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4) 천근만근 : 반세기 지나도 바뀔줄 모르는 노동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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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 천근만근 : 반세기 지나도 바뀔줄 모르는 노동환경
2020년 11월 19일(목) 07:30
박은태 작 ‘철골-비계
전태일 분신 50주기를 맞아 최근 열사를 소환하는 뉴스를 자주 접한다. 젊은 날 ‘전태일 평전’을 읽으면서 차비를 아껴 어린 ‘시다’들에게 풀빵을 건넸던 아름다운 청년의 숭고한 이타심에 마음 절절했던 기억이 오래 남아있다. 그 어린 나이에 자신도 가난하고 힘든 상황에서 어린 ‘시다’들을 동생처럼 안쓰럽게 생각했던 사람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야말로 전태일 정신의 본령이라는 생각이 든다.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고 노동법을 지키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몸을 불태운 지 반세기가 지나서도 여전히 노동자들의 현실은 고단하고 어쩌면 더욱 위태롭기까지 하다.

박은태 작가(1961~…)의 ‘철골-비계’(2020년 작)는 전태일열사가 그리도 간절히 원했던 안전해야 할 노동현장이 무색하게 허공에서 비계를 딛고 오르내리며 작업하는 아찔한 모습을 그린 작품인 것 같다. 현재 서울 인디프레스 갤러리에서 ‘천근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전시중인 작가는 의도적으로 전시 일정을 맞춘 것은 아니겠지만 왠지 전태일열사 추모 50주기인 이 즈음이라 더욱 주목하게 한다.

작가는 지난 2018년부터 공사현장을 배경으로 한 철골 시리즈 작업을 해오고 있는데 이 작품은 난지도에서 산악인 기념관 건축현장을 사진 찍어두었던 걸 그린 것이다. 벽면과 하늘을 그리면서 붓 자욱 터치를 의도적으로 칸마다 채워 넣고 공간을 평면화 시켰다. 작업하는 노동자는 악보의 음표처럼, 비계는 오선지처럼 표현했는데 그 이유를 작가는 힘든 공사장이지만 “너무 힘들지 않게…”하고 싶어서라고 밝힌다.

강진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공고를 졸업하고 성남 산업공장을 7년간 다녔던 작가는 취미로 그림을 그리다가 늦깎이로 홍익대 미대에 진학한다. 이후 민미협 노동미술위원회에서 사회참여적인 민중미술운동 활동을 맹렬하게 펼쳐왔다. 특히 공장 노동자로 살았던 화가 자신의 경험은 천근만근의 무게로 짓눌리는 건설현장의 고된 노동과정을 노동하듯이 한 땀 한 땀 그림으로 지어내고 있는 것 같다.

<광주시립미술관학예관·미술사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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