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돈이 문제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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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돈이 문제인 것인가
뒤틀리는 시도 체육회장 선거
첫 단추 잘 끼워야 미래 기약
2019년 11월 13일(수) 04:50
사상 처음으로 체육회장을 민간에서 선출하게 된다. 광주시체육회는 내년 1월15일, 전남도체육회는 오는 12월15일에 선거를 치른다. 지방자치단체장의 체육회장 겸직 금지법(국민체육진흥법 43조2항 신설)에 따른 후속 조치다. 개정법은 정치와 체육을 분리하고 체육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확립해 각종 선거에 체육단체가 동원되는 폐단을 근절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지난 1962년 국민체육진흥법 제정 이래 지자체 단체장이 당연직 체육회장을 맡아 온 폐단을 없애자는 것이다.

그런데 광주시와 전남도체육회장 선거를 앞두고 체육인 사이에 묘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안정적 운영을 위한 재원을 확보하려면 단체장과 교감하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政)·체(體) 분리라는 법 제정 취지를 거스르는 여론이다. 신임 회장이 체육회 재정 독립이 전제되지 않는 상태에서 의존적으로 살림을 해야 하는 현실에서 싹튼 현실론이기도 하다.

이는 광주시나 전남도체육회를 비롯해서 전국 시·도 자치단체 산하 체육회 예산의 90%에 대한 편성권이 자치단체에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독자적으로 체육회를 꾸릴 재원을 마련할 수익구조도 사실상 없다. 시·도 체육회는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국회와 정부에 지방체육회 법인화 및 안정적 예산 확보를 위한 후속 법안을 마련해 줄 것을 요청했다. 내년 1월15까지 치르도록 돼 있는 선거를 일정 기간 유보하는 보완 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계류 중이지만 법안 통과는 불투명하다.

제도적 미비는 돈이 선거판의 상수가 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일부 체육인은 단체장과 결이 다른 사람을 뽑으면 예산이 크게 줄어 체육계가 위축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한다. 의외로 많은 체육인이 이런 의견에 공감한다. 체육 생태계도 돈으로 돌아가는 세상 물정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참에 공적자금을 입맛에 따라 지원해 온 단체장의 폐단을 지적하고 바로잡자는 후보자는 설 땅이 없는 게 당연하다.

체육회 재정과 맥이 닿아 있는 ‘자치단체장 교감설’은 왜곡된 현상의 하나다. 재정 독립이 요원한 상황에서 자치단체장과 통하는 사람이 대안이라는 것이다. 제도가 뒷받침할 수 없는 상황을 해소하려는 보상 심리다. 수십 년 지자체에 재원을 의존해 온 체육계의 관성을 무작정 나무랄 수만은 없다. 벌써부터 후보군에 오른 사람이 단체장과 만났다는 설이 떠돌고 있다. 마치 옛 지방자치 선거에서 ‘내천’(內遷)설이 득세했던 때와 같은 현상이다. 결국 도로 정치와 체육이 야합한 셈이다.

최근 전남도체육회장 선관위가 후보자 소견 발표 등을 실시하지 않기로 한 것도 걸리는 대목이다. 선거 일정상 어려움 때문에 나온 고육책이라고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깜깜이 선거’다. 오직 선거인단 399명의 손에 전남 체육의 미래가 맡겨져 있는 형국이다. 이미 선거 룰을 정한 이상 곱씹어 봐야 별 의미는 없겠지만, 한마디 남기고 싶다. 요즘 초등학교 회장 선거에서도 공약 걸고 정견 발표한다. 학생들은 이게 민주주의라고 배운다.

광주 체육회의 경우 ‘선거 패싱론’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재정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변칙이다. 체육회 임원들은 물론 종목 단체장이 두루 뜻을 모은 것으로 전해지는데 단일 후보로 교통정리하자는 내용이다. 선거에 따른 반목과 갈등을 미연에 차단하고 시정에 동조하는 인사를 추대하자는 의미다. 광주시장도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공개석상에서 했다고 전해진다.

현행 선거법대로라면 단일 후보는 투표 없이 당선증을 받고 무혈입성하게 된다. 모양새는 좋지만 선출 과정의 절차적 투명성과 공정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본질적인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광주시체육회는 모양새가 크게 일그러지게 됐다. 체육계 동향과 별도로 법에 따라 선거 룰을 정하는 절차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 상황이라면 제도를 마련해 봐야 헛일이다. 활용하지 않을 제도를 만들기 위해 행정력을 낭비하게 됐다. 연간 공적자금 177억 원을 쓰는, 광주 체육을 대표하는 인사를 꼭 이렇게 뽑아야 할까.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를 우회하면서까지 말이다.

광주·전남 체육회장 선거는 벌써 심각하게 뒤틀리고 있다. 그 중심에 ‘재정 문제’가 있다. 그것 말고는 없다. ‘정치와 절연하고, 체육계의 비전을 마련하고, 위상을 바로 세울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본질론이 비집고 들어갈 틈새는 없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가 있다면 현실성 없는 헛소리라는 타박을 들을 게 분명하다. 사상 첫 민간 체육회장 선거가 자꾸만 뒤틀리는 현실이 안타깝다.

/penfoot@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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