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던 것이 보일 때…- 채희종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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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만남의 연속이라고들 한다.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사람이나 상황과 마주한다. 이렇게 매일 이어지는 만남이지만 유독 우리를 당혹케 할 때가 있는데, 바로 평소 보이지 않던 것이 갑자기 보일 때이다. 예전엔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일 때는 처음엔 당혹스럽지만 이내 감동에 빠지게 된다.
전쟁 같은 폭염이 시작된 올 여름의 시작이 바로 그러했다.
7월의 어느 날 이른 아침에 아버지께서 전화를 하셨다. 욕실 모서리의 선반 세 개 가운데 맨 아래 것이 부서졌으니 고쳐달라는 주문이었다. 부모님 모두 고령인 탓에 아프거나 다쳤다는 내용이 아닌 민원용 전화에 안도했던 터라, 일단 남은 두 개 선반이 있으니 그걸 쓰고 계시면 나중에 고쳐드리겠노라고 건성으로 답했다. 실은 이즈음 한달 일정으로 지금까지 살고 있던 아파트를 리모델링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보이는 게 다는 아니다
임시 거주 공간이 필요하던 차에 마침 지인으로부터 빈 아파트를 구하게 됐다. 지인의 연로한 부모님들이 살던 소형 아파트인데 부친이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요양병원에 입원하고, 어머니가 병간호를 맡으면서 수개월째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었다.
네 식구가 함께 살 수 있는 마땅한 원룸을 구하기 어렵던 차에 곧바로 살림살이는 이삿짐 센터 창고에 맡기고, 꼭 필요한 식기와 옷 가지만을 챙겨 주인 없는 집에 손님으로 들어 앉았다. 마치 집주인 외출한 듯 사람만 없을 뿐 모든 세간이 그대로 인 아파트의 한달살기가 생경하기는 했지만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어린 아들들은 며칠 지나지 않아 새 아파트로 갈 날 만을 손꼽았다. 30년 된 낡은 아파트인데다 주인이 오랜 기간 집을 비우면서 벽지 곳곳이 얼룩지고, 이곳저곳에서 쿰쿰한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내부뿐만 아니라 세간까지도 집주인처럼 나이를 먹은 이 아파트에서 유일하게 새 것이 있었는데, 바로 욕실 바닥이었다. 바닥 소재는 거칠거칠한 화강석 타일이었다. 아마도 자식들이 부모의 낙상을 막기 위해 욕실 바닥을 뜯어 고친 것이리라. 모든 것을 고쳐야 할 아파트에 혼자만 새 것인 욕실 타일은 볼 때마다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이 때 얼핏 떠오르는 게 있었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욕실 선반이 부서진 이유를 물었다. 역시나 어머니가 욕실 바닥에서 미끄러지면서 반사적으로 선반을 움켜잡았고, 그 바람에 선반이 뜯겨 나갔다는 것이다. 대신 어머니는 넘어지지 않고 가볍게 주저 앉아 다행히 다치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대로 말하면 뻔히 아들에게 한소리를 듣거나 걱정을 끼칠까 봐 숨긴 것이리라. 이 얘기를 들은 손자 녀석들이 곧바로 욕실 선반을 붙였고, 욕실 바닥은 사람을 불러 미끄럼 방지 시공을 했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며 약간은 당혹스러운 순간이었다.
마음을 열어야 보인다
남의집살이에 살짝 적응이 된 듯 했지만 바뀐 환경 탓인지 평소보다 두 시간 이상 일찍 깨는 습관(?)이 생겼다. 이 참에 산책이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이른 아침 아파트를 나서서 근린공원과 동네 둘레길을 뛰기 시작했다. 주말이었던 듯 싶다. 마주 오는 사람들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말끔하게 차려 입은 60대 초반의 신사가 곱게 차려 입은 80대 후반 노파의 손을 꼭 쥐고 오는 것이었다. 추측건대 아들이 어머니를 노인 유치원에 데려다 주는 장면이었다. 예쁘게 화장하고 아들의 손을 꼭 잡은 어머니의 얼굴은 발갛게 빛나고 있었다. 공교롭게 이들 커플 뒤로 60대 딸과 80대 어머니로 보이는 모녀도 서로 손을 꼭 쥐고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다. 옷 차림이 모두 운동복인 것을 보면 인근 공원으로 걷기 운동을 가거나 헬스장에 가던 길일 것이다.
이들 두 쌍의 뒤에도 나이 든 모녀가 있었는데 행색이 사뭇 달랐다. 네발 지팡이를 짚는 어머니가 예순은 훌쩍 넘긴 듯 보이는 딸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걷고 있었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를 딸이 모시고 재활운동을 하고 있는 듯 싶었다.
8,90세 노부모를 둔 입장에서 여러 생각이 드는 장면이었다. 항상 자식의 손을 잡고 다녔던 부모들이 이제는 늙어 자식의 손에 이끌리는 모습이 따뜻하면서도 한편으로 아리게 다가왔다.
이후로도 이 아파트 주변에서는 비슷한 노인 커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택지 지구가 조성된 지 오랜 된 탓에 젊은 세대는 떠나고 경제적 여력이 없는 노인들이 많아 볼 수 있는 풍경이라고 짐작했다.
어느덧 리모델링이 끝나 한 달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새집(?)으로 돌아온 뒤에 산책을 하다가 또다시 당혹감을 느꼈다. 우리 집 근처에서도 아침이면 손을 꼭 잡고 어디론가 가거나 운동을 하는 늙은 부녀나 모자를 보는 것이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 곁에 있었던 것을 이제서야.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일 때는 감동일 수 밖에 없다.
전쟁 같은 폭염이 시작된 올 여름의 시작이 바로 그러했다.
보이는 게 다는 아니다
임시 거주 공간이 필요하던 차에 마침 지인으로부터 빈 아파트를 구하게 됐다. 지인의 연로한 부모님들이 살던 소형 아파트인데 부친이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요양병원에 입원하고, 어머니가 병간호를 맡으면서 수개월째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었다.
내부뿐만 아니라 세간까지도 집주인처럼 나이를 먹은 이 아파트에서 유일하게 새 것이 있었는데, 바로 욕실 바닥이었다. 바닥 소재는 거칠거칠한 화강석 타일이었다. 아마도 자식들이 부모의 낙상을 막기 위해 욕실 바닥을 뜯어 고친 것이리라. 모든 것을 고쳐야 할 아파트에 혼자만 새 것인 욕실 타일은 볼 때마다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이 때 얼핏 떠오르는 게 있었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욕실 선반이 부서진 이유를 물었다. 역시나 어머니가 욕실 바닥에서 미끄러지면서 반사적으로 선반을 움켜잡았고, 그 바람에 선반이 뜯겨 나갔다는 것이다. 대신 어머니는 넘어지지 않고 가볍게 주저 앉아 다행히 다치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대로 말하면 뻔히 아들에게 한소리를 듣거나 걱정을 끼칠까 봐 숨긴 것이리라. 이 얘기를 들은 손자 녀석들이 곧바로 욕실 선반을 붙였고, 욕실 바닥은 사람을 불러 미끄럼 방지 시공을 했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며 약간은 당혹스러운 순간이었다.
마음을 열어야 보인다
남의집살이에 살짝 적응이 된 듯 했지만 바뀐 환경 탓인지 평소보다 두 시간 이상 일찍 깨는 습관(?)이 생겼다. 이 참에 산책이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이른 아침 아파트를 나서서 근린공원과 동네 둘레길을 뛰기 시작했다. 주말이었던 듯 싶다. 마주 오는 사람들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말끔하게 차려 입은 60대 초반의 신사가 곱게 차려 입은 80대 후반 노파의 손을 꼭 쥐고 오는 것이었다. 추측건대 아들이 어머니를 노인 유치원에 데려다 주는 장면이었다. 예쁘게 화장하고 아들의 손을 꼭 잡은 어머니의 얼굴은 발갛게 빛나고 있었다. 공교롭게 이들 커플 뒤로 60대 딸과 80대 어머니로 보이는 모녀도 서로 손을 꼭 쥐고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다. 옷 차림이 모두 운동복인 것을 보면 인근 공원으로 걷기 운동을 가거나 헬스장에 가던 길일 것이다.
이들 두 쌍의 뒤에도 나이 든 모녀가 있었는데 행색이 사뭇 달랐다. 네발 지팡이를 짚는 어머니가 예순은 훌쩍 넘긴 듯 보이는 딸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걷고 있었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를 딸이 모시고 재활운동을 하고 있는 듯 싶었다.
8,90세 노부모를 둔 입장에서 여러 생각이 드는 장면이었다. 항상 자식의 손을 잡고 다녔던 부모들이 이제는 늙어 자식의 손에 이끌리는 모습이 따뜻하면서도 한편으로 아리게 다가왔다.
이후로도 이 아파트 주변에서는 비슷한 노인 커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택지 지구가 조성된 지 오랜 된 탓에 젊은 세대는 떠나고 경제적 여력이 없는 노인들이 많아 볼 수 있는 풍경이라고 짐작했다.
어느덧 리모델링이 끝나 한 달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새집(?)으로 돌아온 뒤에 산책을 하다가 또다시 당혹감을 느꼈다. 우리 집 근처에서도 아침이면 손을 꼭 잡고 어디론가 가거나 운동을 하는 늙은 부녀나 모자를 보는 것이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 곁에 있었던 것을 이제서야.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일 때는 감동일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