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광주에서 시작하는 ‘데이터 민주주의’ - 윤희철 한국지속가능발전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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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광주에서 시작하는 ‘데이터 민주주의’ - 윤희철 한국지속가능발전센터 센터장
2025년 11월 03일(월) 00:20
인공지능(AI)이 세상을 바꾼다는 말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ChatGPT 같은 도구는 전문가, 시민, 행정, 기업 모두가 활용 중이다. 그러나 “AI가 모든 걸 해결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커질수록 간과되는 것이 있다. 좋은 데이터 없이는 AI도 무용지물이라는 점이다.

요즘은 데이터센터 유치 등 하드웨어에 집중하는 경향이 크다. 물론 기반은 필요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AI가 삶을 바꾸는 데 필요한 생활밀착형 데이터다. 현재 AI 활용은 주로 검색이나 단순 답변 수준에 그친다. 실질적인 활용을 위해서는 지역의 구체적이고 맥락 있는 데이터가 필수다.

예를 들어 광주광역시를 보자. 국가 통계는 매년 나오지만 행정동이나 마을 단위의 세부 데이터는 턱없이 부족하다. “자치구 내 특정 동의 청년 인구 변화”, “어느 노선의 교통 불편이 심각한가”, “마을별 돌봄 수요는 어디에 집중되는가”와 같은 실제 생활과 맞닿은 질문에 답하기 어렵다. 데이터는 행정 부서마다 흩어져 있어 주민 삶의 맥락을 파악하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는 AI가 아무리 뛰어나도 부실한 입력으로는 의미 있는 결과를 내기 어렵다. 흔히 말하는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는 말 그대로다. 데이터가 부족한 상태에서 이뤄지는 정책 결정은 여전히 민원 중심이거나 전국 단일 기준 적용에 그친다. 이는 AI가 아닌 사람이 판단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AI로 정책을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은 절반의 진실이다. 국가 단위의 양질의 데이터가 있다면 가능하지만, 도시나 마을 단위로 내려오면 데이터 부족으로 신뢰할 수 있는 결과를 얻기 어렵다. 결국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데이터, 더 나아가 데이터의 민주화다.

광주에서 시작할 수 있는 변화는 분명하다.

첫째, 행정이 가진 데이터를 과감히 공개해야 한다. 개인정보는 철저히 보호하되, 교통·환경·복지·안전 같은 생활 데이터는 시민 누구나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 공개를 넘어서 부서별로 흩어진 자료를 통합·표준화하고 개방형 플랫폼 기반으로 운영해야 한다. 그래야 행정이 AI 활용을 돕는 조력자가 될 수 있다.

둘째,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데이터 수집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보행 환경을 기록하거나 무단 투기 지점을 지도에 표시하는 방식이다. 시민이 축적한 데이터가 행정과 함께 활용되면 AI는 지역 문제를 학습하고 보다 정확한 예측과 분석을 제공할 수 있다.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창하지 않다. 동네 불편을 사진이나 메모로 남겨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데이터가 된다. 신호가 짧은 횡단보도, 버스 정류장 의자 부족, 쓰레기 투기 장소 등 일상의 정보가 모이면 AI는 이를 분석해 문제를 시각화하고 해결을 위한 근거를 제공할 수 있다.

최근 광산구 도시재생공동체센터는 마을조사단을 조직해 지역 문제를 AI와 함께 분석하는 실험을 했다. 주민이 직접 조사하고 AI가 이를 정리해 문제를 진단하는 방식이다. 이는 주민 참여 기반 데이터 민주주의의 시도로 의미가 깊다.

데이터가 모이면 AI는 더 이상 단순한 분석 도구가 아니라 주민과 함께 토론하는 파트너가 된다. 예를 들어 특정 동의 청년 인구 감소 원인을 분석하고 주거·일자리·교통 대안을 시뮬레이션해 주민과 공유할 수 있다. 이는 소수 의견이나 감에 의존하지 않고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한 토론과 정책 설계를 가능하게 한다.

이 과정에서 행정은 일방적 결정자가 아니라 토론을 촉진하는 조력자가 되고, 주민은 AI가 제시한 분석을 바탕으로 함께 대안을 모색하게 된다. 이것이 마을 자치의 가능성이며 AI가 열어주는 새로운 민주주의의 모습이다.

광주는 이미 시민참여 거버넌스와 생활밀착형 의제를 실험해 온 도시다. 여기에 AI와 데이터 민주주의가 결합된다면 도시 문제 해결은 더욱 정교해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누가 데이터를 만들고 해석하며 결정하는가다. 주민들이 직접 조사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데이터는 곧 지역사회의 집단지성이 된다. 그 데이터가 AI와 만나면 우리는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더 민주적이고 책임 있는 의사결정에 다가갈 수 있다. 광주가 그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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