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과 동행해 보니] 아파트 터치식 출입문 앞서 2시간 ‘발 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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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과 동행해 보니] 아파트 터치식 출입문 앞서 2시간 ‘발 동동’
10월 15일 ‘세계 흰 지팡이의 날’
키오스크 등 첨단기술의 시대…장애물 더 생겨
“배리어프리 의무화 돼도 문제…시스템 개선을”
2025년 10월 14일(화) 21:00
14일 시각장애 1급 오병임씨가 남구 백운동의 한 아파트 출입구에서 터치패드를 만지고 있다.
아파트 출입문 앞 손끝으로 터치패드를 더듬었지만 누르려는 숫자의 위치를 알 수 없었다. 카페 키오스크 앞에서는 섰지만 아무런 안내음도 들리지 않아 한참을 서있어야 했다.

시각장애인들에게 첨단 기술로 무장한 요즘 시대는 예전보다 더 오르기 힘든 장벽이었다.

시각장애인의 권익 증진을 위한 ‘세계 흰 지팡이의 날(매년 10월 15일)’을 하루 앞둔 14일 시각장애 1급 오병임(55·광주시 남구 백운동)씨는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오씨와 이날 하루 2시간 남짓 동행하면서도 셀 수 없이 많았던 불편한 일상을 들여다봤다. 흰 지팡이는 시각장애인이 길을 찾고 활동하는 데 사용하는 ‘눈’이자 ‘필수 도구’로, 시각장애인의 자립 의지와 사회적 책임을 상징한다.

첨단 기술이 적용된 세상은 오씨에겐 일반인들과 비슷한 생활을 하기 위해 넘어야 하는 장애물이 하나 더 생긴 듯 했다.

오씨는 7살 때 사고로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그에게는 흰 지팡이가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감각이지만 아파트 출입구 차단봉에 부딪히거나 길가에 세워진 볼라드(차량 진입 방지봉)에 걸려 무릎이 까지는 등 집 앞에서부터 위험천만한 상황을 겪는다.

오씨는 “내 집 앞이면 그나마 익숙한데 낯선 곳에서는 점자블록이나 안내 시설이 부족해 길을 찾기 어렵다”며 “매일 지나는 길에서도 횡단보도가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 없어 가로등에 어깨를 부딪히는 날이 부지기수”라고 푸념했다.

최근 공공시설이나 상가, 아파트 등에서 늘어나는 터치식 출입문이나 키오스크 등 비대면 기기는 시각장애인의 접근성을 떨어트리는 장애물이다.

그는 “아파트 출입 방식이 버튼에서 터치로 바뀌면서 점자나 음성 안내가 없어 혼자서는 동호수를 제대로 입력할 수 없다”며 “번호를 누르다 실수해도 어디가 잘못됐는지 모르고, 취소 버튼을 눌러도 소리가 나지 않아 도와줄 사람이 없으면 출입 자체가 어렵다”고 말했다.

동호수 번호를 잘못 누르는 것을 수차례 반복했지만 통과하지 못해 지나가는 이웃 도움을 받기까지 2시간 넘게 서있기도 했다고 했다.

근처 카페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키오스크 패드를 더듬었지만 점자나 음성 안내가 없어 스스로 어떤 메뉴를 선택했는지, ‘매장 취식’과 ‘포장’ 중 어느 버튼을 누른 건지 알 방법이 없었다.

오씨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불편해지는 부분도 있다”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진정한 접근성 보장이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 ‘전국장애인등록현황’에 따르면 광주에 등록된 시각장애인은 2020년 7290명, 2021년 7203명, 2022년 7143명, 2023년 7091명, 2024년 7069명으로 7000명대를 유지하고 있고 전남에는 2020년 1만3844명, 2021년 1만3616명, 2022년 1만3385명, 2023년 1만3105명, 2024년 1만2852명으로 집계됐다.

광주·전남에만 매일 2만여명의 시각장애인들이 생활 속 불편을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오씨는 “배리어프리 키오스크가 앞으로 의무화된다고 해도 혼자 가게를 방문해 이용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나만 해도 카페 입구 조차 못찾는다. 기계만 바꾼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전체적인 환경과 안내 시스템이 함께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사진=서민경 기자 mink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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