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2월의 ‘마음’ - 이중섭 소설가
![]() |
2월에는 겨울 숲속에서 아직도 정절을 지키고 있는 빨간 맹감이 생각난다. 숲속은 나무들의 움트는 소리로 억새처럼 서걱댄다. 숲속을 벗어난 바람은 2월의 들판을 기웃거린다. 아직 색바랜 풀들이 여전한 밭 언덕에 아까시나무 줄기가 꼿꼿하다. 물줄기를 끌어올리려는 모습이 푸른 힘줄로 역력하다. 물이 고인 보(洑)에 서면 수초 밑에서 봄을 숨 쉬는 미꾸라지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기다리는 희망이 수포가 되어 방긋, 방긋, 물 위로 떠 오른다. 강둑에 서면 저절로 몸을 뒤집는 강물이 유유히 제 길을 홀로 간다. 봄 바다의 비린내가 꽃향기보다 강하다.
지금은 거의 볼 수 없는 2월의 풍경에는 물결치는 보리밭이 있었다. 보리밭 한 가운데에는 늘 묏동이 누워 있고, 그곳에 누우면 햇볕이 따스했다. 이맘때에는 할미꽃이 줄기를 세우며 봄 맞을 준비를 벌써 끝낸 뒤였다. 묏동 위에는 장끼가 가슴을 활짝 벌린 채 서 있었다. 겨우내 바짝 굶주린 장끼는 봄을 재촉하는 우렁찬 목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이번 ‘고향 말로 쓰는 편지 마음’은 제주도, 전라남북도, 경상남북도, 충청남북도, 강원도, 평안남도 등 전국 각지에 뿌리를 둔 15인의 필자가 참여했다. 이들의 직업도 시인, 아동문학가, 소설가, 섬마을 학교 교장, 방송작가, 환경 활동가, 목사, 기자, 농부, 통일 활동가 등 다양하다. 이들은 사투리, 방언, 탯말 등으로 불리는 각자의 고향 말로 쓴 편지로, 표준어로는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던 깊은 속내를 나타냈다.
책 ‘마음’ 속 편지 대상도 다양하다. 돌아가신 부모가 가장 많았다. 어린 시절 친구와 스승이 그 뒤를 이었다. 편지글의 특성상 사람이 다수일 수밖에 없었다. 고향 말로 편지를 쓰는 작업은 대상을 정하는 일이 가장 까다로웠다. 대상에 따라 고향 말의 어투가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지난 어린 시절의 은사님에게 보내는 고향 말 편지를 생각해 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다. 자기보다 윗사람에게 고향 말로 편지를 쓰다 보면 얼핏 깔보는 듯하게 보였다.
편지의 대상으로 스승분들을 먼저 생각했다. 다음에는 첫사랑의 소녀로 이어졌다. 고향 말로 쓴 책 ‘마음’을 통해 여기 첫사랑은 잘 있다고 전하고 싶었다. 오래전에 죽은 마을 여자아이도 어른거렸다. 산 자들은 어쩌면 죽은 자들에 대한 부채 같은 것이 숨어 있었다. 문득, 아니다 싶었다. 사람에게 쓰는 편지글은 너무 평범했다. 마을 뒷산을 서식처로 삼은 장끼에게로 대상을 바꿨다. 왠지 대화가 불편했다. 다시 대상을 1980년 5월의 풍파 속에 휩쓸려 망월동에 있는 친구로 바꿨다. 특히 죽어서 사갑(死甲)을 맞은 친구를 생각하자 편지글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원고를 마치려 했는데 아뿔싸, 뭔가 깊은 울림이 없고 밋밋한 느낌이었다. 그때 묏동에서 친구와 장끼가 함께 나에게 날갯짓하는 풍경이 연상되었다.
장끼를 잡으러 다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장끼는 꼭 밭 한가운데 묏동에서 울었다. 묏동은 야산의 줄기가 볼록 튀어나온 명당자리였다. 멀리서도 묏동 위에 서 있는 장끼가 눈에 띄었다. 장끼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야산에서 밭고랑을 타고 내려왔다가 저녁노을 질 때쯤에 다시 산으로 돌아갔다. 황금 가슴털이 예쁜 장끼를 잡아다가 집에서 키우고 싶던 마음이 늘 간절했다.
묏동의 장끼는 아름다웠다. 가슴 좌우로 알록달록한 개나리색 털이 바람에 흩날렸다. 긴 목 윗부분에는 한여름 벌판의 진한 청록색이, 머리 부분에는 진한 흑색 털이 빛을 더했다. 눈 주위 벼슬이 또록또록, 붉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아름다운 것은 장끼 목을 두르고 있는 흰색 테였다. 마치 영험한 산신령이 장끼는 ‘우리 것’이라는 표시로 하얀 모시 베를 감아 놓은 듯 선명했다.
이런 어릴 적 선망의 마음을 담아 편지글을 썼다. 장끼는 어쩌면 첫사랑의 소녀일 수도, 오래전에 다른 세상으로 간 마을 여자 친구이기도, 지금은 얼굴조차 희미한 초등학교 여자 선생님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장끼는 마을 들판을 뛰어다니던 마을 개구쟁이들의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늘 장끼의 꽁무니를 따라다녔고, 장끼는 늘 그런 아이들과 함께 부대끼며 뒹굴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어느새 바람과 함께 마을을 떠났다. 그 자리에 장끼만 혼자 남아 맹감처럼 2월의 붉은 마음을 지키고 있었다.
책 ‘마음’ 속 편지 대상도 다양하다. 돌아가신 부모가 가장 많았다. 어린 시절 친구와 스승이 그 뒤를 이었다. 편지글의 특성상 사람이 다수일 수밖에 없었다. 고향 말로 편지를 쓰는 작업은 대상을 정하는 일이 가장 까다로웠다. 대상에 따라 고향 말의 어투가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지난 어린 시절의 은사님에게 보내는 고향 말 편지를 생각해 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다. 자기보다 윗사람에게 고향 말로 편지를 쓰다 보면 얼핏 깔보는 듯하게 보였다.
편지의 대상으로 스승분들을 먼저 생각했다. 다음에는 첫사랑의 소녀로 이어졌다. 고향 말로 쓴 책 ‘마음’을 통해 여기 첫사랑은 잘 있다고 전하고 싶었다. 오래전에 죽은 마을 여자아이도 어른거렸다. 산 자들은 어쩌면 죽은 자들에 대한 부채 같은 것이 숨어 있었다. 문득, 아니다 싶었다. 사람에게 쓰는 편지글은 너무 평범했다. 마을 뒷산을 서식처로 삼은 장끼에게로 대상을 바꿨다. 왠지 대화가 불편했다. 다시 대상을 1980년 5월의 풍파 속에 휩쓸려 망월동에 있는 친구로 바꿨다. 특히 죽어서 사갑(死甲)을 맞은 친구를 생각하자 편지글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원고를 마치려 했는데 아뿔싸, 뭔가 깊은 울림이 없고 밋밋한 느낌이었다. 그때 묏동에서 친구와 장끼가 함께 나에게 날갯짓하는 풍경이 연상되었다.
장끼를 잡으러 다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장끼는 꼭 밭 한가운데 묏동에서 울었다. 묏동은 야산의 줄기가 볼록 튀어나온 명당자리였다. 멀리서도 묏동 위에 서 있는 장끼가 눈에 띄었다. 장끼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야산에서 밭고랑을 타고 내려왔다가 저녁노을 질 때쯤에 다시 산으로 돌아갔다. 황금 가슴털이 예쁜 장끼를 잡아다가 집에서 키우고 싶던 마음이 늘 간절했다.
묏동의 장끼는 아름다웠다. 가슴 좌우로 알록달록한 개나리색 털이 바람에 흩날렸다. 긴 목 윗부분에는 한여름 벌판의 진한 청록색이, 머리 부분에는 진한 흑색 털이 빛을 더했다. 눈 주위 벼슬이 또록또록, 붉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아름다운 것은 장끼 목을 두르고 있는 흰색 테였다. 마치 영험한 산신령이 장끼는 ‘우리 것’이라는 표시로 하얀 모시 베를 감아 놓은 듯 선명했다.
이런 어릴 적 선망의 마음을 담아 편지글을 썼다. 장끼는 어쩌면 첫사랑의 소녀일 수도, 오래전에 다른 세상으로 간 마을 여자 친구이기도, 지금은 얼굴조차 희미한 초등학교 여자 선생님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장끼는 마을 들판을 뛰어다니던 마을 개구쟁이들의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늘 장끼의 꽁무니를 따라다녔고, 장끼는 늘 그런 아이들과 함께 부대끼며 뒹굴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어느새 바람과 함께 마을을 떠났다. 그 자리에 장끼만 혼자 남아 맹감처럼 2월의 붉은 마음을 지키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