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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미칠근의 농심이 필요한 때-옥영석 농협경제지주 소매유통부장
2022년 06월 08일(수) 01:30
최근 입사하는 직원들을 보면 이름만 대도 알 만한 학교를 졸업하고, 대부분 어학연수를 다녀온 이들이다. 자격증 두어 개는 필수인데다 이곳저곳을 넘나드는 동아리며 봉사활동까지 이어지는 화려한 경력에 놀랄 때가 많다. 수업이나 리포트, 시험 준비만도 만만찮았을 텐데 자격증은 언제 따고 그 많은 스펙을 갖추려면 잠이나 제대로 자고 살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 우수한 인재들의 직장 선택 기준이 지원 회사와 일에 대한 관심, 적성, 사명감이라면 좋겠지만 대개는 기대와 어긋나는 편이다. 이런저런 인연의 선배들에게 입수한 정보와 지원 회사의 홈페이지를 통해 기업 이념과 가치를 줄줄 외우지만 지원 동기는 급여를 섭섭잖게 주기 때문이며, 하고 싶은 일은 후선 부서의 지원 업무가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비난할 필요는 없다. 그들의 생각은 기성세대를 직간접적으로 보고 배우고, 따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 국민의 직업 선택 요인은 1983년 이래 안정성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 왔으나, 10여 년 전을 기점으로 수입(36.3%)이 안정성(30.4%)을 추월하였고 적성·흥미(11.3%), 장래성(7.8%), 보람·자아 성취(7.4%), 명예(3.3%)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외환 위기 때 최고조에 달한 안정성에 대한 욕구는 이직과 전업 등 직업 세계의 변화와 불안정성에 대해 익숙해진 만큼 수입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커졌음을 의미한다. 적성과 장래성, 성취감, 명예 등 다른 가치를 합한 것(29.8%)보다 비중이 크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돈의 가치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반면 노르웨이·스웨덴·네델란드 등 북유럽 국가뿐 아니라 호주·캐나다에서도 일에 대한 자부심을 직업 선택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고 있다. 자본주의의 종주국인 영국과 미국에서는 수입이 1순위이긴 하지만 일에 대한 자부심이 별반 차이나지 않는 2순위이고, 일본·멕시코·브라질에서는 오히려 수입보다 일에 대한 자부심을 중시하고 있다.

책임감 없고 눈앞의 이익만을 쫓는 세태를 보며 직업 윤리와 리더십의 부재를 탓해 보지만 돈이 가장 우선되는 직업 가치가 된 사회에서 자신의 일이 고객과 사회, 더 나아가 국가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신념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자부심이 없는 집단에게 직장이란 생계를 해결하는 수단일 뿐 팀웍과 소명 의식이 살아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목적이 이윤 창출이라는 것 만해도 그렇다. 어려서부터 습관적으로 듣고 외어온 “기업의 목적은 이윤 창출”이라는 공식은,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은연중에 심어 주고 있다. 지속 경영을 위한 이윤 창출이야 당연한 것이지만 그 이윤을 얻기 위한 수단과 방법도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적법한 것이어야 하고, 환경과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오래 전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카피가 큰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다. 그 시절 만나는 사람마다 “부자 되세요”라고 덕담을 건네곤 했는데, 요즈음엔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대박 나세요”를 외친다. 대박은 노력한 바에 비해 큰돈을 벌거나, 복권에 당첨되거나, 도박판에서 횡재하였을 때 쓰는 표현이다. 큰 돈을 버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지만, 한탕주의에 물들어 요행으로라도 부를 얻으라며 대박을 기원하는 풍경은 누가 봐도 바람직한 사회상은 아니다.

한 톨의 쌀을 얻기 위해 농부는 겨우내 소중히 보관해 온 볍씨를 소독하고 싹을 틔우고 어린 모를 내, 물을 대고, 피를 뽑으며, 새를 쫓고, 베어서 말리는 88번의 작업을 거쳐야만 한다. 그중 한 공정이라도 게을리하거나 귀찮아 건너뛴다면 식구를 건사할 양식은 반으로 줄거나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쌀 한 톨을 얻기 위해 일곱 근의 땀을 흘리는 일미칠근(一米七斤)의 농심으로 돌아가 기본적 절차와 양심을 회복하고 직업 윤리에 충실할 때,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는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