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재미술관] 자연과 건축 행복한 조화⋯허백련 선생 예술혼 숨쉬는 곳
의재 허백련 화업·정신 계승
광주 대표 문화공간
국립공원 내 사립미술관 유일
2001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수상
넓게 트인 통창 너머 사계절 만끽
광주 대표 문화공간
국립공원 내 사립미술관 유일
2001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수상
넓게 트인 통창 너머 사계절 만끽
![]() 화려한 옻칠 색감으로 리모델링된 미술관 로비의 테이블. |
번잡한 광주의 도심을 벗어나고 싶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어딜까. 아마도 시간적 여유가 없는 이들에게 무등산은 그중의 하나일 것이다. 광주 금남로에서 자동차를 타고 20여 분 만 달리면 온통 초록빛 세상으로 물들은 무등산이 나오기 때문이다.
며칠 전, 무등산 기슭에 자리한 의재미술관(관장 이선옥)을 둘러 보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증심사로 향했다. 얼마 후 도착한 증심사 입구는 ‘딴세상’이다. 미술관 입구로 향하는 오븟한 길에는 눈이 부실만큼 아름다운 연초록숲이 장관이다. 계곡을 끼고 소나무, 야생 차나무들이 우거져 있어 자연 속에 푹 파묻힌 듯한 느낌을 준다. 코로나19로 쌓은 일상의 스트레스가 봄눈 녹듯 숲속의 바람과 함께 사르르 사라진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 ‘숲멍’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의재미술관 앞이다. 남종문인화의 마지막 대가로 불리는 의재 허백련(毅齋 許百鍊·1891~1977)의 삶과 예술세계를 기리기 위해 2001년 설립한 미술관이다.
나지막하게 지어진 건물은 노출 콘크리트와 목재, 반투명 유리로 마감된 단순한 외관이지만 그 어떤 화려한 미술관 보다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지난 2013년 무등산이 국립공원으로 승격되면서 국내 사립미술관으로는 국립공원안에 들어선 유일한 미술관이 됐다.
오래된 팽나무가 자리하고 있는 입구를 따라 몇발짝 걷다 보면 비스듬한 경사를 타고 전시동이 나온다. 약 6000㎡에 지상 2층. 지하 1층(연면적 1562㎡)의 크지 않는 미술관은 지난 2001년 건축가 조성룡(도시건축대표)씨와 한국예술종합학교 김종규 교수의 공동설계로 세상에 나왔다. 의재 허백련 화백의 올곧은 삶과 숭고한 예술혼, 무등산의 풍광을 조화롭게 담아낸 평가를 받으며 지난 2001년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의재미술관에 들어서면 마치 한폭의 수묵화 속으로 ‘시간여행’을 온 듯 하다. 넓게 트인 통창 너머로 창밖의 싱그러운 무등산 풍광이 미술관 안으로 가득 들어오기 때문이다. 6월이 시작되면 미술관 로비에서는 더욱 짙어진 초록빛 향연을 즐길 수 있다.
화이트 톤의 모던한 프레임이 인상적인 미술관의 로비는 사계절의 변화를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자 관람객들이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쉼터이기도 하다. 빨강색, 파랑색, 초록색 등 옷칠로 마감한 다양한 색감의 테이블이 마치 설치작품으로 착각할 만큼 전시동에 활력을 불어 넣고 있다. 불과 1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미술관의 화려한 변신이다.
그도 그럴것이 지난해 개관 20주년을 맞은 의재미술관은 노후화되면서 건물 곳곳에 곰팡이가 피거나 물이 새는 등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급기야 지난 2017년 기록적인 폭우로 미술관의 일부 시설이 물에 잠기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의재문화재단의 기금으로 빠듯한 살림을 꾸려가는 미술관으로서는 막대한 경비가 들어가는 리모델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특히 중앙난방 시스템으로 설계된 미술관은 에어컨과 온풍기를 가동하는 데 많은 비용이 소요돼 운영난을 가중시켰다. 지역사회에선 명품 미술관을 방치한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이에 미술관측은 지난 2017년부터 2년간 미술관 보수를 위해 기약없는 휴관에 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지난 2019년 미술관 리모델링 프로젝트에 필요한 예산 16억 원(국비 10억, 시비 6억원)을 확보해 1년 간의 공사 끝에 개관 20주년인 지난해 8월 말 역사적인 재개관을 하게 됐다. 전시동 로비와 전시장 조명, 배수로, 지역난방 등 미술관의 오랜 숙원이었던 리모델링이 마무리되면서 쾌적한 환경에서 관람객들을 맞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리모델링 공사를 통해 비어 있던 지하를 전시장으로 활용,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을 확장한 것도 눈길을 끈다. 또 의재 관련 영상과 미디어아트 작품 등을 상영하는 영상전시실에 이어 2전시실에서 3전실로 이어지는 곳은 디자인하우스가 참여해 의재 선생의 예술혼을 느낄 수 있는 추모 공간으로 꾸몄다. 선생이 생전에 쓰던 화구와 다기, 가구 등을 배치해 생전의 작업실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는 3전시실로 이어지는 공간에는 자택에서 환한 웃음을 터트리는 선생의 대형 사진이 걸려 있다. 상설 전시실로 꾸며진 3전시실은 현대적 느낌이 나는 전문 조명을 설치해 의재 선생의 병풍과 산수화 등의 작품을 색다른 분위기로 만날 수 있다.
의재미술관을 찾던 날에는 올해 첫 전시인 ‘꽃과 새가 어울린 자리’(3월4일~6월12일)가 열리고 있었다.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화조화(花鳥畵)와 기명절지화(器皿折枝畵)를 선보이는 자리로 그림 속 꽃향기와 새소리를 벗삼아 미술관에서 따뜻한 차 한잔 마시며 봄날의 추억을 누릴 수 있도록 기획했다. 전시에는 의재 허백련의 작품을 비롯해 허백련의 제자이자 동생인 목재 허행면(1906~1964), 장손자인 직헌 허달재의 작품 등 총 60여점이 나왔다.
허백련의 화조화나 기명절지화는 다루는 소재의 폭이 매우 넓을 뿐 아니라 각각의 표현방식이나 색감도 개성이 있고 깊이와 운치가 있다. 허행면의 꽃그림은 소재는 의재와 비슷하나 사실성에 바탕을 둔 자유로움이 있으며, 허달재의 작품은 전통을 현대화하여 기품이 있으면서도 세련된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계절이나 자연의 일부를 표현하고 각각에 상서로운 의미를 담은 ‘화조화(花鳥畵)’는 오래전부터 우리 생활공간을 풍요롭게 꾸며왔다. 허백련과 제자들의 작품 중에는 매화, 모란, 연 등 문인들이 좋아하는 식물들과 여러 새들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 .
‘기명절지화(器皿折枝畵)’는 여러 기물을 통해 현실에서 추구하는 바를 우의적으로 표현한 실용화이자 장식화다. 의재의 기명절지화에는 그가 좋아하는 기물들이 한 화면에 담겨 있다. 평생 삶의 지표로 삼았던 동양의 경전을 쓴 두루마리, 즐겨 마셨던 차를 끓이는 화로나 차 주전자 외에 난, 수선화 같은 절지화, 포도, 감, 밤과 같은 과실류 등이 적절히 배치돼 있다.
이와함께 미술관 지하 1층에는 의재 선생의 손자인 허달재 의재문화재단 이사장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상설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의재미술관 이선옥 관장은 “의재미술관은 허백련 선생의 숭고한 예술혼이 살아 숨쉬는 공간이자 숲과 자연, 건축이 어우러진 미술관이다”면서 “지난해 20주년을 맞아 재개관한 만큼 전통서화의 정신을 계승하고 청년 작가들을 지원하는 산실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며칠 전, 무등산 기슭에 자리한 의재미술관(관장 이선옥)을 둘러 보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증심사로 향했다. 얼마 후 도착한 증심사 입구는 ‘딴세상’이다. 미술관 입구로 향하는 오븟한 길에는 눈이 부실만큼 아름다운 연초록숲이 장관이다. 계곡을 끼고 소나무, 야생 차나무들이 우거져 있어 자연 속에 푹 파묻힌 듯한 느낌을 준다. 코로나19로 쌓은 일상의 스트레스가 봄눈 녹듯 숲속의 바람과 함께 사르르 사라진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 ‘숲멍’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의재미술관 앞이다. 남종문인화의 마지막 대가로 불리는 의재 허백련(毅齋 許百鍊·1891~1977)의 삶과 예술세계를 기리기 위해 2001년 설립한 미술관이다.
![]()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의재미술관은 노출콘크리트와 반투명 유리로 마감된 단순한 외관이지만 주변의 자연풍광과 어우러져 빼어난 건축미를 자랑한다. |
의재미술관에 들어서면 마치 한폭의 수묵화 속으로 ‘시간여행’을 온 듯 하다. 넓게 트인 통창 너머로 창밖의 싱그러운 무등산 풍광이 미술관 안으로 가득 들어오기 때문이다. 6월이 시작되면 미술관 로비에서는 더욱 짙어진 초록빛 향연을 즐길 수 있다.
화이트 톤의 모던한 프레임이 인상적인 미술관의 로비는 사계절의 변화를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자 관람객들이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쉼터이기도 하다. 빨강색, 파랑색, 초록색 등 옷칠로 마감한 다양한 색감의 테이블이 마치 설치작품으로 착각할 만큼 전시동에 활력을 불어 넣고 있다. 불과 1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미술관의 화려한 변신이다.
그도 그럴것이 지난해 개관 20주년을 맞은 의재미술관은 노후화되면서 건물 곳곳에 곰팡이가 피거나 물이 새는 등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급기야 지난 2017년 기록적인 폭우로 미술관의 일부 시설이 물에 잠기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의재문화재단의 기금으로 빠듯한 살림을 꾸려가는 미술관으로서는 막대한 경비가 들어가는 리모델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특히 중앙난방 시스템으로 설계된 미술관은 에어컨과 온풍기를 가동하는 데 많은 비용이 소요돼 운영난을 가중시켰다. 지역사회에선 명품 미술관을 방치한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 의재미술관 지하 1층에 꾸며진 직헌 허달재(의재문화재단 이사장)화백의 상설전시장. |
리모델링 공사를 통해 비어 있던 지하를 전시장으로 활용,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을 확장한 것도 눈길을 끈다. 또 의재 관련 영상과 미디어아트 작품 등을 상영하는 영상전시실에 이어 2전시실에서 3전실로 이어지는 곳은 디자인하우스가 참여해 의재 선생의 예술혼을 느낄 수 있는 추모 공간으로 꾸몄다. 선생이 생전에 쓰던 화구와 다기, 가구 등을 배치해 생전의 작업실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는 3전시실로 이어지는 공간에는 자택에서 환한 웃음을 터트리는 선생의 대형 사진이 걸려 있다. 상설 전시실로 꾸며진 3전시실은 현대적 느낌이 나는 전문 조명을 설치해 의재 선생의 병풍과 산수화 등의 작품을 색다른 분위기로 만날 수 있다.
의재미술관을 찾던 날에는 올해 첫 전시인 ‘꽃과 새가 어울린 자리’(3월4일~6월12일)가 열리고 있었다.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화조화(花鳥畵)와 기명절지화(器皿折枝畵)를 선보이는 자리로 그림 속 꽃향기와 새소리를 벗삼아 미술관에서 따뜻한 차 한잔 마시며 봄날의 추억을 누릴 수 있도록 기획했다. 전시에는 의재 허백련의 작품을 비롯해 허백련의 제자이자 동생인 목재 허행면(1906~1964), 장손자인 직헌 허달재의 작품 등 총 60여점이 나왔다.
![]() 오는 6월 12일까지 열리는 ‘꽃과 새가 어울린 자리’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허백련 화백의 화조화와 기명절지화가 전시되고 있다. |
‘기명절지화(器皿折枝畵)’는 여러 기물을 통해 현실에서 추구하는 바를 우의적으로 표현한 실용화이자 장식화다. 의재의 기명절지화에는 그가 좋아하는 기물들이 한 화면에 담겨 있다. 평생 삶의 지표로 삼았던 동양의 경전을 쓴 두루마리, 즐겨 마셨던 차를 끓이는 화로나 차 주전자 외에 난, 수선화 같은 절지화, 포도, 감, 밤과 같은 과실류 등이 적절히 배치돼 있다.
이와함께 미술관 지하 1층에는 의재 선생의 손자인 허달재 의재문화재단 이사장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상설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의재미술관 이선옥 관장은 “의재미술관은 허백련 선생의 숭고한 예술혼이 살아 숨쉬는 공간이자 숲과 자연, 건축이 어우러진 미술관이다”면서 “지난해 20주년을 맞아 재개관한 만큼 전통서화의 정신을 계승하고 청년 작가들을 지원하는 산실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