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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의 향연 전시 이상의 공간이 되다
<16>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포르투칼 출신 알바루 시자 설계
미술·건축에 출판까지 아우른
복합 문화공간…2009년 개관
순백색 곡선구조…모던한 분위기
미메시스 출간 책 연계 기획전
2021년 01월 25일(월) 09:00
‘자연광과 예술이 어우러진 빛으로 미술관’

서울에서 자유로를 따라 자동차로 40여 분 달리자 경기도 파주에 도착한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여느 도시와 다르게 쾌적하다. 그리 높지 않은 건축물과 주택들은 저마다 독특한 외형과 미감으로 역동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새삼 ‘책과 사람, 자연이 어울려 숨쉬는 북시티’라는 타이틀이 가슴에 와 닿는다.

파주의 ‘얼굴’은 40만 평이 넘는 거대한 출판단지다. 특히 지하 1층, 지상 5층, 3개동, 연면적 7만㎡ 규모의 아시아출판문화센터와 크고 작은 출판사, 서점, 카페 등을 산책하듯 둘러 보는 즐거움은 쏠쏠하다.

포르투칼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알바루 시자가 설계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전경. 부드러운 곡선(작은 사진)과 날카로운 선의 기하학적인 흰색 건축물은 밝은 햇살 아래서 더욱 빛을 발한다. <사진제공=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사진촬영·페르난도 게라(Fernando Guerra) ⓒ Openbooks.>
파주출판단지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위치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Mimesis Art Museum)도 그런 곳 가운데 하나다. 부드러운 곡선과 날카로운 선의 기하학적인 흰색 건축물은 밝은 햇살 아래서 더욱 빛을 발한다. 얼핏 보면 책장을 펼쳐 놓은 듯 하고 바람에 살랑거리는 흰색 무명천 같다. 날씨가 좋은 날에 미술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인생 사진’이 될 만큼 푸른 하늘과 하얀색 건물의 대비가 환상적이다.

하지만 정면의 곡선과 달리 건물의 뒷편은 완벽한 직각을 이루는 높은 벽으로 지어졌다. 뒷편의 오솔길을 따라 미술관 건물을 끼고 돌아가면 전시장으로 이어지는 아담한 정원이 나온다. 미술관 앞 마당에는 다양한 형상의 조각작품들이 방문객들을 반갑게 맞는다. 그래서일까.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주말과 휴일을 이용해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으로 문화나들이를 오는 이들이 많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포르투칼 출신의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알바루 시자(Alvaro Siza)의 설계로 지난 2009년 세상에 나왔다. 대지 1400평, 연면적 1100평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국내에서는 이례적으로 출판과 미술, 건축이 공존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문화와 카페, 예술과 건축을 아우른 미술관은 더러 있지만 미술과 건축은 물론 출판까지 한자리에 모은 건 매우 드물다.

‘미메시스’라는 이름은 고대 그리스어인 ‘모방하다’에서 따왔다. 예술의 본질이 현실을 모방하거나 재현하는 범주를 포함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모든 예술행위를 미메시스로 통칭하기도 한다. 또한 미메시스는 미술관의 운영주체인 ‘열린책들’의 예술전문 출판사 이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출판사는 왜 미술관을 건립할 생각을 했을까? 여기에는 1986년 러시아 문학 전문 출판사를 꿈꾸며 5명의 직원과 사무실을 낸 홍지웅 대표(66)의 열정이 있었다. 80억 원을 들여 미술관을 세운 그는 ‘지역의 풍경에 어울리고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미술관을 꿈꿨다고 한다. 무엇보다 지인들과 함께 일본 나오시마 지추미술관을 둘러 본 경험이 큰 영향을 끼쳤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설계와 설치미술가 제임스 터렐이 공동으로 작업한 지추미술관은 빼어난 건축물과 컬렉션으로 일약 세계적인 명소로 떠오른 곳이다.

자신의 꿈을 실현해줄 수 있는 건축가를 찾던 홍 대표는 우연히 포르투칼 포르토 인근의 산타마리아 교회를 접한 후 감동을 받고 마음을 굳혔다. 산타마리아 교회는 화이트 톤의 외관과 유기적인 곡선의 내부, 자연채광을 끌어 들인 독특한 설계가 인상적인 알바루 시자의 대표작이다. 지난 2005년 11월 홍 대표와 계약을 맺은 알바루 시자는 두 나라를 오가며 건물이 건립되는 과정을 쓴 책(‘미술관이 된 시자의 고양이’·미메시스 펴냄)도 출간했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단순한 상업적인 전시공간이 아니라 건축 자체로 전시 이상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최근 막을 내린 ‘MIMESIS AP 4:MINGLE 혼재’전.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안으로 들어서면 자연광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카페와 북앤아트숍을 만나게 된다. 외관과 마찬가지로 내부 역시 순백톤이다. 모던한 분위기의 카페 옆에는 미메시스에서 출간한 전집, 작가, 디자인, 건축, 영화, 사진 등 분야별 도서들이 꽂혀 있고 톡톡튀는 감각의 아트상품도 전시되어 있다.

2층으로 이어지는 갤러리 역시 눈이 시리도록 하얀 색으로 마감됐다. 말 그대로 화이트큐브다. 하지만 흰 벽면의 단조로움은 곡선 구조의 설계로 인해 오히려 리듬감이 느껴진다. 전시장의 작품들도 널찍하게 간격을 두고 배치돼 있어 보는 이의 시선을 편하게 한다. 이런 여백 때문인지 한 작품을 오래동안 집중하며 감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전시장 중간 중간에 설치된 통유리는 인공조명에선 느낄 수 없는 변화무쌍한 감상을 즐길 수 있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은 시간이 변하면서 실내온도는 물론 작품의 분위기를 다르게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술관을 둘러 보면 조명을 쉽게 발견할 수 없다. 조명이 있긴 하지만 일반인들이 볼 수 없고 사용하지도 않는다. 이는 자연광을 중시한 알바루 시자의 건축철학 때문이다. 그는 산타마리아 교회도 조명을 사용하는 대신 창문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을 이용했다. 이 때문에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의 작품은 날씨에 따라 그때 그때 다른 느낌을 준다.

햇볕이 들어오지 않는 야간에는 조명을 켜는 대신 문을 닫는다. 날씨가 좋지 않거나 어두운 밤에는 관람객에게 작품을 보여줄 필요가 없다는 건축가의 뜻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미메시스아트뮤지엄의 개관시간은 여름철은 오후 7시, 겨울철에는 오후 4시까지다.

미메시스아트뮤지엄은 미메시스에서 출간하는 책과 연계해 1년에 4~5회 기획전을 연다. 오연경의 ‘일러스트레이터의 물건’전(2014년 출간), 알베르토 아후벨의 ‘로빈슨 크루소’ 삽화전 등이 대표적인 예다. 전시기간에는 관람객의 동선을 따라 전시장 벽면에 삽화들을 한장 한장 배치해 마치 한권의 책을 읽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지난 10일 막을 내린 ‘MIMESIS AP 4:MINGLE 혼재’전은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며 도발적인 작업세계를 추구하는 아티스트 김윤섭, 박서민, 유현경씨가 참여해 감정과 시선이 혼재된 시공간을 독창적인 화면으로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미메시스 아트뮤지엄의 독특한 건축미와 차별화된 전시는 국내외 건축가와 전문가들의 발길을 끌어 들이고 있다. 단순한 상업적인 전시공간이 아니라 건축 자체로 전시 이상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매력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곳을 다녀간 미국인 건축가 피터 페레토의 글은 미메시스 아트뮤지엄의 색깔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을 방문한다는 것은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도피다.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가끔은 환각을 유발할 정도로 빠르게 돌아가는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불협화음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잠깐 동안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미술관이 된 시자의 고양이’ 중에서)

/파주=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