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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가인과 유산슬, 그리고 문화비평의 종언
2019년 11월 25일(월) 04:50
[최유준 전남대 호남학과 교수]
‘TV조선’의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트롯’이 뜻밖의 전국적 화제 속에서 지난 5월 2일 종영된 직후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우승자 송가인을 비롯한 주요 입상자들이 총출동한 ‘미스트롯 전국투어 공연’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5월 25일 인천 공연을 시작으로 고작 한두 달 사이에 고양, 광주, 전주, 천안, 대구, 안양, 창원, 의정부, 부산, 대전, 수원, 청주, 강릉, 원주, 목포, 제주로 숨 가쁜 공연 일정이 이어졌다. ‘미스트롯’ 전국 투어 공연은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으며 내년 상반기까지 예정되어 있다.

지난 8월 12일 목포 공연에서는 목포시장을 비롯한 지역 공무원과 정치인들의 특혜 관람과 관련된 해프닝이 벌어졌다. 한데, 문제 제기가 있은 직후 목포시청 홈페이지에 게시된 목포시장과 공무원들의 글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예컨대 시장 명의의 짤막한 ‘사과문’에는 이런 표현이 있었다. “미스트롯 공연 관련하여 좋은 행사 유치해 시민들께 기쁨을 주고자 했으나…” 덧붙여 시청의 ‘미디어마케팅팀장’의 ‘공지 사항’에도 이런 표현이 있었다. “전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대규모 공연으로 시민들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자 유치한 미스트롯 공연과 관련하여…” 티켓 값이 최저 8만8천 원에서 최고 11만 원이었던 지극히 상업적인 공연을,(이날 목포 공연의 수익만 6~8억 원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것도 지금 이 순간까지 전국의 지방도시란 도시는 남김없이 훑고 다니는 이 전국 투어 공연을, 지역 공무원들이 ‘유치했다’는 말은 과연 무슨 뜻일까?

‘TV조선’은 정확히 10년 전에 당시 이명박 보수 정권이 탄생시킨 ‘종합편성채널’(‘종편’) 가운데 하나다. 당시 야당과 진보 성향 지식인들의 반대에도 이를 무릅쓰고 ‘종편’을 위한 미디어 관련법을 관철시킨 이들의 정치적 의도가 10년 만에 어떻게 적중했는지를 위의 ‘목포 해프닝’이 잘 보여 준다. 그 ‘의도’를 다른 시각에서 말하자면, 문화 영역의 보수적 탈정치화 혹은 문화비평의 종언이다.

심상찮은 정치적 포퓰리즘의 분위기 속에서 오늘날 대중문화, 특히 대중음악계는 비판과 비평의 사각지대가 되어 가고 있다. 방탄소년단(BTS)에서 송가인에 이르기까지 물신화된 대중적 인기는 눈에 뻔히 보이는 미디어 권력과 기획사의 횡포와 착취에 대해서도 눈 감아 줄 것을 요구한다. 방송과 기획사들이 합작하여 벌인 ‘프로듀스 101’이라는 제목의 거대한 사기극이 펼쳐지고, H.O.T 멤버들의 재결성 콘서트에서 옛 소속사의 권리 주장 때문에 제 이름을 쓰지 못하는 현대판 ‘홍길동’ 사건(‘H.O.T’를 ‘H.O.T’라 부르지 못하는)이 벌어져도 그 ‘노예계약’의 문제점은 더 이상 대중들의 이목을 끌지 않을뿐더러 지식인들의 관심조차 얻지 못한다. ‘TV조선’과 송가인 사이에 체결된 ‘노예계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합정역 5번 출구’와 ‘사랑의 재개발’과 같은 히트곡을 통해 송가인 못지않은 깜짝 트로트 스타로 부상한 ‘유산슬’은 이러한 세태를 자조적으로 풍자한다. ‘유산슬’은 인기 개그맨 유재석이 트로트 가수로서 쓰는 예명인데, 그는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예명으로 불리면서 깜짝 트로트 스타로 부상한 데 대해, 역시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출연한 공중파 아침방송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말했다. “유재석은 본인 스스로 결정하고 본인 스스로 움직이는데, 유산슬은 누군가에 의해서 조종을 당하죠.” 이는 물론 청중들의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유머 멘트였지만, ‘벼락 스타 만들기’의 현 세태를 고발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유산슬’을 탄생시킨 공중파 문화방송의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는 프로그램명 자체로 한국식 신자유주의의 표어를 제시해 준다. 이 시대의 스타는 그렇게 쉬거나 노는 시간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것은 물론 이 시대의 단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 사회적 구조와 배경을 짚는 문화비평은 이미 ‘꼰대스럽다’고 매도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듯하다. 문화비평의 힘은 이제 지역에서 키워져야 하지 않을까? 빨대를 꽂듯 지역민들의 문화적 욕망을 추수해 가는 저 중앙 미디어 권력과 거대 기획사들의 횡포에 맞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