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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년 지났지만 내 친구 선엽이를 기억합니다”
‘서울의 봄’ 희생자 정선엽 병장 12일 모교 동신고서 첫 추모식
명예회복 나선 친구·동문 주도…조선대, 명예졸업장 수여키로
2023년 12월 11일(월) 20:10
고교 시절 기수단에서 활동한 정선엽 병장(맨 왼쪽). <동신고총동문회 제공>
“40여년이 지났지만 내 친구 선엽이를 계속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 단 한 컷으로 지나갔지만, 고(故) 정선엽(당시 23세) 병장은 40년 넘는 세월에도 친구들의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1979년 12·12 당시 육군본부 B-2벙커를 지키다 산화한 정 병장의 친구들은 영화 ‘서울의 봄’을 계기로 그가 산화한지 44년만에 처음으로 추모식을 연다.

추모식은 12일 오후 1시 광주시 북구 풍향동 동신고 체육관 옆에 식재된 ‘의로운 동문 고 정선엽 병장의 나무’ 앞에서 동문 20여명이 모인 가운데 열린다. 정 병장의 친형 훈채씨는 미얀마에서 선교사를 하고 있어 참석하지 못하지만 동생인 규상(64)씨가 참석한다.

광주 동신고를 졸업하고 조선대 재학중이던 정 병장은 1979년 12월 13일 새벽 박희도 1공수여단장이 지휘하는 공수부대가 국방부를 점령하기 위해 몰려오자 끝까지 저항했다.

공수부대원이 정 병장의 M-16 소총을 뺏으려 하자 “중대장의 지시없이는 무기를 줄 수 없다”며 항거하다 공수부대원의 총 4발을 맞고 숨졌다. 당시 정 병장은 제대까지 석달만 남았었다.

정 병장의 동창들은 그를 ‘불의를 참지 못했던’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동신고 7회 졸업생 정형윤(67)씨는 정 병장과 막역한 사이로, 흥사단 활동을 하며 고등학교 시절 내내 함께했다.

광주시 동구 지산동에서 형과 함께 자취를 하던 정 병장의 집에는 늘 사람들이 가득한 사랑방이었다고 친구들은 회상했다. 흥사단 활동 동기들과 학교 친구들은 매일같이 정 병장의 집에 모여 흥사단 정신인 ‘무실역행 충의용감’(務實力行 忠義勇敢)에 대해 토론하고, 라면을 끓여먹으며 동고동락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정신인 ‘공리공론을 배척하고 참되고 성실하게 힘써 행한다’는 흥사단 정신을 항상 입에 달고 살았다는 것이다.

정 병장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이미 180㎝의 큰 키에 친구들 뿐 아니라 주변에서 항상 주목받고 인기도 많았다고 한다.

또 정 병장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친구가 있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중재에 나섰다. 항상 성적은 중상위권을 유지하며 공부와 흥사단 활동에만 전념했다.

정씨가 기억하는 정 병장과의 마지막 추억은 1977년 조선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입학 후 자원입대해 휴가를 나왔을 때다.

정씨는 정 병장과 전북으로 여행을 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당시 정 병장은 “첫째 형이 제대하면 좋아하는 전기공학 관련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게 유학을 보내 주기로 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지만 이후 다시 정 병장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정선엽 병장을 기리기 위해 동신고에 심은 소나무.
동신고 1년 선배인 김병태(68)씨는 형이라 부르며 곧잘 따랐던 정 병장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뭉클하다고 회상했다. 흥사단이었던 김씨 역시 정 병장의 집을 사랑방 삼아 매일같이 함께 어울렸다.

김씨는 2017년 5월 임현모 전 총 동창회장과 이인권(66)씨, 전이양(67)씨 등과 함께 동신고 내에 정 병장을 기리는 기념수를 심는데 앞장섰다.

후배들이 정 병장의 의협심을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김씨는 “학교에 심은 소나무(기념수)를 보면 꼭 선엽이가 서있는 것 같아서 여전히 많이 그립다”고 울먹였다.

이들은 또 지난 2021년 국방부 산하 군사망사고 진상규명조사위원회(위원회)에 정 병장의 사망에 대한 진상조사를 의뢰해 ‘순직’에서 ‘전사’ 결과를 받아냈다.

김씨는 “같은 날 신군부에 저항하다 숨진 김오랑 소령에게는 훈장이 추서됐지만 선엽이는 받지 못했다”며 “계급을 떠나 선엽이의 의로운 정신을 기억할 수 있도록 훈장 추서는 꼭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조선대는 12일 오후 4시 교무회의를 거쳐 정 병장의 명예 졸업장을 수여하기로 했다. 유족은 정 병장이 숨진 13일 새벽을 기억하기 위해 13일 수여를 원하고 있지만 학교측은 수여 일시와 방식을 유족과 협의를 하고 있다.

/김다인 기자 kd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