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과 김장하, 시대의 어른 - 김미은 여론매체부장·편집국 부국장
![]() |
그가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공중에 흩어지는 담배 연기에 온갖 상념이 담긴 듯했다. 짧은 머리의 무표정한 그는 푸른 수의를 입고 있다. 좁디 좁은 교도소 독방 벽에 기대 앉아 담배를 피우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사형을 선고받은 후 무기수가 된 한 인간의 고독과 초월과 더불어 어떤 안간힘 같은 것을 보았다. 김대중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 다큐 ‘길 위에 김대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81년 성남 육군교도소에 수감됐을 때 중앙정보부가 촬영한 이 영상은 대통령 취임 후 당사자에게 전달됐다.
다큐 속 DJ의 담배 한 개비
영화를 보는 내내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김대중을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것과 ‘김대중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한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극장에서 만난 이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한국 현대사를 그대로 관통하는 그의 삶이 펼쳐질 때마다 새삼 그의 진가를 확인했고, 얼마나 그의 삶이 왜곡돼 전해져 왔는지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우리 시대의 큰 어른’이었다.
그는 한 인간이 겪은 일이라고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네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고, 사형 선고를 받은 상황에서도 보복은 생각도 하지 말라고 했던 사람이었다. 무작정 반대와 투쟁이 아닌, 탁월한 논리와 대화로 상대를 압박하고 설득시킨 전략가였다.
영화는 불굴의 신념을 가진 정치인 김대중, 세상을 보는 넓은 혜안을 가졌던 학자 김대중, 그리고 인간 김대중을 보여준다. 손바닥만한 봉함엽서에 깨알같은 글씨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당신’, 이희호 여사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은 뭉클하다.
5·18 후 처음 광주를 방문한 그가 망월묘역에서 울음을 터트리는 장면에선,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을 찾아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눈물을 쏟아내던 모습이 겹쳐졌다. 영화관 객석 이곳 저곳에선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이 보였다.
지난해에는 다큐를 통해 또 한명의 어른을 만났다. 경남 진주에서 60년간 한약방을 운영하며 나눔을 실천한 김장하 선생이다. 다큐 ‘어른 김장하’를 보면서는 줄곧 이런 생각을 했다. ‘세상에! 요즘에도 이런 사람이 있었네.’
자신의 이름을 딴 다큐지만 정작 본인이 취재와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아 주변인들의 ‘입’을 통해 그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는 “내 친척은 한 명도 안쓰겠다, 돈을 받고는 한 사람도 채용하지 않겠다, 권력에 굽히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고등학교를 설립해 명문으로 키워낸 후 국가에 기부채납했다. 1000여 명 가까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던 그는 “돈이라는 것이 똥이랑 똑같아서 모아놓으면 악취가 진동을 하는데 밭에 골고루 뿌려 놓으면 좋은 거름이 된다”는 신념으로 진주의 문화, 인권, 사회, 환경, 언론을 지원했다.
그는 “내가 번 돈은 아프고 고통스러운 사람들의 돈이기에 사회에 되돌려주는 것이 맞다”고, “평범한 사람들이 자리를 지키기에 이 세상이 유지된다”고도 했다. 그는 평생 자동차가 없었고, 주머니가 다 헤진 낡은 양복을 줄곧 입고 다녔다.
장학금 수혜자였던 문형배 헌법재판관이 전하는 이야기도 감동적이다. 법관이 된 후 감사인사를 하자 김장하 선생은 “사회에서 준 것을 돌려줬을 뿐이니 나에게 고마워하지 말고, 혹시 갚아야 된다고 생각하면 사회에 갚으라”고 말했고, 그는 평생 이 말을 마음에 새겼다. 오래 전 전주지법원장으로 발령받았을 땐 “공직자가 사는 밥을 먹을 수 없다”며 초대를 거부, 문 재판관은 진주를 떠날 때에야 7000원 짜리 해물탕 한 그릇을 대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
각자도생 시대 삶의 나침반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장면은 어느 모임과 행사든 늘 구석자리를 찾는 그의 모습이었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분노하고 서운해하는 세상, 자신의 능력을 부풀리고 남의 권력을 자기 것인 양 호가호위하는 세상에 보내는 따끔한 일침처럼 느껴져 왠지 뜨끔했다.
오늘도 출근길에 국회의원 입지자들의 플래카드를 본다. 출판기념회, 여론조사 참여 독려 전화도 이어진다. 국민의 말에, 시민의 말에 귀 기울이겠다는 건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의 사탕발림이라는 걸 모두 안다. 물론 정치인만 욕할 일은 아니다. 불신과 반목으로 점철된 정치 실종의 시대, 역사와 민주주의 퇴행을 걱정하는 시대, 각자도생이 신념처럼 자리한 시대에 ‘두 어른’의 삶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누군가의 삶을 통해 스스로를 반추하고,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다면 그 또한 의미있는 일이다. 10일 개봉하는 ‘길 위에 김대중’이 앞으로 많은 시간 ‘길 위에 서 있을’ 이들에게 작은 희망이 되면 좋겠다. 물론 그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야 하는 것은 우리 각자의 몫이고.
영화를 보는 내내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김대중을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것과 ‘김대중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한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극장에서 만난 이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한국 현대사를 그대로 관통하는 그의 삶이 펼쳐질 때마다 새삼 그의 진가를 확인했고, 얼마나 그의 삶이 왜곡돼 전해져 왔는지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우리 시대의 큰 어른’이었다.
영화는 불굴의 신념을 가진 정치인 김대중, 세상을 보는 넓은 혜안을 가졌던 학자 김대중, 그리고 인간 김대중을 보여준다. 손바닥만한 봉함엽서에 깨알같은 글씨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당신’, 이희호 여사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은 뭉클하다.
5·18 후 처음 광주를 방문한 그가 망월묘역에서 울음을 터트리는 장면에선,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을 찾아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눈물을 쏟아내던 모습이 겹쳐졌다. 영화관 객석 이곳 저곳에선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이 보였다.
지난해에는 다큐를 통해 또 한명의 어른을 만났다. 경남 진주에서 60년간 한약방을 운영하며 나눔을 실천한 김장하 선생이다. 다큐 ‘어른 김장하’를 보면서는 줄곧 이런 생각을 했다. ‘세상에! 요즘에도 이런 사람이 있었네.’
자신의 이름을 딴 다큐지만 정작 본인이 취재와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아 주변인들의 ‘입’을 통해 그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는 “내 친척은 한 명도 안쓰겠다, 돈을 받고는 한 사람도 채용하지 않겠다, 권력에 굽히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고등학교를 설립해 명문으로 키워낸 후 국가에 기부채납했다. 1000여 명 가까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던 그는 “돈이라는 것이 똥이랑 똑같아서 모아놓으면 악취가 진동을 하는데 밭에 골고루 뿌려 놓으면 좋은 거름이 된다”는 신념으로 진주의 문화, 인권, 사회, 환경, 언론을 지원했다.
그는 “내가 번 돈은 아프고 고통스러운 사람들의 돈이기에 사회에 되돌려주는 것이 맞다”고, “평범한 사람들이 자리를 지키기에 이 세상이 유지된다”고도 했다. 그는 평생 자동차가 없었고, 주머니가 다 헤진 낡은 양복을 줄곧 입고 다녔다.
장학금 수혜자였던 문형배 헌법재판관이 전하는 이야기도 감동적이다. 법관이 된 후 감사인사를 하자 김장하 선생은 “사회에서 준 것을 돌려줬을 뿐이니 나에게 고마워하지 말고, 혹시 갚아야 된다고 생각하면 사회에 갚으라”고 말했고, 그는 평생 이 말을 마음에 새겼다. 오래 전 전주지법원장으로 발령받았을 땐 “공직자가 사는 밥을 먹을 수 없다”며 초대를 거부, 문 재판관은 진주를 떠날 때에야 7000원 짜리 해물탕 한 그릇을 대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
각자도생 시대 삶의 나침반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장면은 어느 모임과 행사든 늘 구석자리를 찾는 그의 모습이었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분노하고 서운해하는 세상, 자신의 능력을 부풀리고 남의 권력을 자기 것인 양 호가호위하는 세상에 보내는 따끔한 일침처럼 느껴져 왠지 뜨끔했다.
오늘도 출근길에 국회의원 입지자들의 플래카드를 본다. 출판기념회, 여론조사 참여 독려 전화도 이어진다. 국민의 말에, 시민의 말에 귀 기울이겠다는 건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의 사탕발림이라는 걸 모두 안다. 물론 정치인만 욕할 일은 아니다. 불신과 반목으로 점철된 정치 실종의 시대, 역사와 민주주의 퇴행을 걱정하는 시대, 각자도생이 신념처럼 자리한 시대에 ‘두 어른’의 삶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누군가의 삶을 통해 스스로를 반추하고,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다면 그 또한 의미있는 일이다. 10일 개봉하는 ‘길 위에 김대중’이 앞으로 많은 시간 ‘길 위에 서 있을’ 이들에게 작은 희망이 되면 좋겠다. 물론 그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야 하는 것은 우리 각자의 몫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