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범의 ‘극장 없이는 못살아’] 구스타보 두다멜 - 클래식 음악교육 최대 수혜자가 최고의 기여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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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베네수엘라 출신 20대의 젊은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1981년 생 당시 27세)이 17년 간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끈 상임지휘자 에사 페카 살로넨의 뒤를 이어 상임지휘자이자 예술감독에 오르자 LA는 완전 축제 분위기였다. 특히 히스패닉계 주민들은 세계적으로 떠오르는 20대의 스타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을 뜨겁게 반겼다. 마치 손흥민 선수가 LAFC에 처음 가서 저지 판매 1위에 오르고 메시가 플로리다에 가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처럼 두다멜은 LA 사회와 사교계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두다멜이 국제적으로 유명해진 건 베네수엘라의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 때문이었다. 시몬 볼리바르는 베네수엘라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시킨 민족의 영웅 독립투사였다.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라는 남미의 큰 나라 둘을 합쳐 합중국을 만들려고도 했는데 이 시도는 볼리바르가 세상을 떠난 후에 바로 와해되었다. 이렇게 남미 역사에 있어 커다란 포부와 족적을 남기고 국민들이 존경하는 인물이기에 베네수엘라에는 그의 이름이 붙은 곳이 많다.
지휘자, 작곡가, 경제학 박사였던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는 수도 카라카스의 산중턱에 밀집한 우범 주거지역을 방문했다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어린아이들이 총을 갖고 강도짓을 하고 마약을 하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 이래가지고는 우리 베네수엘라의 미래는 없다”라고 생각한 아브레우 박사는 1975년 시스템이라는 뜻의 ‘엘 시스테마’를 국가에 제안해 빈민아동들에게 음악교육 기회를 주고 그들이 악기를 배우면서 사회가 더 나아지고 직업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거대한 국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게 된다.
어린 두다멜도 이 교육의 혜택을 받은 연주자로 원래 바이올린을 연주하다 어린이 오케스트라의 악장이 되었다. 어느날 지휘 선생님이 연습 시간에 늦게오자 아이들이 두다멜에게 농담반 진담반으로 “네가 지휘해”라고 하자 겸연쩍게 지휘한 두다멜. 처음에는 아이들이 장난으로 따라했지만 이내 진지하게 그의 지휘에 따라서연주하기 시작했고 뒤늦게 온 선생님은 두다멜의 지휘 실력에 깜짝 놀라 “네가 나보다 낫다”라고 하면서 두다멜의 지휘 인생이 시작됐다.
두다멜은 아바도, 래틀, 곽승 같은 명지휘자들을 지휘를 사사하면서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를 맡게 되었다. 보통 오케스트라는 2관 편성 50명으로, 가장 많은 4관 편성도 123명 정도인데 엘 시스테마는 200명, 300명, 500명, 1000명, 5000명 오케스트라까지 구성해 아이들이 함께 연주할 기회를 많이 제공했다.
그러다 보니 학교, 군, 시,국가 단위 오케스트라들이 아주 많아져전국민이 음악을 사랑하는 음악의 나라가 되었고 오케스트라를 실제로 지휘해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좋은 지휘자들도 많이 배출됐다. 좋은 지휘자가 나오려면 실제로 지휘해 볼 수 있는 오케스트라가 많아야 하는데 이 덕분에 두다멜이나 크리스티안 바스케스처럼 국제적으로 활약하는 지휘자들과 베를린필 더블베이스 주자로 활동하고 있는 에딕손 루이즈 같은 걸출한 음악가들이 나왔다.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는 두다멜의 지휘로 2008년 한국에 처음 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성남아트센터에서 공연했다. 당시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에게 서울평화상을 수여하고 한국형 엘 시스테마 조약도 체결했다.
이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폐교 직전의 학교를 살리는 운동이 일어났다. 필자는 당시 현장에 가서 공연도 보았는데 초등학교이 경우 전교생 1인 1악기 운동으로 저학년 때는 기초로 피아노를, 고학년이 되면 클라리넷을 배우는 모습이 매우 긍정적이었다. 학부모들까지 클라리넷 앙상블을 연주하면서 온 마을이 음악으로 가득한 모습을 행복하게 지켜볼 수 있었지만 지금까지 한국형 엘 시스테마가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어서 안타깝다.
두다멜은 세계 어느 곳에서 지휘하든지 평생 베네수엘라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고 그것을 지키고 있다. 그는 시몬 볼리바르 국립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이자 LA필의 지휘자로 17년 동안 재임하면서 베네수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LA 인근의 빈민가 전역에서 모인 Y.O.L.A 오케스트라를 조직해 음악교육 활동을 진정성있게 진행했다. 하지만 이제 LA필에서 미국을 상징하는 오케스트라인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이자 예술감독으로 떠나게 되었다.
지역사회를 위한 가스펠 미사곡과 장기를 살려 남미 작곡가의 곡을 많아 연주하는 등 다채로운 레퍼터리의 실험을 했던 그가 LA필과의 고별 투어로 한국을 이번 주에 찾기 때문에 그의 영향력 있는 발걸음을 되짚어봤다.
<음악평론가>
어린 두다멜도 이 교육의 혜택을 받은 연주자로 원래 바이올린을 연주하다 어린이 오케스트라의 악장이 되었다. 어느날 지휘 선생님이 연습 시간에 늦게오자 아이들이 두다멜에게 농담반 진담반으로 “네가 지휘해”라고 하자 겸연쩍게 지휘한 두다멜. 처음에는 아이들이 장난으로 따라했지만 이내 진지하게 그의 지휘에 따라서연주하기 시작했고 뒤늦게 온 선생님은 두다멜의 지휘 실력에 깜짝 놀라 “네가 나보다 낫다”라고 하면서 두다멜의 지휘 인생이 시작됐다.
두다멜은 아바도, 래틀, 곽승 같은 명지휘자들을 지휘를 사사하면서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를 맡게 되었다. 보통 오케스트라는 2관 편성 50명으로, 가장 많은 4관 편성도 123명 정도인데 엘 시스테마는 200명, 300명, 500명, 1000명, 5000명 오케스트라까지 구성해 아이들이 함께 연주할 기회를 많이 제공했다.
그러다 보니 학교, 군, 시,국가 단위 오케스트라들이 아주 많아져전국민이 음악을 사랑하는 음악의 나라가 되었고 오케스트라를 실제로 지휘해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좋은 지휘자들도 많이 배출됐다. 좋은 지휘자가 나오려면 실제로 지휘해 볼 수 있는 오케스트라가 많아야 하는데 이 덕분에 두다멜이나 크리스티안 바스케스처럼 국제적으로 활약하는 지휘자들과 베를린필 더블베이스 주자로 활동하고 있는 에딕손 루이즈 같은 걸출한 음악가들이 나왔다.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는 두다멜의 지휘로 2008년 한국에 처음 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성남아트센터에서 공연했다. 당시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에게 서울평화상을 수여하고 한국형 엘 시스테마 조약도 체결했다.
이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폐교 직전의 학교를 살리는 운동이 일어났다. 필자는 당시 현장에 가서 공연도 보았는데 초등학교이 경우 전교생 1인 1악기 운동으로 저학년 때는 기초로 피아노를, 고학년이 되면 클라리넷을 배우는 모습이 매우 긍정적이었다. 학부모들까지 클라리넷 앙상블을 연주하면서 온 마을이 음악으로 가득한 모습을 행복하게 지켜볼 수 있었지만 지금까지 한국형 엘 시스테마가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어서 안타깝다.
두다멜은 세계 어느 곳에서 지휘하든지 평생 베네수엘라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고 그것을 지키고 있다. 그는 시몬 볼리바르 국립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이자 LA필의 지휘자로 17년 동안 재임하면서 베네수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LA 인근의 빈민가 전역에서 모인 Y.O.L.A 오케스트라를 조직해 음악교육 활동을 진정성있게 진행했다. 하지만 이제 LA필에서 미국을 상징하는 오케스트라인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이자 예술감독으로 떠나게 되었다.
지역사회를 위한 가스펠 미사곡과 장기를 살려 남미 작곡가의 곡을 많아 연주하는 등 다채로운 레퍼터리의 실험을 했던 그가 LA필과의 고별 투어로 한국을 이번 주에 찾기 때문에 그의 영향력 있는 발걸음을 되짚어봤다.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