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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돈 동아병원장] 광주 트라우마센터 상설기구로 만들어야
2016년 11월 09일(수) 00:00
분노와 허탈감으로 대한민국이 또 ‘집단 우울증’에 빠지려 하고 있다. 2년 전 세월호 사건이 있었을 때 겪었던 것과는 일견 달라 보이지만 그 내면은 크게 다를 바 없는, 국가권력에 의한, 원치않는 집단트라우마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이런 상황에서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하는 우울감이 대한민국을 다시 한번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으려 하고 있다.

이 시대의 희망인 청소년들은 2014년 4월 16일 이후 더 이상 어른들의 말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고들 한다. 지난 9월 경주에서 강한 지진이 일어났을 때 ‘가만히 있어라’는 선생님들의 지시도 불구하고 건물 밖으로 나간 학생들의 행동도 이제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고문을 비롯한 여러 가지 형태의 국가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은 신체적 손상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심한 고통을 겪게 되고, 피해 당사자와 함께 그 가족들도 심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입게 된다. 과거 민간인학살, 의문사, 고문, 폭력, 실종 등 국가폭력의 피해자가 30여 만 명에 이르고 있으나 이들에 대한 ‘국가적 차원에서의 치유’를 위한 사업은 그동안 전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5·18 관련자 등 국가폭력 피해자와 가족들의 상처를 지속적으로 치유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전문기관의 필요성에 대해 많은 민간단체들의 노력으로 2012년 10월 18일 광주트라우마 센터가 개소하였다. 보건복지부 정신보건시범사업으로 선정되어 한해 운영비 8억7000만 원을 국비와 시비로 지원받아 광주시 직영으로 운영되었다. 물론 3년간 한시적인 시범사업이었다.

트라우마센터는 그동안 3개팀 11명의 전문 인력들이 5·18 관련자 410명에 대해 지속적으로 치유와 상담을 해왔고 이용객들이 해마다 늘어 지난해에만 1998명이 치유·상담을 받는 등 ‘필수시설’로 인정받았다. 전문 인력들도 ‘1년 기간제 근로자’ 라는 불안한 신분으로 매년 재계약을 해 가면서 센터운영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동안 센터 운영과 지원 관련 업무는 광주시 복지건강국 건강정책과가 담당해 왔다. 이는 트라우마 센터가 보건복지부의 정신건강시범사업의 일환으로 광주시 정신건강증진센터, 광주자살예방센터와 함께 시작했기 때문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국가고문피해자뿐만 아니라 소방관, 경찰관 등 일반적인 트라우마 피해자들까지도 치유하는 역할을 기대했지만 80년 5월을 겪은 광주의 역사적 상황으로 5·18 등 국가폭력으로 인한 피해 대상자의 치유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복지부는 국가 정신보건 5개년 계획, 그리고 시범사업의 초기 목적과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예산 지원을 꺼렸고, 올해부터는 정부예산 지원이 중단되었다. ‘국가적 차원에서의 치유’를 위한 사업이 폐지될 위기였다. 다행히 광주시에서 올해 운영비를 추가경정예산으로 편성하여 트라우마 센터의 해체 위기는 넘겼다. 하지만 위기를 넘겼다기보다는 1년 연장하였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아직도 국가폭력 피해자를 위한 기관은 광주트라우마센터 뿐이다. 이제는 트라우마 센터를 독립적인 상설기구로 전환을 해야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일반적인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치유에 대한 지원은 복지부 소관이나 국가폭력에 의한 것은 행정자치부 소관이라는 정부기관 특유의 떠밀기식 행정으로 국가적인 지원은 아직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어찌보면 처음부터 3년 한시 사업으로 생색만 내고 더 이상 지원을 하지 않으려는 의도였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현재는 도심 고층 건물로 둘러싸인 번잡한 유흥가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어 치유에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화정동, 과거 국군광주병원이 있던 자리에 센터를 건립하는 방법, 광주시가 출연하는 재단법인을 설립하는 방안도 있다. 좋은 방법들이다. 앞으로 센터의 독립적인 상설기구화는 국가로부터 예산을 지원받고, 지자체로부터 부지와 건물을 지원받고 그 운영은 독립적 자율권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하지 않을까?

물론 광주시가 해야할 일이 있다. 하지만 광주트라우마 센터에 대한 국가차원의 지원은 단순한 물리적인 지원이 아닌 그동안 국가에 의해 상처받은 사람들에 대한 국가가 해야할 최소한의 사죄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마음속 깊은 상처로 어렵고 힘든 사람을 치유하고 온전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책임일진대, 상처를 헤집어 더 아프게 하고, 없는 상처도 국가가 새로 만들어 국민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참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은펜칼럼은 오피니언 기고 최우수작 수상자의 모임인 ‘은펜클럽’ 회원들의 칼럼을 싣는 코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