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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스탠다드와 로컬 스탠다드
2020년 07월 13일(월) 00:00
최 유 준 전남대 호남학과 교수
전 지구화 현상이 가속화된 20세기말 이후로 한국 사회에서 가장 눈에 띄게 ‘글로벌 스탠다드’(국제적 표준 규범)가 가시화된 분야 가운데 하나가 스포츠일 것이다. 예컨대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구기 스포츠인 야구와 축구의 경우, 미국 메이저리그의 박찬호나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박지성의 활약 이후로 해외 유명 리그에 대한 국내 대중의 관심이 급격히 커졌다.

국제적 방송 중계권 거래에 의해 부추겨진 측면이 있지만(이는 전 지구화의 중요한 한 측면이다) 해외의 한국 선수 활약상이 국내에 실시간으로 중계되면서, 해외 리그의 경기 운영 방식이나 경기장에서 선수들의 행동 방식을 국내 리그에서도 모방적으로 따르는 양상이 보였다. 긍정적인 변화의 예를 들자면, KBO 프로야구 중계 화면에서 다양한 통계 수치를 제공하면서 특히 투수들의 투구 수를 세는 관행은 박찬호 이후 메이저리그 중계를 통해 보고 배운 것이었다. 이제는 15회까지 맞붙어 완투하면서 각각 200개 이상의 공을 던졌다고 하는 옛 라이벌 투수 최동원과 선동열의 전설은 투구 수를 세지 않던 초창기 한국 프로야구의 ‘잔혹사’로 느껴진다.

한 수 위인 해외 유명 리그의 관행을 ‘글로벌 스탠다드’로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상 당연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그래서 해외 리그에서의 특이한 관습들까지 국내에 거침없이 수용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영국 축구 프리미어리그에서 골을 넣은 선수의 머리를 동료 선수들이 손으로 쓰다듬는 관습이 그렇다. 박지성의 활약과 함께 프리미어리그의 이러한 낯선 관습이 한국 대중의 눈에 익숙해진 이후로 국내의 축구선수들도 골을 넣은 선수의 머리를 쓰다듬게 되었다. 하지만 종종 그 모습이 자연스럽다기보다 ‘선진 규범’에 따라야 한다는 강박처럼 느껴지곤 한다.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에서 ‘벤치 클리어링’이라고 하는 ‘경기 중 패싸움’ 관습도 그렇다. 경기 중 두 팀 선수들 사이의 충돌이야 KBO리그에서도 초창기부터 간헐적으로 있어 왔지만, 박찬호 이후 메이저리그의 ‘벤치 클리어링’을 보고 배운 이후로 이러한 경기 중 패싸움은 한국의 야구장에서도 관습화되어 이전보다 훨씬 빈번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팀과 선수가 워낙 많은 메이저리그와 달리 KBO리그는 대부분의 선수들이 서로 친분이 있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메이저리그의 난폭한 ‘벤치 클리어링’ 관행을 따라 하는 KBO리그 선수들의 모습은 종종 어색하고 억지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최근에는 조금 달라진 모습이 보인다. KBO리그에서 ‘몸에 맞는 공’(속칭 ‘데드볼’)과 관련한 선수들의 태도 변화가 그 한 가지 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투수가 던진 공이 타자의 몸에 맞을 경우, 고의가 아닌 이상 투수는 타자에게 전혀 사과하지 않으며 타자들도 사과를 요구하지 않는다. 야구 룰에 따라 타자가 곧바로 1루에 진루하게 되어 투수는 벌칙을 받고 타자는 공에 맞은 고통에 대한 보상을 얻는 셈이니, 그것만으로 충분히 공정하다는 것이 그들의 ‘합리적’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KBO리그 투수들은 자신들이 던진 공에 맞은 타자들에게 모자를 벗는 등의 제스처를 취하면서 사과의 뜻을 전하기 시작했다. ‘사과하지 않기’의 ‘글로벌 스탠다드’ 대신에 ‘사과하기’의 ‘로컬 스탠다드’를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KBO리그의 외국인 용병 선수들(이들 가운데 일부는 메이저리그 경험이 있다)이 이러한 ‘로컬 스탠다드’에 자발적으로 동참하고 있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물론 지나치게 예의를 차리려는 모습이 부자연스러울 때도 있고, 타자가 나이 든 선수일 경우 투수의 사과 인사는 또 다른 한국식 위계 문화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든 상대의 신체에 위해를 가하고 아프게 했으니 사과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보편적’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로컬 스탠다드’가 기존에 믿어 왔던 ‘글로벌 스탠다드’보다 더 보편적일 수 있는 것이다.

야구와 축구의 예에서 보듯 우리가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암묵적으로 간주해 왔던 것들은 실상 ‘로컬 스탠다드’였다. ‘글로벌 스탠다드’란 그런 ‘로컬 스탠다드’들 사이의 횡단과 소통, 합의와 협상의 과정을 가리키는 이름과 다르지 않다. ‘글로벌-로컬’의 질서가 재편되어 가는 지금, 광주의 ‘로컬 스탠다드’를 더욱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할 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