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고 머무르는…필사하기 좋은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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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머무르는…필사하기 좋은 에세이
천천히 와-유희경 지음
2025년 08월 22일(금) 00:00
책 제목이 좋다. ‘천천히 와’라는,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유희경 시인이 펴낸 에세이 ‘천천히 와’는 찬찬히 음미하며 읽어도 좋을 산문집이다. 서울예술대에서 문예창작을, 한예종에서 극작을 전공한 그는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당신의 자리-나무로 자라는 방법’,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이다음 봄에 우리는’ 등의 작품집을 펴냈으며 현대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을 받았다.

이번 에세이집은 그저 읽고 지나치는 책이 아니다. 읽고 쓰며 사유를 하게 하는 책이다. 모두 25편 에세이가 담긴 책은 중간 중간 독자가 직접 필사를 할 수 있도록 편집이 돼 있다. 읽기에서 끝나지 않고 적극적으로 텍스트 속의 작가와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책은 시인의 절친 오은 시인의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과 함께 출간됐다. 애정과 우정을 담은 ‘친구의 말’을 첨부해 책을 매개로 마음을 건넬 수 있도록 했다.

현재 시인은 ‘위트앤시니컬’이라는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시집만 꽂힌 서점은 은근한 사랑을 받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적적한 공간이기도 하다. 시인의 일상은 ‘기다림’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누군가 서점의 문을 열고 들어와 한 권의 시집을 골라주기를, 그리고 서점 주인인 자신에게 다가와 말을 건네주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전체적인 이번 에세이집의 정조와 분위기는 그런 ‘기다림’으로 수렴된다. 아마도 서점에 오는 이들도 무언가를 기대하며 기다리며 시집을 찾을 것이다. 어떤 이는 시험에 합격하기를, 어떤 이는 가을이 어서 오기를, 또 어떤 이는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연락이 오기를 등등 기다림의 마음을 안고 서점의 문을 두드릴지 모른다.

저자 또한 자신을 이렇게 규정한다. “나는 기다리는 사람이다. 끌리기를, 사로잡히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다”고.

무엇보다 잔잔한 여운을 지닌 문장들은 독백처럼 깊고 다정하다. 시인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독자들을 향해 나지막이 말을 건네고 있는 듯하다. 조급해하거나 지나치게 불안해하거나 걱정하지 말고 천천히 기다리라고 속삭인다. 시인의 마음을 슬며시 들여다보고 받아쓰며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오늘의 우리는 모두 지나치게 빠른 일상, 빠른 결과에 목을 매고 있다. 그러나 세상일은, 특히나 간절한 일은 서서히 그리고 불현 듯 찾아온다는 것을 한번쯤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위즈덤하우스·1만8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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