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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산업의 새 장을 열 ‘나주 시대’
홍 상 표
한국콘텐츠진흥원장
2014년 09월 22일(월) 00:00
시시각각 변하는 조명 속에 음악이 흐른다. 무대 위 대형 스크린에는 빛과 선율을 따라 배경이 등장하고 주인공이 움직인다. 마치 한편의 만화영화를 보듯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절정의 순간에 이르고 어느덧 아쉬움 속에 막이 내린다. 요즘 서서히 주목 받고 있는 ‘샌드 애니메이션’얘기다.

아직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 장르는 빛과 음악, 영상의 결정체다. 때론 화려함으로, 때론 유장한 흐름 속에 벅찬 감동을 선사하는 퍼포먼스의 주체는 작가의 손이다. 특수 제작한 틀 위에 작가가 맨손으로 모래를 흩뿌리거나 휘저으며 만들어낸 영상을 대형화면에 투사해 보여주는 방식이다.

어찌 보면 단순한, 그래서 이것도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싶은 샌드 애니메이션이다. 이 장르가 관심을 끄는 것은 특유의 감동 때문이다. 감동의 근저에는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음악과 조명, 영상의 절묘한 융합이 그 울림을 증폭시켜 준다.

지난 18일 한국콘텐츠진흥원 신청사 개청식의 공식행사 중 하나로 샌드 애니메이션 공연이 열렸다. 기관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의 비전이 작가의 손 끝을 거쳐 영상과 음악으로 펼쳐지는 동안 참석자들은 적잖은 감흥을 얻었다. 장황한 수사(修辭)를 뛰어넘는 예술과 콘텐츠의 힘이요, 장르간 융합이 빚어낸 장관이었다.

돌이켜보면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난 발자취는 많은 지점에서 이와 닮아있다. 방송, 게임, 만화·애니메이션·캐릭터, 디지털콘텐츠 등의 영역에서 각기 일하던 5개 기관이 2009년 하나의 기관으로 통합되고 더욱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며 지평을 넓혀왔다.

콘텐츠의 개념조차 생소했던 시절, 열악한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던 콘텐츠 제작자들을 일으켜 세우고 나아가 내실 있는 산업으로서 기반을 다지는데 힘을 보탰다.

이제 콘텐츠산업은 일부 마니아들이 즐기는 상품이 아니라 국가경제의 한 축을 떠받치는 버팀목으로 성장했다. 창의성을 근간으로 한 콘텐츠산업이야말로 창조경제를 견인하는 핵심 동력이다. 실제로 지난해 우리나라 콘텐츠산업의 전체 매출은 100조 원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수출액은 50억 달러를 넘어섰다.

물론 여기서 안주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한 발 앞서 있는 콘텐츠 선진국들을 하루 빨리 따라잡고 무서운 속도로 추격해오는 후발 주자들을 멀찌감치 따돌리기 위해 힘과 열정을 모아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개청식은 우리나라 콘텐츠산업 발전과 문화융성이라는 목표와 이를 향한 다짐을 확인하는 장이었다.

개청식 행사는 콘텐츠산업이 나아갈 바를 보여준 상징적 이벤트였다. 샌드 애니메이션에 앞서 벌어진 나주시립국악단의 ‘나주 환타지’ 공연 역시 소리와 연주, 무용이 한데 어우러진 융합 콘텐츠의 결정판이었다. 구성진 남도가락과 현대적 콘텐츠의 만남은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우리 것의 진가를 확인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전 세계적으로 경쟁이 치열한 콘텐츠산업 환경에서도 이처럼 우리에게는 여전히 남다른 경쟁우위의 요소가 존재한다. 전국 각지에 퍼져 있는 다양한 이야깃거리와 문화적 유산은 경쟁국의 그것에 비해 문화적 가치나 상품성 측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 훌륭한 재료다.

이를 발굴해 재해석하고 가공해 상품화하는 과정이 충실히 따라준다면 세계인의 가슴을 파고드는 콘텐츠 생산은 요원한 일이 아닐 것이다.

새로운 ‘나주 시대’는 콘텐츠산업 중흥과 지역발전, 부문 간 상생협력이라는 국가적 과업을 실현하기 위한 디딤돌이 돼야 한다. 혁신도시 나주가 중심이 돼 광주·전남지역의 콘텐츠사업 발전모델을 개발하고 부문간, 업종간 상생협력의 틀을 만들어 다른 지역으로 확산시킨다면 국가적 차원에서도 의미 있는 기여가 될 것이다.

신청사 이전을 계기로 이제 우리는 새로운 여정에 나서고자 한다. 분명 순탄치만은 않은 길이지만, 대한민국이 글로벌 콘텐츠 강국으로 도약하는 첫 발을 유서 깊은 문화의 고장에서 지역민의 격려와 성원 속에 내딛게 됐기에 발걸음이 무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