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우선, 이번 12·3 계엄 사태는 한국 사회 엘리트가 일반 시민과 얼마나 단절돼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폐쇄적 네트워크 안에 갇힌 이들은 계엄이 초래할 사회적 문제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고 그 안에서 빚어진 망상을 실제로 실행했다.

계엄 저지에는 시민의 저항과 군인의 불복종이 기여했지만 헌법재판관 구성의 다양성 또한 결정적이었다. 문형배 재판관은 서울대 법대 출신이지만 이미선 재판관은 부산대 법대 출신의 향판으로 평생 부산과 창원 등지에서 근무해 다른 삶의 감각을 지녔다.

지역에서 성장하고 다양한 경험을 가진 리더십이 국가의 중요한 의사 결정에 참여해야 한다. 서울대만이 아니라 국가거점대학 전반의 교육 수준을 끌어올리지 않는다면 소수 엘리트의 합법적 부패와 망상 속에서 우리 사회의 중대한 문제가 결정될 것이다.

둘째, 지방 소멸 문제는 기존 SOC 투자나 공공기관 이전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선거 때마다 공공기관 이전 공약이 되풀이되지만 이러한 정책이 실제로 지역 정주율과 혁신으로 이어졌는지 검증이 필요하다. 김해공항과 KTX는 특히 주말과 주초에는 서울-부산을 오가는 공기업 임직원들로 항공편과 열차편이 만석이다.

또한 지역에는 일자리, 특히 젊은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경제적 문제만이 아니라 문화·인권 규범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역의 가부장적 문화와 자원 부족으로 인해 형성된 폐쇄적 연고 네트워크에 여성은 진입하기 어렵다.

다양성과 인권을 존중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결혼·출산 등 생애주기의 활성화로 이어진다. 최근 한 연구는 거주지 인근 대학에 다니고 그 지역에서 취업할 경우 출산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밝힌 바 있다. 대학이 혁신 클러스터로 기능해 지역의 기준점을 높이면 지역 정주율·출산·교육·지역경제는 물론 지역 정체성과 자부심까지 상승할 것이다.

대학은 이러한 문제를 한꺼번에 풀어낼 ‘매직’이다. 부산대 같은 지역거점 국립대학을 국가 차원의 인재 양성과 혁신 클러스터로 인식하고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대학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 지역 GRDP를 끌어올리고 새로운 리더십이 성장할 기회와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본연의 기능은 물론 지역사회를 위한 평생교육과 사회적 역할을 확대하고 대학 자체도 뼈를 깎는 혁신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처참하다. 수도권에 부는 집중돼 있고 내란 엘리트를 길러낸 서울대와 부마 민주항쟁의 출발지인 부산대 사이의 교육비 격차는 크다. 서울대의 학생 1인당 교육비가 6000만원이라면 부산대는 2600만원에 불과하다. 전임교원 1인당 학생수는 서울대 12.69명, 부산대 20.03명이다. 총교육비 역시 서울대 1조7000억원, 부산대 7000억원으로 격차가 크다.

지역거점 국립대학에 대한 투자와 예산 지원으로 이 격차를 해소해야 한국 사회의 왜곡된 엘리트 독점 구조를 깨뜨리고 대학중심 혁신경제모델을 통해 지역을 활성화할 수 있다.

회복력은 충격 이후 원상회복에 그치지 않고 충격을 계기로 더 나은 상태로 변혁되는 과정, 즉 변혁적 정의(transformative justice)를 수반해야 한다. 새 정부는 민주주의 회복력의 새로운 경로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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