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기술, 산업과 예술의 조화를 이루다
울산시립미술관
옛 문화재터에 위치, 역사공간 조화 위해 좁고 긴 사다리꼴 모양 건축
공공미술관 최초 실감 미디어 아트 전용관, 미래 지향적 정체성 담아
대왕암공원에 ‘시립미술관 분관’ …백남준 1993년 걸작 ‘거북’ 소장
옛 문화재터에 위치, 역사공간 조화 위해 좁고 긴 사다리꼴 모양 건축
공공미술관 최초 실감 미디어 아트 전용관, 미래 지향적 정체성 담아
대왕암공원에 ‘시립미술관 분관’ …백남준 1993년 걸작 ‘거북’ 소장
![]() 울산시립미술관이 소장품 1호로 구입한 백남준 작가의 ‘거북’(150x600x1000cm). 대왕암공원의 시립미술관 분관에 전시돼 있다. |
인구 110여 만 명의 울산 광역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업도시다. 지난 2018년 기준 1인당 평균소득이 가장 높을 만큼 타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활여건이 뛰어나다. 그럼에도 이러한 도시의 위상을 무색하게 하는, 부끄러운 ‘현실’이 있었다. 공립미술관은 커녕 변변한 사립미술관이 없어 문화불모지로 불렸던 것이다. 하지만 지난 2011년 미술관 건립이 공론화 된 이후 지난 1월 초 원도심에 시립미술관 본관(울산 중구 도서관길 72)과 분관이 개관하면서 지역민들은 가슴 한켠에 묻어 둔 문화 향유에 갈증을 말끔히 씻어내게 됐다. 개관과 동시에 평일 1000여 명, 주말 3000여 명이 다녀가며 폭발적인 호응을 이끌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울산광역시 동구 일산동에 자리한 대왕암공원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일출명소다. ‘삼국통일을 완성시킨 신라 문무왕의 왕비가 왕을 따라 동해의 호국용이 돼 이 바위 아래 바닷속에 잠겼다’고 해 대왕바위로 불리는 이 곳은 울산동구지(1999년 발간)에 실린 대왕바위의 유래와도 일맥상통한다. 검푸른 일산 앞바다와 울창한 솔숲으로 코로나19로 예전만 못하지만 3년 전만 해도 연말연시가 되면 전국 각지에서 일출을 보려는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특히 지난해 7월 개통한 길이 303m, 폭 1.5m 규모의 대왕암공원 출렁다리와 해안 산책로가 인기를 끌면서 울산을 상징하는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최근 울산의 12경(景) 중 하나인 대왕암 공원에 색다른 볼거리가 등장해 또 한번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지난 1월 옛 방어진중학교에 둥지를 튼 울산시립미술관 분관이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남루한 외관이 추억 속으로 사라진 시골의 폐교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미술관으로 들어서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하늘 높이 솟은 빼곡한 소나무와 본관 건물에서 바라본 푸른 바다도 말 그대로 한 폭의 풍경화다.
그렇다고 그림 같은 ‘오션뷰’만이 미술관의 자랑거리는 아니다. 이곳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소장품전: 찬란한 날들’에 출품된 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 ‘거북’(Turtle, 150×600×1000㎝)이다. 텔레비전 모니터 166대를 거북 모양으로 설치한 이 영상 작품은 백남준이 1993년 동양 정신과 서양 기술의 결합을 예술 미학으로 담아낸 걸작이다.
‘거북’이 대왕암 앞바다에 둥지를 틀게 된 건 울산시의 끈질긴 ‘구애’ 덕분이다. 거북이 형상의 울산 반구대 암각화와 작품 ‘거북’이 울산의 문화 정체성을 상징한다고 판단한 울산시가 수년 전부터 소장가인 재미 사업가에게 러브콜을 보내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구입한 것이다.
울산시립미술관(관장 서진석)이 개관 두 달만에 6만 여 명의 관람객을 끌어 모은 데에는 차별화된 컬렉션과 독특한 건축물을 빼놓을 수 없다. 공업도시의 정체성에 맞게 ‘미디어아트 중심의 미래형 미술관’을 표방한 울산시는 전국 최초로 소장품 기금제를 도입해 개관 이전인 2017년부터 5년간 140억 원을 적립했다. 대부분의 국공립미술관이 한해 5~10억 원의 예산을 책정에 1년 단위 회계연도에 따라 소장품을 구입하는 것과 달리, 적립된 재원내에서 작품을 구입하고 남은 기금은 다음 해로 이월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무엇보다 울산시립미술관이 짧은 기간내에 뉴스메이커가 된 데에는 역사경관과 조화를 이룬 건축물의 콘셉트도 한몫한다. 예산 659억 원을 투입해 울산 최초의 공공미술관으로 문을 연 울산시립미술관 본관(울산광역시 중구 도서관길 72)은 화려한 건축미와는 다소 거리가 멀다. 고층 높이의 최첨단 건축양식을 지향하는 요즘의 미술관과 달리 시립미술관 본관은 ‘낮은 자세’를 취하고 있어서다.
여기에는 옛 문화재 터라는 입지조건이 크게 작용했다. 시립미술관 본관이 들어서게 되는 부지는 조선시대 문화재인 울산동헌과 객사터(복원예정) 사이로, 원도심의 지리석 특성상 ‘튀는’ 건축물은 주변의 환경을 깨뜨릴 수 있는 요소였기 때문이다.
미술관 설계를 맡은 안용대 건축가(가가건축 대사무실 대표)는 가장 먼저 인근의 역사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물을 꿈꿨다. 그래서인지, 미술관 본관 입구에 서면 웅장하거나 화려한 외관 대신 좁고 긴 사다리꼴 모양(지하 3층, 지상 2층 연면적 1만2770㎡)이 시각적으로 편안하게 느껴진다. 입구와 반대 끝 대지의 높이 차는 15m 정도. 안 대표는 이 같은 지형조건을 그대로 감안해 경사진 땅 위에 미술관을 지었다.
시립미술관 본관은 여타 미술관과 달리 주 전시장이 1층이 아닌, 지하 1·2층에 3개의 전시실이 배치돼 있다. 특히 공공미술관 최초로 실감 미디어 아트 전용관(XR랩)이 갖춰져 미래 지향적인 미술관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지하 2층으로 내려가면 로비에서 부터 백남준 작가의 ‘케이지의 숲, 숲의 계시’와 얀 레이작가의 ‘레버리 리셋’ 등 미디어 작품들이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개관전으로 기획한 ‘포스트 네이처:친애하는 자연에게’(4월10일까지 전시)의 대표작들로 산업수도에서 생태·문화·관광이 공존하는 도시로 변모하는 울산의 비전을 담고 있다. 국제미술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미디어아티스트 히토 슈타이얼을 비롯해 중국 출신 신예작가 정보(Zheng Bo), 세실 B 에반스, 카미유 앙로, 슈리칭, 알렉산드라 피리치 등이 대거 참여한다.
이밖에 대왕암공원내 분관에서 열리는 ‘소장품전:찬란한 날들’(4월10일까지)에서는 시립미술관이 개관을 앞두고 구입한 피터 바이벨, 이불, 문경원&전준호 등 소장작 3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서진석 관장은 “미술관 개관은 지역민들의 숙원 과제였던 만큼 이번 5개의 기념기획전을 통해 평면, 입체, 설치, 공연, 디지털 미디어아트를 체험하게 될 것”이라면서 “시대적 변화에 맞는 예술의 새로운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제시하는 미래형 미술관이자, ‘문화도시 울산’의 기반을 마련하는 미술관으로 성장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울산=박진현 문화선임 기자 jhpark@kwangju.co.kr
![]() 울산시립미술관 분관 전경. 옛 방어진 학교를 리모델링했다. |
그렇다고 그림 같은 ‘오션뷰’만이 미술관의 자랑거리는 아니다. 이곳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소장품전: 찬란한 날들’에 출품된 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 ‘거북’(Turtle, 150×600×1000㎝)이다. 텔레비전 모니터 166대를 거북 모양으로 설치한 이 영상 작품은 백남준이 1993년 동양 정신과 서양 기술의 결합을 예술 미학으로 담아낸 걸작이다.
‘거북’이 대왕암 앞바다에 둥지를 틀게 된 건 울산시의 끈질긴 ‘구애’ 덕분이다. 거북이 형상의 울산 반구대 암각화와 작품 ‘거북’이 울산의 문화 정체성을 상징한다고 판단한 울산시가 수년 전부터 소장가인 재미 사업가에게 러브콜을 보내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구입한 것이다.
![]() 울산 시립미술관 분관 전경. 옛 방어진 학교를 리모델링 했다. |
무엇보다 울산시립미술관이 짧은 기간내에 뉴스메이커가 된 데에는 역사경관과 조화를 이룬 건축물의 콘셉트도 한몫한다. 예산 659억 원을 투입해 울산 최초의 공공미술관으로 문을 연 울산시립미술관 본관(울산광역시 중구 도서관길 72)은 화려한 건축미와는 다소 거리가 멀다. 고층 높이의 최첨단 건축양식을 지향하는 요즘의 미술관과 달리 시립미술관 본관은 ‘낮은 자세’를 취하고 있어서다.
여기에는 옛 문화재 터라는 입지조건이 크게 작용했다. 시립미술관 본관이 들어서게 되는 부지는 조선시대 문화재인 울산동헌과 객사터(복원예정) 사이로, 원도심의 지리석 특성상 ‘튀는’ 건축물은 주변의 환경을 깨뜨릴 수 있는 요소였기 때문이다.
미술관 설계를 맡은 안용대 건축가(가가건축 대사무실 대표)는 가장 먼저 인근의 역사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물을 꿈꿨다. 그래서인지, 미술관 본관 입구에 서면 웅장하거나 화려한 외관 대신 좁고 긴 사다리꼴 모양(지하 3층, 지상 2층 연면적 1만2770㎡)이 시각적으로 편안하게 느껴진다. 입구와 반대 끝 대지의 높이 차는 15m 정도. 안 대표는 이 같은 지형조건을 그대로 감안해 경사진 땅 위에 미술관을 지었다.
시립미술관 본관은 여타 미술관과 달리 주 전시장이 1층이 아닌, 지하 1·2층에 3개의 전시실이 배치돼 있다. 특히 공공미술관 최초로 실감 미디어 아트 전용관(XR랩)이 갖춰져 미래 지향적인 미술관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지하 2층으로 내려가면 로비에서 부터 백남준 작가의 ‘케이지의 숲, 숲의 계시’와 얀 레이작가의 ‘레버리 리셋’ 등 미디어 작품들이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 개관 기념으로 기획한 ‘포스트 네이처’전의 전시장. |
이밖에 대왕암공원내 분관에서 열리는 ‘소장품전:찬란한 날들’(4월10일까지)에서는 시립미술관이 개관을 앞두고 구입한 피터 바이벨, 이불, 문경원&전준호 등 소장작 3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서진석 관장은 “미술관 개관은 지역민들의 숙원 과제였던 만큼 이번 5개의 기념기획전을 통해 평면, 입체, 설치, 공연, 디지털 미디어아트를 체험하게 될 것”이라면서 “시대적 변화에 맞는 예술의 새로운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제시하는 미래형 미술관이자, ‘문화도시 울산’의 기반을 마련하는 미술관으로 성장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울산=박진현 문화선임 기자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