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사라진 세상 - 임몽택 미네르바 코칭앤컨설팅 대표, 전 광주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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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사라진 세상 - 임몽택 미네르바 코칭앤컨설팅 대표, 전 광주대 경영학과 교수
2025년 10월 20일(월) 00:20
마을 어귀에는 서당이 있었다. 그곳에는 연세가 많으신 훈장님이 계셨고, 훈장님의 회초리는 단순히 공부 열심히 하라는 ‘채찍’이 아니라 삶의 예의와 도리를 일깨워주는 ‘죽비’였다. 훈장님의 역할은 아이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마을에 이웃 간 다툼이 일어나면 이를 중재하는 재판관이었고, 혼사를 앞둔 젊은이에게는 부부의 도리를 일러주는 멘토(Mentor)였으며, 마을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회의의 의장이었다. 한 마디로 훈장님은 마을의 ‘어른’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훈장님 보기가 어렵다. 나이 많은 사람은 많은데 ‘훈장감’이 별로 없는 것이다. 마을 어디를 가도 훈장님은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노욕을 버리지 못하고 침을 바르는, 목소리만 큰 노인들이 차지하고 있다. 노인은 많은데 어른이 사라진 세상, 개인이나 나라가 길을 잃고 헤매면 누구를 찾아야 하나?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간을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로 구분했다. 크로노스란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시간, 즉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흘러가는 연대기적 시간이다.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가는 강물과 같이 객관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이다. 반면 카이로스란 ‘바로 그때’, ‘결정적 순간’과 같이 특별한 의미와 가치가 부여된 시간이다. 흐르는 강물을 타고 내려가다가 ‘송어’를 발견하고 낚아채는 순간처럼 크로노스의 흐름을 뚫고 들어오는 의미의 순간이다.

‘노인’이 되는 것은 크로노스의 결과다. 살아 있기만 하면 누구나 도달하는 상태로 존재의 한 단계이며 수동적이다. 따라서 ‘노인’이 되는 것은 특별한 노력이나 성취가 필요하지 않다. 반면에 ‘어른’이 되는 것은 카이로스의 결과다. ‘어른’은 단순히 시간이 흐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순간, 순간의 경험을 통해 지혜와 통찰을 얻고 내면적으로 성숙해야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른’은 저절로 되지 않는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 타인에 대한 공감,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통해 스스로 지위를 획득하고 주변으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 ‘노인’과 ‘어른’을 구분하는 척도는 그 사람의 삶의 깊이와 인격의 성숙도다. 그 안에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내어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 사회에 노인은 차고 넘치는데 어른 찾기가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노인은 그냥 살아 있기만 하면 되지만 어른이 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려면 깨어 있는 의식과 깊은 통찰이 필요하다. 크로노스에 따라 인생을 살아가다가 의미와 가치가 있는 순간을 포착하고 카이로스에 따라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정치인이라면 최소한, 전 체코 대통령 바츨라프 하벨의 말 “정치는 불가능의 예술”이라는 문구 정도는 인지하고, 자신이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통찰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런데, 나랏돈을 무려 1인당 연간 8억 원이나 쓴다는 여의도 300명 ‘나리’ 중에 ‘불가능의 예술’이 무엇인가를 통찰하려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게다가 20년도 넘게 의원을 한 다선 의원들의 의정활동 수준이나, 2년도 채 안 된 초선 의원들의 의정활동 수준이나 모두 도긴개긴이 여의도에 어른이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어른이 되려면 과거를 경험이 아닌 지혜로 만들 줄 알아야 한다. ‘나 때는~’을 버리고 과거의 경험을 끊임없이 되새기고 성찰하여 삶의 보편적인 원리를 깨닫고 이것을 후세대에 전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가르치고 지시하려는 습성을 버려야 한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새로운 지식과 가치관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권위를 앞세워 구태(舊態)를 고집한다면 어른이 되기 어렵다. 젊은 세대의 새로운 시각을 배우고 급변하는 기술과 문화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모르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질문하는 겸손함을 보일 때 비로소 어른이 될 수 있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어른이 되고 싶으면 수시로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지나간 시대의 경험으로 만들어진 패러다임(생각의 틀)을 시대가 바뀐 지금도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배우고, 타인을 공감하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삶에서 마주하는 개인적 책임은 물론 공동체에 대한 책임도 실천하고 있는가?” 이런 것들을 자신에게 묻고 또 묻고, 살아가면서 계속 물어야 한다.

그리하여, 수확의 계절임에도 황량한 들판에 빈손으로 외롭게 서 있는 우리의 젊은이들을 공감하고, 위로하고, 멘토가 되어 비전을 제시할 줄 아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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