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의 ‘자연이 건네는 말’] 좋아! 놈들이 이기게 두지는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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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의 ‘자연이 건네는 말’] 좋아! 놈들이 이기게 두지는 않아!
2025년 10월 16일(목) 00:20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을 머스크의 우주선에 태워 멀리 보내버리고 싶다.”

평생을 침팬지 연구와 환경운동에 바친 제인 구달 박사의 마지막 인터뷰를 전하는 기사는 대개 이 문장으로 시작했다. 일론 머스크, 트럼프, 푸틴, 시진핑, 네타냐후 같은 인물들을 직접 지목하며 “그들과 그 지지자들을 머스크의 우주선에 태워 그가 발견할 행성으로 보내고 싶다”고 말한 것이다. 세상을 오염시키는 권력자, 협력 대신 대립을 키우는 리더, 그리고 그들을 추종하며 폭력을 지지하는 무리에 대한 구달의 통렬한 풍자였다.

구달의 말은 단순한 분노의 표출이 아니다. 그것은 수십 년간 침팬지의 행동을 관찰하며 인간 사회의 본질을 꿰뚫어본 과학자의 진단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침팬지 집단에서 나타나는 수컷의 두 가지 리더십 유형을 설명했다. 하나는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공격형 수컷’이고 다른 하나는 관계를 조율하고 머리를 쓰는 ‘전략형 수컷’이다. 전자는 처음엔 강력해 보이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후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안정적으로 집단을 이끈다. 자연의 오랜 실험이 증명하듯 지속가능한 지배는 폭력이 아닌 관계와 신뢰에서 나온다. 이 법칙은 인간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국 사회 역시 여전히 ‘공격형 수컷’의 논리에 익숙하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정치, 목소리가 큰 자가 이기는 토론, 숫자로 상대를 압도하는 여론전…. 그러나 이런 방식의 리더십은 결국 집단을 피폐하게 만들 뿐이다. 상대를 짓밟아 얻은 승리는 오래가지 않는다.

구달은 또 하나의 중요한 통찰을 덧붙였다. 침팬지는 낯선 무리를 만나면 털을 곤두세우고 공격적인 감정을 드러낸다. 이 감정은 순식간에 전염되어 집단 전체를 흥분 상태로 몰아넣는다. 인간 사회도 다르지 않다. 분노는 인터넷을 통해 번개처럼 퍼지고 혐오는 언론과 정치의 언어를 타고 확산된다. 누군가를 증오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고, 더 무서운 것은 그 증오가 집단의 정체성이 되는 순간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공격성의 전염’은 이미 일상이 되었다.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적’이라 부르고 과학적 사실조차 이념의 잣대로 재단한다. 끈금없이 중국인을 혐오하는 말에 ‘좋아요’를 누르고 상대를 조롱하는 댓글에서 위안을 얻는다. 그것은 침팬지 무리가 집단 공격에 나설 때 느끼는 본능적 쾌감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를 우주선에 태워 보내야 할까? 단순히 정치인 몇몇을 떠올리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과학적 근거를 무시하고 음모론을 퍼뜨리는 세력, 기후 위기를 부정하며 이윤만을 좇는 기업, 사회적 약자를 희생양 삼아 분열을 부추기는 언론…. 이들은 모두 공동체의 진화를 가로막는 존재들이다. 구달이 말한 ‘머스크의 우주선’은 결국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와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라는 은유다. 누구를 배제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결정하는 일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

그럼에도 구달은 마지막까지 절망을 말하지 않았다. “오늘날 지구가 어두워도 희망은 있다. 희망을 잃지 말라. 희망을 잃으면 무관심해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의 이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다. 인간 사회는 아직 성장 중이다. 우리는 여전히 미성숙한 영장류이며 집단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새로운 전략을 배우는 중이다. 침팬지가 공격성과 협력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듯 우리 역시 분열과 연대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은 제인 구달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머스크의 우주선’에 주목했지만 그가 진심으로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 “우리가 할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연민을 가진 새로운 세대를 키워내는 것이다.” 그리고 “좋아! 놈들이 이기게 두지는 않아!”라는 심정으로 “내가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것처럼 너희도 계속 애쓰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구달의 이 말은 단순한 투지가 아니다. 그것은 파괴와 분열의 본능보다 연대와 공감의 가능성을 믿는, 과학자의 확신이자 인간에 대한 믿음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제 분명하다. 힘과 혐오, 거짓과 탐욕의 언어가 판치는 세상에서 물러서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만드는 어두움 속에서도 여전히 서로를 돌보고 연결하려는 작은 시도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혼탁해도 인간이 지닌 공감과 협력의 능력은 여전히 변화를 이끌 힘이 있다. 구달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결국 한 가지로 귀결된다. “놈들이 이기게 두지 마라. 우리가 희망을 선택하는 한 역사는 달라질 수 있다.”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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