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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행(慣行)-김진구 일신중 교감
2021년 11월 24일(수) 02:30
김진구 일신중 교감
‘관행(慣行)’이란 말을 종종 듣는다. 예전부터 해오던 대로 하는 것을 말한다. 고치지 않고 반복된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크다. ‘적당(適當)히’란 말이 ‘대충, 요령껏’이란 뜻으로 변한 것과 같다. 관행대로 하면 큰 탈은 나지 않겠지만 철이 지나고 시대가 변해도 바뀌지 않으면 웃음거리로 전락한다.

연말이 되니 유공자를 표창하겠다고 추천하라는 각종 공문이 오고 있다. 금년 하반기에만 50여 건이 넘는다. 대부분 교육부에서 생산하고, 시도교육청을 경유해 단위 학교로 이첩하는 공문인데, 교육부 장관 표창이 40여 건이고 나머지는 교육감 표창이다. 남달리 창의적이고 모범적인 공직자를 발굴하여 표창하는 일은 다다익선이다. 하지만 표창 추천 공문을 보고 교직원들이 관심을 갖기 보다는 혀를 끌끌 찬다면 우세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표적인 공문이 ‘교복 가격 안정화 유공 장관 표창 후보자 추천’이다.

해방 이후부터 일제식 교복을 입다가 1969년 중학교가 평준화되면서 학교별 차이를 없애기 위해 획일화된 교복을 입었다. 그 후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취지로 1983년부터 교복 자율화 정책이 시행되었으나 빈부 격차로 위화감 조성, 사복 구입에 따른 가계 부담 증가 등의 여론이 비등해서 1986년부터 다시 교복이 부활하였다. 교복의 선택이 학교장 재량으로 넘어가자 대다수 학교가 교복을 입기 시작했으며 초기 학생들의 개별 구매에 따라 업체 간의 심한 경쟁으로 고급화되면서 70만 원대의 고가 교복이 등장했다. 교육부는 ‘교복 가격 안정화 방안’을 발표하고 2015년부터 개별 구매에서 학교 주관 공동 구매로 바꿔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교복 검수를 위한 품질심사위원회 구성, 구입 후 교복 만족도 조사 등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지만 지금은 학교 업무 중의 한 가지이다. 초창기 조기 정착을 위해 마련된 시상제도인데 이렇게 한번 만들어진 표창은 교복이 없어질 때까지 계속될 모양새다.

우리 시 교육청은 관행을 벗고 업무를 개선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교원들이 업무를 더 효율적으로 추진하도록 매년 ‘학교 업무 정상화’ 기치를 드높이 걸고 ‘담임교사 행정업무 제로화’ 등 여러 시책을 시행해 왔다. ‘정상화’란 말은 듣는 사람에게 매우 개혁적이고 구악을 없애는 등불 같은 매력의 단어이다. 비정상의 과거를 바로 잡아 새롭게 나아간다는 의미와 묶여 있다. 비정상의 늪에서 반복되는 업무에 혁신적인 대안을 제시하여 제자리로 돌려놓는 회복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정상화’란 비정상의 현실을 전제한 대칭 개념의 단어이다.

하지만 해마다 ‘학교 업무를 정상화하라’고 반복해서 단위 학교에 공문을 내려보내면 정상이 아니다. 교육청이 되었던, 학교가 되었던 어느 한쪽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십여 년을 지속적으로 공문을 보냈는데 아직도 일선 학교의 업무가 정상화되지 못해서일까. 이미 정상화되었는데 비정상으로 되돌아가 버릴까 그런 것일까. 이제껏 학교 업무가 정상화되지 않았다면 이것이야말로 감독 관청의 한계이고 그저 반복되는 구호 행정이 아닐까?

학교 업무 정상화와 연관된 ‘담임교사 행정업무 제로화’도 그렇다. 담임교사는 학생들과 접촉이 가장 많다. 잠자는 시간 빼고는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 힘든 민원도 발생한다. 담임 업무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어서 행정 업무는 부장 교사나 비담임 교사가 전담하도록 하자는 취지이다. 참 좋다. 그러나 교사 20~30명 규모의 학교와 50~60명의 규모의 학교 업무가 같을 수 없다. 업무 총량은 똑같다. 교사 수가 적다고 업무가 줄어든 것이 아니다. 그러니 담임 업무 제로화란 말은 가능하지도 않다. 담임 업무와 행정 업무의 한계도 애매한 경우가 많다. 단위 학교에서는 매년 연말이면 다음 학년도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학교별 상황에 따라 수차례 교원의 의견 수렴하고 조정하며, 주변 학교의 사례를 검토하기도 한다. 4년 재임 중 두 번 이상은 필히 담임 업무를 하도록 하는 등 교사의 경력이나 목소리에 따라 업무가 치우치지 않도록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따라서 ‘정상화’ ‘제로화’ 이런 구호적인 용어 대신에 ‘효율화’로 바꿔야 한다. 새로운 체제가 들어서서 업무를 정상화하겠다면 모두가 신선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5년이 지나도 10년이 넘어도 업무를 정상화하겠다고 반복해서 공문을 내려보내면 어느 한쪽은 비정상임이 분명하다. 이쯤 되면 관행이 아니라 퇴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