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위공(天下爲公)과 대동(大同)- 김태희 역사연구자·다산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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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위공(天下爲公)과 대동(大同)- 김태희 역사연구자·다산연구소 대표
2025년 06월 10일(화) 00:00
국가(정부)는 왜 실패하는가? 강국 명나라가 패망하고 오랑캐라며 낮잡아보던 청나라에게 중원을 내주었는데 그 원인은 무엇일까? 실학자 유형원(1622~1673)은 사사로운 동기로 법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법과 제도가 사욕에 의해 지배받은 결과라는 것이다.

명나라의 패망을 목도한 황종희(1610~1695)는 ‘명이대방록’의 ‘원군’에서 지적했다. “옛날에는 천하가 주인이고 군주가 객이어서, 군주가 일생동안 경영하는 것은 천하를 위해서였다. 지금은 군주가 주인이고 천하가 객이어서, 천하의 어느 곳도 평안하지 못한 것은 군주를 위하기 때문이다.” 그는 ‘사(私)천하’를 비판하며 천하가 주인인 ‘공(公)천하’를 이상으로 삼았다.

황종희는 같은 책 ‘원신’에서 말했다. “내가 벼슬하는 것은 천하를 위한 것이지 군주를 위한 것이 아니며, 만민을 위한 것이지 군주 일가를 위한 것이 아니다.” “천하의 다스려짐과 어지러움은 군주 일가의 흥망에 달려 있지 않고, 만민의 근심과 즐거움에 달려 있다.” 천하와 만민을 위해 복무한다는 것이다.

‘천하위공(天下爲公)’이란 말은 ‘예기’의 ‘예운’편에 나온다. 대도가 행해지면 ‘천하위공’의 상태가 되고 그리하여 이뤄진 세상을 대동(大同) 세상이라고 말했다. ‘공천하’란 특정인이나 특정 세력이 장악한 사사로운 세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모두를 위한 모두의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주에 실학박물관 주최로 정책난장 ‘와글와글 실학’이란 행사가 3일에 걸쳐 열렸다. 필자는 ‘공직가치와 실학’이란 제목의 프로그램에서 ‘공직자와 봉공’에 대해 발표했다. ‘봉공’은 정약용의 ‘목민심서’에서 목민관에게 요구한 세 가지 덕목 중 하나다. 공직자는 공적 직무에 종사하는 사람이니 공(公)을 받드는 것은 당연하다.

대한민국 헌법(제7조 제1항)은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선거직과 직업 공무원의 차이는 있지만 그 지위와 권한은 공적으로 부여(위임)된 것이다. 권한에는 내재적 한계가 있으며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른다.

그러나 공적 지위와 권한을 전리품으로 간주하고 사사로이 권한을 남용하면서 책임은 회피하는 모습이 적지 않았다. 급기야 12·3 계엄 선포는 대통령이 다른 헌법기관을 무력화시켜 사(私)천하를 만들려는 시도였다. 이러한 공공성 훼손이 국가적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 속에서 발표 준비를 했는데 발표는 마침 전날 출범한 새 정부에 대한 기대와 염려 속에 이뤄졌다.

새 정부는 전임 행정부들이 남긴 반면교사 사례를 잘 참작했으면 한다. 불통, 국민 편가르기, 정제되지 않은 언행, 책임회피, 이중잣대, 무리한 시장 개입, 진영논리에 갇힌 인사 검증실패, 동일 과오의 반복 등 사례가 풍부하다. 또한 공공기관의 공공성 저하가 국가의 실패를 부른다는 점을 심각하게 인식했으면 한다.

대통령 선거 결과를 보면 처음엔 계엄선포에 대한 심판 요구가 컸으나 나중엔 이재명 행정부에 대한 경계심이 일부 작동했던 것 같다. 국정 수행을 잘하면 이러한 경계심은 해소될 것이다. 위헌적 계엄선포 행위는 재발 방지를 위해 진상규명과 책임추궁이 꼭 필요하다. 새 대통령은 이제 소속 정당이나 자신을 지지한 유권자만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대표하는 공적 지위에 있는 사람임을 명심해야 한다.

‘멸사봉공(滅私奉公)’이란 말이 있는데 필자는 좋아하지 않는다. 과거 독재자가 선호했던 말이었을 뿐 아니라 멸사봉공을 크게 외치는 사람이 되레 ‘멸공봉사’하곤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전체의 이름으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제약하거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 공동체의 이익과 구성원의 이익을 조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억강부약(抑强扶弱)’이란 표현도 별로다. 대통령이 사용하기에 적합한 용어가 아니다. 강자라 하여 특별히 불이익을 받을 것은 없다. 공정·공평하게 일을 처리하면 그만이다. 대동 세상을 구현하는 것은 억강부약이 아니라 천하위공이다.

사(私)천하를 만들고 이에 기생하려는 기운이 나라 안팎에서 잦아들지 않고 있다.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행위, 진영논리, 공직자의 도덕적 해이, 좁은 안목의 경제적 효율성 논리 등이 공공성을 저해한다. 법·제도적으로 공공성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으로 공동선(共同善)을 추구하는 분위기가 절실하다. 천하위공과 대동의 뜻을 새겨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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