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비혼 출산
2020년 11월 27일(금) 06:00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이라는 구절은 대중가요 노랫말에도 나온다. ‘비혼’이 흔한 요즘 세태의 단면을 잘 보여 주는 말이 아닌가 싶다. 비혼자 수가 많다 보니 우리나라는 물론 대부분의 선진국들에서는 비혼 상태의 출산을 법적·사회적으로 용인하고 있다. 심지어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나라도 있는 실정이다. 최근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 씨가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하면서 ‘비혼 출산’이 이슈가 되고 있다.

고대인들이야 시험관 아기시술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지만, 그리스신화에는 비혼 출산에 관한 얘기가 있다. ‘전쟁의 여신’이자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가 전쟁에 나가기 위해 갑옷을 수리하려고 ‘대장장이의 신’인 헤파이스토스를 찾아갔다.

평소 아테나를 좋아했던 헤파이스토스는 기꺼운 마음으로 갑옷을 수리해 주었는데, 이 과정에서 그동안 억눌렀던 음심이 발동하면서 갑자기 아테나를 덮치게 된다. 하지만 호락호락 당할 것 같았으면 어찌 ‘전쟁의 여신’이라는 호칭이 붙었겠는가. 덮치려는 자와 밀쳐내려는 이가 엎치락뒤치락하는 사이 헤파이스토스가 그만 정액을 아테나의 허벅지에 묻히게 된다.

아테나는 정액을 천으로 닦아서 땅에 내던졌고, 그 정액을 대지의 여신인 가이아가 받아 아기가 태어났다. 굳이 현대적으로 보면 헤파이스토스는 정자 제공자인 셈이고, 가이아는 시험관이며, 아테나는 비혼모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특이한 출생 이력을 가진 이가 에리크토니오스이다. 졸지에 처녀가 애를 가진 셈이 됐지만 아테나는 당당히 어미임을 인정했다. 상반신은 인간 남자이나 하반신은 용의 모습을 하고 태어난 에리크토니오스는 아테네의 왕이 됐으며, 아테나는 아테네를 지키는 수호신이 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다수가 비혼 여성의 시험관 시술을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비혼’과 ‘만혼’의 급증에 따른 결혼·출산율의 저하는 그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여성의 사회 활동 보편화에 따른 전통적 결혼관의 변화에 대비하고, 출산율 제고를 위해서라도 사유리처럼 비혼 출산을 고민해 볼 가치가 있을 것 같다.

/채희종 사회부장chae@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