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스페이스 K 서울, 식물원 옆 미술관ᐧᐧᐧ예술ᐧ건축ᐧ자연 어우러진 ‘도심의 오아시스’
(22)
코오롱그룹, 공공기여 미술관 건립
마곡지구 문화공원 입지조건 극대화
2018년 건축가 조민석 설계
‘건물·공원·사람’ 자연스럽게 연결
건축·미술·식물 답사코스로 인기
헤르난 바스전 ‘소년과 바다’ 눈길
2021년 05월 09일(일) 23:00
1 서울시 마곡산업단지에 자리한 ‘스페이스K 서울’은 지난해 코오롱 그룹이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건립한 미술관으로 ‘아크’(Arcs·호)라는 콘셉트를 활용해 건물과 공원, 사람이 하나의 유기적인 곡선(호)이 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진제공=스페이스 K, 촬영=신경섭>
‘식물원 옆 미술관’

지난해 9월 문을 연 스페이스 K 서울(이하 스페이스 K)을 상징하는 별칭이다. 서울시 마곡산업단지내에 들어선 스페이스 K 미술관 인근에 서울식물원이 자리하고 있어서다. 미술관을 직접 둘러본 이라면 이 보다 더 멋진 타이틀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스페이스K는 식물들이 건물 주변을 에워싼 공원안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취재차 방문한 스페이스K는 예술과 건축, 자연이 어우러진 ‘도심속 오아시스’ 같았다. 최근 국제미술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외국작가 헤르난 바스(Hernan Bas·43)의 개인전 ‘모험, 나의 선택’이 열리고 있는 미술관은 평일인데도 수십 여 명의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특히 20~30대 젊은 관람객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헤르난 바스 작 ‘소년과 바다’
그도 그럴것이 헤르난 바스는 젊은 세대의 짙은 고뇌를 감각적인 색채와 낭만적인 화풍에 담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작품 ‘소년과 바다’는 개막과 동시에 SNS에서 화제가 됐다. 미술 애호가로 잘 알려진 방탄소년단 리더 RM이 일찌감치 다녀갔다는 소식까지 더해지면서 관람객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황인성 큐레이터는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가 이어지고 있지만 하루 평균 300명, 주말에는 600여 명이 전시장을 찾는다“면서 ”지난 2월 개막 이후 현재까지 부산 등 지방에서도 1만 2000여 명이 전시를 보기 위해 다녀갔다“고 말했다.

지난 2월부터 열리고 있는 미국작가 헤르난 바스(Hernan Bas)의 ‘모험, 나의 선택’전에는 코로나19 상황에서도 하루 평균 300여 명의 관람객이 찾고 있다.
이들 가운데에는 스페이스K의 독특한 건축미를 보기 위해 오는 건축 마니아들도 상당하다. 실제로 마곡산업단지와 이웃해 있는 식물원과 연계해 건축과 미술·식물 덕후들의 답사 코스로 자리잡고 있다.

스페이스K가 도심 한가운데나 서울 근교의 한적한 곳이 아닌 산업단지내에 들어서게 된 건 지난 2018년. 이곳에 사옥인 ‘코오롱원앤 온리(One & Only)타워’를 건립한 코오롱그룹은 서울시에 기부채납 조건으로 미술관을 짓기로 한 것이다. 지난 2013년부터 마곡산업단지에 기업들을 유치한 서울시는 ‘파격적인’ 분양조건을 주는 대신 미술관이나 공연장 등 문화예술시설을 건립해 기부를 유도하는 공공기여 방식을 추진했다.

지난 2011년부터 광주, 부산, 대구 등 전국 5곳에 스페이스 K 갤러리를 운영할 만큼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코오롱 그룹은 마곡산업단지에 이들 갤러리를 미술관으로 통폐합하고 20년간 운영한 뒤 서울시에 기부채납할 계획이다.

코오롱그룹은 지난 2018년 총 105억 원을 들여 마곡지구 문화공원2호 연면적 600평(2.044㎡)에 지하 1층, 지상2층 규모로 미술관을 건립하는 프로젝트에 들어갔다. 공원의 입지조건을 극대화하기 위해 건축가 조민석 소장(매스 스터디스)에게 설계를 의뢰했다. 2014년 제14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조 건축가는 ‘공원내 언덕’의 개념을 살리기 위해 ‘아크’(Arcs·호)를 추켜들었다. ‘건물과 공원, 사람이 하나의 유기적인 곡선(호)으로 자연스럽게 흘러 마치 도시공간의 일부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인지 미술관은 얼핏 보면 공원 언덕인지, 건물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2층으로 지어진 건물은 낮은 자세로 둥지를 튼 덕분에 시각적으로 편하고 지상에서 자연스럽게 계단으로 연결되는 옥상은 미술관에 온 관람객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쉽게 올라가 주변을 조망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무엇보다 스페이스K는 2층 규모의 외관에 비해 내부는 압도적인 스케일을 자랑한다. 천장 최고 높이가 10m에 달하며 서너 개의 가벽이 전시장에 설치돼 역동적인 전시연출이 가능하다.

황 큐레이터는 “미술관 설계를 의뢰할 당시 ’전시장 층고는 10m, 기둥이 없는 내부‘라는 단 2개의 조건만 제시했다”면서 “화이트톤으로 마감된 전시장과 가벽 덕분에 작품을 다채롭게 디스플레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헤르난 바스전은 이런 스페이스K의 공간적 특징을 잘 살려냈다. 가로 길이 5m, 세로 길이 2~3m에 달하는 초대형 작품 두 점을 비롯해 총 20여 점의 그림이 입체적으로 내걸려 흥미롭다. 특히 기둥이 없어 시야가 특이는 전시장은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헤르난 바스는 마이애미 출신의 쿠바계 작가로 세계적인 컬렉터인 ’루벨 컬렉션‘에 소개되면서 스타로 급부상했다. 이후 LA현대미술관(2005), 베니스 비엔날레(2009) 전시로 주목받았으며 현재 휘트니미술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2007년부터 근작까지 작가의 변화를 보여주는 작품이 고루 배치됐다. 2010년 전후로는 추상적 풍경 속에 인물의 존재감이 미미하게 보이다가 시간이 갈수록 인물들이 화면 전면에 등장한다. 거의 모든 그림에 나른하고 불안해 보이는 청년들의 표정에서 추억과 환상, 공포 등이 뒤섞인 한편의 드라마가 스쳐 지나간다.

사실, 스페이스K는 단순히 미술 작품만을 관람하는 공간이 아니다. 서울시의 공공기여방식에서 출발한 미술관 답게 예술을 활용한 코오롱의 사회공헌활동을 보여주는 징표이기도 하다.

코오롱은 미술관 개관 이전인 지난 2011년 서울 등 전국 5곳에 스페이스 K 갤러리를 통해 총 152회 전시를 개최, 437명의 작가를 지원해왔다. 특히 국내 신진작가, 경력이 단절된 작가를 발굴하는 한편 국내에 덜 알려진 해외 작가들을 후원하는 등 현대미술 저변 확대에 힘쓰고 있다.

스페이스K 개관은 상대적으로 문화인프라가 부족한 서울시 서남부지역민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문화명소가 됐다. 인근의 직장인들 뿐만 아니라 지역민이 자유롭게 산책하듯 미술관에서 난해한 현대미술을 도슨트의 안내로 쉽게 이해하고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기 때문이다.

황 큐레이터는 “현대미술을 콘셉트로 내건 스페이스K는 작품성에 비해 덜 조명받은 젊은 작가나 헤르난 바스 처럼 국내에 잘 소개되지 않은 외국작가들의 전시를 주로 기획한다”면서 “역시 공공기여방식으로 현재 건립중인 LG아트센터가 이 곳에 들어서면 거대한 미술관, 공연장, 공원이 어우러진 거대한 문화벨트가 조성될 것’이라고 기대를 나타냈다. 한편 이번 헤르난 바스 전은 오는 27일까지 열리며 오는 7~9월엔 영국 개념미술 작가 라이언 갠더의 전시가 개최된다.

/서울=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