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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환과 소년입지회(少年立志會)-박행순 전남대 명예교수
2022년 05월 03일(화) 23:40
제100회 어린이날을 앞두고 어린이 운동의 창시자인 소파(小波) 방정환(1899~1931) 선생의 발자취를 돌아본다. 그는 만 여섯 살까지 할아버지에게 천자문을 배웠으나 어느 날 머리를 자르고 집안 어른들로부터 크게 야단을 맞았지만 보성소학교 유치반을 시작으로 신학문의 길에 들어섰다.

아홉 살 때, 또래 친구들을 모아 소년입지회(少年立志會)를 조직하고 토론·연설·동화 구연 등을 하였는데 2년 만에 회원이 160명이 넘었다. 18세가 되던 1917년 천도교 3대 교주인 의암 손병희의 셋째 딸 손용화와 결혼한 후 천도교를 중심으로 많은 활동을 하였다. 천도교 청년 교리뿐만 아니라 다양한 강연과 단체 결성으로 바쁜 삶을 살았다. 특히 그의 동화 구연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전국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같은 해인 1917년에는 ‘청춘’을 통하여 등단하고 번역·창작 등 작품 활동도 시작하였다. 1920년 ‘개벽’ 3호에 번역 동시 ‘어린이 노래’를 발표하면서 그가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였다. 아이도 늙은이, 젊은이와 같은 어엿한 인격체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1919년 3·1 운동 이후 민족정신을 고취시키고자 전국 각지에서 소년회를 결성하였다. 특히 천도교 소년회는 1922년 5월 1일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날 행사를 개최하였다. 행사와 관련하여 동아일보에는 어린 사람에게 헛말로 속이지 말 것, 경어를 쓸 것, 충분한 수면과 운동을 하게 할 것, 자주 이야기해 줄 것, 때 맞춰 이발과 목욕을 시킬 것, 동물원에 자주 보내줄 것, 시집·장가 보내려고 서두르지 말고 사람답게 대하라는 소년보호 운동 7개 조항이 실렸다. 이는 1925년 ‘아동복지를 위한 세계 회의’(World Conference for the Well-being of Children)가 열린 제네바에서 제정한 ‘국제 어린이날’(6월 1일) 보다 3년이나 앞선 것이다.

1923년 3월 일본에 유학 중이던 방정환을 중심으로 도쿄에서 새로운 어린이 운동 단체인 색동회를 조직하고 ‘어린이’라는 이름으로 잡지를 창간하였다. 5월 1일에는 40여 개 소년회가 연합한 조선소년운동협회가 전국적인 어린이날 행사를 개최하였고 색동회는 이날을 ‘제1회 어린이날’로 선포하였다. 어린이에게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할 것, 14세 이하 어린이들에게 노동을 시키지 말 것, 어린이들이 배우고 놀기에 필요한 각양의 시설을 제공할 것을 기치로 삼았다.

아동 노동은 100년 전 우리나라뿐 아니라 현재도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해외의 대표적 사례로 파키스탄의 이크발 마시흐(Iqbal Masih, 1983~1995)는 네 살 때부터 카펫 공장의 열악한 환경에서 매일 10시간 이상 일하는 수많은 아동 노동자중의 하나였다. 그는 아홉 살 때 공장을 탈출하여 ‘미성년자 노동해방전선’과 함께 아동 노예 노동 실상을 폭로하며 세계적인 아동 인권가로 활동하였으나 열두 살 되던 해에 고향에서 괴한의 총탄에 맞아 숨졌다.

1924년의 제2회 어린이날은 첫 해보다 훨씬 더 성대하게 치러졌다. 어린이 대회, 어린이 보호자 대회, 동화회, 동요회, 씨름, 그네뛰기 등 다양한 행사가 일주일 동안 계속되는 대축제였다. 광복 후에는 5월 1일의 국제 노동절과 중복을 피하기 위하여 5일로 바꾸었다. 1961년 제정·공포된 ‘아동복지법’ 제6조에는 ‘매년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하며, 5월 1일부터 5월 7일까지를 어린이 주간으로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1975년 이후 어린이날은 법정 공휴일이다.

암울한 일제 강점기에 작은 물결, 소파(小波)로 호를 삼은 방정환은 33세의 짧은 생을 살았다. 하지만 자유 대한민국에서 제100회 어린이날을 맞은 지금, 그는 가장 큰 물결로 기억된다. 한 세기 이전에 소년 방정환이 활동하던 소년입지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 좋겠다. 그래서 스마트폰에 익숙한 우리 어린이들이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새롭고 큰 뜻을 세우고 인터넷을 통하여 세계 어린이들과 함께 건강한 지구촌을 만드는데 앞장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