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린 사람 - 김미은 여론매체부장·편집국 부국장
  전체메뉴
‘뭐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린 사람 - 김미은 여론매체부장·편집국 부국장
2025년 09월 10일(수) 00:20
유행하는 신조어를 보면 시대의 흐름을 알 수 있다. 새롭게 등장한 용어는 아니지만 요즘 들을 때마다 무릎을 치는 단어가 있다. ‘난가병’과 ‘너 뭐 돼?’다. 짧은 이 세 글자는 구구절절 장황한 어떤 글보다 때론 핵심을 찌른다.

‘난가(나인가?)병’은 자격이나 자질이 부족한 사람이 객관적 자기 평가를 하지 않고 자신이 당사자인 줄 착각하는 데서 연유한 말이다. 이 단어가 회자된 건 대선 정국에서였다. 후보군이 변변치 않았던 상황에서 자격미달인 사람들이 ‘국민들이 원하는 사람이 혹시 난가?’하며 망상에 빠진 현상을 희화화했다.



과열된 지방선거와 ‘난가병’

벌써부터 과열된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에도 난가병을 앓는 이들이 많다. 이들은 특정 사안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거나, 경쟁자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자신에 대한 긍정적 시그널로 오해하곤 한다. 여기다 한자리 얻으려는 사람들이 ‘난가병’을 부추기고 있어 치유는 요원해 보인다. 이들은 정작 자신을 겨냥한 비판 앞에서 ‘나인가?’하고 깨달아야할 때는 시침떼며 모르쇠로 일관한다. 이 때는 다들 속으로는 알면서도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쟨가?’ 물론 난가병이 꼭 정치판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일상에서도 숱하게 만날 수 있고 우리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너 뭐 돼?’는 ‘네가 무슨 권리(뭐라도 되는 양)로 그런 행동(말)을 하느냐’는 뜻으로 보통 주제 넘게 누군가가 나설 때 쓰는 말이다. ‘너 뭐 대단한 사람이야?’ 라는 뜻도 담고 있다. ‘너 뭐 돼’라는 말 속에는 역설적으로 ‘뭐 되는 사람’은 그런 말할 자격이 있다는 뜻을 내포한다. 그래서 그말 속에는 ‘뭐가’ 되고 싶은 우리의 욕망이 담겨 있는 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뭐가 되려는’ 세상에서 ‘뭐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린’ 사람을 만났다.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이 최근 펴낸 에세이 ‘호의에 대해서’에 등장하는 한기택 판사다.

그는 한 글에서 “저는 내가 뭐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순간, 남들이 나를 죽었다고 보건 말건, 진정한 판사로서 나의 삶이 시작될 것으로 믿습니다. 내가 목숨 걸고 악착같이 붙들어야 할 것은 그 무엇이 아니라 법정에 있고, 기록에 있는 다른 무엇이라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때 가졌던 꿈이 절대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었던 그였지만 불의를 보고는 참지 않았다. 전두환 정권이 임명한 김용철 대법원장을 당시 헌법 개정에 따라 노태우 대통령이 재임명하려 하자 400여명 판사의 서명을 받아 사퇴를 이끌어낸 제2차 사법 파동의 주역이 바로 그였다. “출세를 생각하는 대신,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생각했던” 그는 약자에게 관대하고 강자에게 엄격한 판사였다.

그는 40대 후반의 나이에 가족과 떠난 여행에서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숨졌고, 동료들이 “그가 불쌍하다고 생각하다가 그 없이 살아갈 우리가 더 불쌍하다”고 말할 만큼 신망받는 사람이었다. 법조계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문형배 재판관이 풀어놓은 다양한 글과 한기택 판사 이야기는 더 마음에 와 닿는다.

언제부턴가 착하다는 말이 칭찬이 아닌, 세상물정 모르는 답답한 사람이 되어버린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수많은

‘좋은 사람’을 발견하는 행복

‘좋은 사람’도 만났다. 지난 2023년 일상 생활 속에 숨어 있는 ‘좋은 사람’을 발견해 소개한 ‘너무 좋은 사람전’은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국내에서는 ‘너무 착하잖아’라는 타이틀로 전시회가 열렸고 아시아 곳곳에서 30만명의 관람객을 모았다.

책 ‘좋은 사람 도감’은 전시회에 걸렸던 원본을 실은 책으로 100명의 좋은 사람이 등장한다. 정수기 물통을 먼저 나서서 갈아주는 사람, 월초에 달력을 뜯어주는 사람, 사무실 복사기 용지가 다 떨어지기 전에 넣어주고 관엽식물에 물을 주는 사람은 누군가가 해주겠거니 하고 모두가 생각하는 종류의 일을 귀찮아 하지 않고 선뜻해치우는 ‘좋은 사람’이다.

개인적으로 뜨끔했던 ‘좋은 사람’은 노래방에서 다른 사람이 노래하고 있을 때 휴대폰을 보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건 꼭 노래방에만 적용되는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기 중심적인 세상에서 ‘내 것’에만 눈 돌리고 자신을 주목해주길 바라면서 정작 남의 이야기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 우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메뉴를 주문할 때 ‘맛있겠다’고 말해주는 사람, 버스에서 내릴 때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 길에 떨어진 장갑을 찾기 쉽도록 근처의 눈에 띄는 곳에 놓아두고 그 길을 지날 때마다 살피는 사람도 언급된다.

100가지 이야기는 너무 사소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소한 것조차 사라져가는 요즘이기에 한번쯤 새겨보게 된다. ‘좋은 사람을 발견한 횟수만큼 일상이 행복해진다’는 카피 문구처럼 책에 등장하는‘좋은 사람’이 바로 내 곁에도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행복해졌다. 당신의 주변에는 좋은 사람이 있는가? 당신은 좋은 사람인가?

핫이슈

  • Copyright 2009.
  • 제호 : 광주일보
  • 등록번호 : 광주 가-00001 | 등록일자 : 1989년 11월 29일 | 발행·편집·인쇄인 : 김여송
  • 주소 :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24(금남로 3가 9-2)
  • TEL : 062)222-8111 (代) | 청소년보호책임자 : 채희종
  • 개인정보취급방침
  • 광주일보의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