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 김민기 - 고성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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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 김민기 - 고성혁 시인
2024년 09월 25일(수) 00:00
아름다운 사람 김민기. 그가 떠난 지 벌써 두 달, 하지만 낮고 가만한 그의 노래가 가슴에 남아 삶에 대한 공부를 멈출 수 없다. 지금껏 뒷것이 되고자 했던 사람이 남아 있었다니. 농부였고 광부였고 피혁공장의 새벽(朝學) 선생이었던 그. 수많은 배우와 가수를 배출했던 사람. 하지만 무엇보다 그는 쟁이였다. 낮고 더 낮아져 세상의 아픔을 온몸으로 껴안고자 했던 쟁이. 이제 그는 갔고 세상은 그의 연민과 슬픔을 성찰하며 두리번거린다.

헐벗은 내 몸이 뒤안에서 떠는 것은/ 사랑과 미움과 배움에 참을/ 너로부터 가르쳐 받지 못한 탓이나/ 하여 나는 바람 부는 처음을 알고파서/ 두리번거린다 말없이 찾아온 친구 곁에서/ 교정 뒤안의 황무지에서. 그의 노래 ‘두리번거린다’는 혼란스런 세상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속삭인다. 낮고 느리게. 흐르고 흘러 연민에 다다른 우리는 고개를 끄덕인다. 마침내 그들의 슬픔을 끌어안는다…. 두리번거린다니. 우리는 늘 두리번거리며 살고 있지 않은가. …어쩌다가 아픔 같은 것이 저며 올 때는/ 그럴 땐 바다를 생각해/ 바다/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구. 고개를 숙이고 있는 올림픽 노메달 선수들의 아픔을 헤아려 만들었다는 노래 ‘봉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들을 향한 마음이 둥둥, 북소리처럼 울려 퍼진다. 위로의 마음에 가슴이 사무친다. 어찌 아름답지 않을 수 있으랴.

그는 낮고 더 낮고자 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인터뷰를 거절하고, 인생을 바꾼 수많은 노래를 만들어 놓고도 “묵은 겨울 내복을 보여주는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던 사람이었다. 딱 한 번 소극장 개장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음반이라는 걸 내고, 자신이 만든 그 소극장 ‘학전’에서 젊은 배우들보다도 월급을 적게 가져갔다는 사람. 무대에서 주목받으며 연기하고 노래하는 사람을 ‘앞것’, 그들의 뒤에서 보조하는 사람을 ‘뒷것’이라고 칭한 김민기. 낮음은 그의 신념이었을 것이다. 아름답다. 겸손한 사람 김민기. 그는 진정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일관된 사람이었다. 청춘의 마음이 죽을 때까지 이어지기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려운 법.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자신을 속이지 않으려 했다. 얽매이지 않기 위해 도움을 거절하고, 어떤 편 가르기도 하지 않았다. 그의 유지를 받든 유족들도 모든 조의금을 돌려보냈다. 그랬으니 그와의 이별 길, 그리 많은 사람이 눈물로 그를 배웅했을 것이다. SBS 다큐멘타리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에 배우 황정민과 설경구, 가수 강산에 등 무려 184명의 이름이 등장하고, 그들 모두 김민기를 한결같은 사람이었다고 회고한다.

“한참 얻어맞다 보니 의식이 희미해졌어요. 그만큼 고통도 가물가물해지고요. 그때 때리는 사람이 슬로우 모션으로 보이는 거예요. 문득 때리는 사람에게 미안해졌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리 고생일까? 나를 때리는 일로 월급을 받는데 저 사람을 어떻게 미워할 수 있는가.” 극단의 상황에서도 상대를 연민한 김민기. 그게 가능한 일이었던가. 그 말을 하는 순간의 그의 어린애 같은 표정. 그 표정을 보면서 왜 가슴이 그토록 저렸을까. 그의 모든 노래에 연민이 담긴 건 그의 연민이 태생적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삶의 본질은 연민 혹은 슬픔일 터이니 그래서 그의 노래가 우리 가슴을 울렸을 것이다.

김민기에 대해 ‘존재의 본질에서 길어내는 슬픔은 고즈넉한 슬픔이다. 그것은 내면의 우울을 찬찬히 응시해야 얻을 수 있는 성찰적 슬픔이기에 노동자와 농민, 도시 빈민, 기지촌 여성, 광부, 아이들에 닿았을 것’이라는 장제혁의 말은 그래서 명백하다. 분노와 절규가 없는 김민기의 노래가 광장을 뒤덮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지 않았을까. 일면식도 없건만 그가 없는 세상을 떠올리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막걸리 기타로나마 G, Am, Em, A7 코드를 잡고 익히던 상록수, 막다른 골목에서 목 놓아 불렀던 아침이슬…. TV 속, 통곡하는 장현성과 눈물을 닦는 설경구, 그 위를 떠다니는 아름다운 색소폰 소리와 수많은 이들의 흐느낌. 당신은 영원한 사람이다.

아름다운 사람 김민기. 앞만 보고 허위허위 앞것으로 살아왔건만 흰 머리 구부정한 허리가 되어 세상의 뒤편에 무르춤하게 선 지금에야 어떻게 당신을 닮겠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 극단의 세상을 생각한다. 아, 민기 형, 나의 광휘여, 부디 평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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