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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의 떠오르는 3색 핫플레이스를 가다…‘1004섬’ 물들인 존재감
-암태소작쟁의 100주년 기념관,
1923년 농민항쟁사 예술로 승화시킨 공간
옛 모습 그대로…역동적 분위기 살아숨쉬어

-남하부엌
낡은 양곡창고, 이탈리아 레스토랑으로
창고 일부, 관광객과 지역주민 위한 갤러리

-둔장마을 미술관
작은 마을에 50년 된 마을회관 리모델링
미술관 벽면 메운 수십여명 드로잉 눈길
2023년 12월 26일(화) 18:30
신안 암태도 단고리에 들어선 ‘암태소작쟁의 100주년 기념전시관’은 소작쟁의가 일어났던 마을의 옛 농협창고에 100년 전의 항쟁사를 예술로 표현한 서용선 작가의 작품들로 꾸몄다.
1004개의 섬을 거느린 신안은 ‘1도(島) 1뮤지엄’ 프로젝트로 유명하다. 압해도의 저녁노을미술관에서부터 자은도 세계조개박물관, 증도의 갯벌 생태전시관 등 1개의 섬에 하나의 미술관을 건립하는 초대형 사업이다. 이미 11개의 미술관이 개관을 마친 데 이어 오는 2024년 자은도 둔장해변에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인피니또 뮤지엄’이 들어서게 된다. 최근 신안 암태도와 자은도 둔장마을에 또 하나의 미술관이 들어섰다. 암태소작쟁의 100주년 기념관(일명 서용선 미술관)과 둔장마을 미술관이 그것으로, 작지만 색깔있는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암태소작쟁의 100주년 기념관

지난달 중순, 신안 압해도와 암태도를 잇는 천사대교를 건너자 기동 삼거리의 노부부 벽화가 은은한 미소로 방문객을 맞는다. 포토존으로 인기가 많은 이곳은 마을 주민인 70대 부부를 모델로 그린 담벼락 벽화다. 스산한 겨울 날씨에도 벽화 주변에는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 있는 관광객들이 눈에 띄었다.

기동 삼거리에서 왼쪽 방향으로 달리면 창고나 빈 주택 외벽에 그려진 벽화들이 하나 둘씩 등장한다. 꽃이나 나무 등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담은 벽화와 거리가 먼, 민중 그림에 가까운 모습이다. 암태도 소작쟁이 발발 100주년을 맞아 오랫동안 비어있는 건물에 그려 넣은 1923년 당시 농민들의 항쟁 장면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암태면 단고리에 들어선 ‘암태소작쟁의 100주년 기념전시관’(이하 기념전시관)이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기념전시관은 바로 소작쟁의가 일어났던 마을의 옛 농협창고를 예술로 승화시킨 공간이다. 곡식을 보관하다 오랫동안 비어있던 창고를 되살리기 위해 원로작가 서용선(72·전 서울대 미대교수)에게 의뢰해 암태도 항쟁을 기리는 전시관으로 리모델링했다. 인물, 풍경, 역사, 전쟁, 신화 등 다양한 주제를 특유의 거칠고 묵직한 느낌으로 표현하는 서 작가는 신안군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한 이승미 행촌미술관장(전 신안군 예술감독)은 “단순히 소작쟁의의 역사적 의미를 박제화 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동시대에도 공감할 수 있는 현대미술의 장(場)으로 키워나가기 위해 기획했다”고 말했다. ‘서용선, 암태소작쟁의 100년을 기억하다’로 열리고 있는 전시관에 들어서면 마치 100년 전의 암태도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진다.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옛 모습을 되살린 공간과 높은 층고다. 밖에서 보면 평범하기 짝이 없는 허름한 창고이지만 내부는 날 것 그대로의 역동적인 분위기가 살아 숨쉬고 있다.

출판인 김언호씨의 책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남하갤러리.
◇남하부엌

기념전시관에서 나오면 자동차로 2~3분 거리인 ‘남하부엌’(신안군 암태면 장단고길 7-81)에 들를 일이다. 지난해 11월 개관과 동시에 신안 관광객들의 SNS를 타고 전국적인 핫플레이스로 부상한 곳이다. 기념전시관과 비슷한 시기에 개장한 ‘남하부엌’역시 낡은 양곡 창고를 개조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이다. 지난 2016년 인천 출신인 성일경(61)대표가 오랜 도시생활을 접고 장흥으로 남하해 운영하던 식당을 지난해 지금의 장소로 옮겨 같은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천장 위에 설치된 카약과 주방 앞에 매달려 있는 하몽, 테이블 주위에 전시된 구식 카메라들과 재봉틀 등 다양한 컬렉션들이 이국적인 정취를 물씬 풍긴다. 인천에서 목공소를 운영하며 작품활동을 해온 성 대표가 틈틈히 벼룩시장과 골동품 가게들을 돌아 다니며 수집한 것들이다.

실제로 성 대표는 옛 양곡창고의 원형을 살리기 위해 기찻길 침목이나 폐선 등을 직접 구해 레스토랑의 천장이나 테이블, 인테리어 소품으로 재활용했다.

성 대표는 “예술의 섬으로 변신중인 신안은 젊은 관광객들이 즐길 만한 먹거리가 많지 않다”면서 “청년들이 찾아오고 머물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신안군이 추진중인 ‘먹거리 활성화 사업’에 참여해 신안의 천일염과 신선한 재료로 만든 하몽, 피자, 파스타 등 특색있는 메뉴를 선보이게 됐다”고 말했다.

옛 양곡창고를 리모델링한 ‘남하부엌’은 신안을 찾은 관광객들이 색다른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남하부엌’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한 레스토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평소 화가, 음악인, 작가 등 예술인들과 교류를 하고 있는 성 대표는 100평 규모의 창고 2개 가운데 일부 공간을 관광객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을 위한 갤러리로 꾸몄다. 남하 갤러리의 테이프를 끊은 첫번째 작가는 출판인 김언호씨다. 지난해 3월 ’지혜의 숲으로’를 비롯해‘세계서점기행’, ‘’그해 봄날’ 등 9권의 책을 펴낸 김언호 대표는 ‘책사진전-지혜의 숲으로’라는 테마로 세계 각국 사람들의 책읽는 풍경과 아름다운 서가 등을 카메라에 담은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다.

신안군 자은도에 자리한 둔장마을 미술관에는 수십년간 고향을 지켜온 주민들의 삶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안혜경 화가의 여행가방전’이 열리고 있다.
◇둔장마을 미술관

신안 자은도에 자리한 ‘둔장마을 미술관’은 50여 년간 둔장마을 주민들과 함께 해온 마을회관을 리모델링한 공간이다. 주민이라고 해봐야 60명 안팎의 작은 마을에 미술관이 들어서게 된 것은 2020년부터. 1971년 새마을운동사업의 일환으로 건립된 마을회관은 세월이 지나면서 도시로 떠나는 이들이 많아 온기를 잃기 시작했다. 건물이 노후화 되면서 비가 새거나 페인트칠이 벗겨 지는 등 애물단지 신세였던 이곳에 햇볕이 들게 된 건 신안군과 이 전 예술감독의 지원 덕분이다. 이 전 감독은 화가 안혜경씨와 손잡고 마을 주민들을 위한 문화사랑방으로 가꾸기 위해 미술관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주민들을 불러 모았다.

안양출신의 안혜경 작가는 아예 여행가방을 들고 신안으로 작업실을 옮겨 자신의 이름 보다는 ‘00댁’ ‘00엄마’, ‘00아빠’로 불리는 어르신들의 삶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모든 작업이 올스톱됐다. 게다가 신안군의 지원도 끊겨 문 닫을 위기에 처할 무렵,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3년도 작은 미술관 전시활성화지원사업’에 선정돼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안혜경 화가의 여행가방전’(2월28일까지)이 열리고 있는 미술관에 들어서면 벽면을 가득 메운 수십 여 명의 얼굴이 시선을 끈다. 안 작가가 사라져가는 고향, 어머니, 아버지들의 인생 스토리를 그림과 글로 기록한 작품들이다. 또한 드로잉 밑에는 마을 주민들이 이 곳에서 진행한 그림교실에서 그린 마을 풍경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안 작가의 드로잉 속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강정원(74) 둔장마을 개발위원장은 “둔장마을 미술관이 생기기 전에는 미술관에서 그림을 관람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면서 “지금까지 70년 동안 살아온 나의 인생 이야기가 담긴 그림을 보면 신기하고 뿌듯하다”고 말했다.

/신안=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