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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동장(秋收冬藏)
김 창 균
광주시교육청 장학사
2014년 10월 08일(수) 00:00
이른 추석이 지난 지도 벌써 한 달, 귀뚜라미 소리가 귀에 익은 지도 오래다. 남녘의 단풍은 10여일 후라지만, ‘일엽락천하지추(一葉落天下知秋)’라니 떨어지는 잎사귀 하나에도 세상은 이미 가을임을 느낀다. 천자문에서도 ‘한래서왕 추수동장(寒來暑往 秋收冬藏)’이라 했으니, 바람이 차가워지며 깊어가는 가을은 겨울맞이에 앞서 거둬들이기에 바쁘기도 하다.

거둬들임을 뜻하는 ‘수(收)’는 ‘치다’와 ‘매다’라는 글자가 합해진 것이니, 결실을 거두는 것은 필요 없는 것을 쳐내는 과정도 포함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김현승이 ‘가을은 머나먼 하늘에서 온다’며 가을에는 반성적 성찰과 사색이 필요하다고 한 것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기실 돌아보면, 쉼 없는 달리기를 요구하는 신자유주의의 경쟁 시스템에 길들여진 우리는 달려도 겨우 제자리를 유지하는 붉은 여왕의 역설에 빠진 듯싶다. 루이스 캐럴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붉은 여왕은 앨리스에게 “제자리에 있고 싶으면 죽어라 뛰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죽어라 뛰어도 제자리인 현실이 과연 합당한 것인지, 다른 곳에 가기 위해 두 배로 더 빨리 달리는 것을 강요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끊임없는 증식을 요구하는 현대 사회 구조는 어찌 보면 칼 폴라니가 말했던 ‘악마의 맷돌’처럼 모든 것을 가루로 만들지도 모른다. 이럴 때 본래의 길이 하나만이 아님을 생각해 보는 것은, 잠시 길에서 벗어나 현실을 객관화하여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재작년 5월, 이 자리를 빌려 딸아이의 늦잠에 대한 소회를 피력한 적이 있었는데, 최근 ‘9시 수업’에 대한 찬반 논란을 보며 아이들의 생체 리듬과 수업 시작 시간의 괴리를 다시금 고민해 본다. 물론 학교의 자율성 침해, 맞벌이 부부의 애로 및 생활교육의 문제, 새벽반 학원의 문제, 고3 수험생의 혼란 등 현실적 문제가 녹록하지 않음을 잘 안다. 다만 본래의 취지가 아이들의 아침 식사와 수면권 보장에 있음을 염두에 둔 생각이다.

나아가 본질에 맞는 교육과정이 학교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진행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급변하는 미래 교육 환경에 안정적으로 대비할 수 있다는 당위성이다. 이미 미래학자들은 20년 내에 현존 직업의 절반이 사라질 거라고 예고하고 있으며, 그 리스트에는 전문작가, 회계사, 경제학자에서 비행기 조종사에 이르기까지 지적 노동이나 전문성을 요구하는 직종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바로 며칠 전 KAIST 심현철 교수팀은 ‘조종사 로봇’으로 비행기를 성공적으로 조종하였다.

앞으로 없어질 직업의 공통점은 컴퓨터(로봇)가 대체할 수 있는 일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살아남을 수 있는 직업은 과거에 정해진 방법만으로는 할 수 없는 분야이기에, 이런 직업을 위한 대비를 학교교육이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변화의 당위성을 인정한다면, 다각적 소통을 통해 기꺼이 학교교육이 변화해야 할 길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9시 수업’에 대한 논쟁이 학교교육의 방향성 탐색을 위한 마중물의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한다.

‘앉은 자리를 바꾸지 않으면 새로운 풍경을 볼 수 없다’는 누군가의 가르침이 떠오른다.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답습하거나 반복적으로 행동할 것이 아니라, 현행 방식에 대한 반성과 검토가 필요한 법이다. 그럼으로써 사회인으로서의 역량을 키워내는 학교교육도 현행 제도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통해 동장(冬臧)의 완성을 이루고, 나아가 사회에 내보내 춘생하장(春生夏長)의 순환적 발전에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논쟁의 결과를 떠나 분명한 건 사라져 가는 낡은 과거보다는 미래에 대한 모색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는 점이다. 졸업장과 취업을 위한 스펙만을 위한 학교 교육은 더 이상 존재 가치를 상실한다. 그러하기에 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고민에 추호(秋毫)의 게으름도 용인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