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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영화라면, 나는 어떤 캐릭터일까?
2020년 06월 26일(금) 00:00
중 현 광주 증심사 주지
“노아 루크먼은 ‘가지고 있는지조차 모르지만 인물의 무의식 속에 잠재된 신념’으로 프로그램을 설명한다. … 더 넓게 보자면 자신도 잘 모르면서 하게 되는 사고나 행동의 습관 같은 것이다.”(김영하, ‘여행의 이유’ 중)

시나리오를 받아 든 배우는 자신이 맡은 배역이 어떤 캐릭터인지 궁금해 한다. 배우는 작가와의 대화, 캐릭터에 대한 연구 등을 통해 캐릭터를 생생하게 구체화하고 자기화한다. 활자 속 등장인물에게 숨결을 불어넣어 살아 있는 인물로 재창조하는 것이다. 훌륭한 배우는 시나리오엔 없는 등장인물 특유의 말투와 손짓, 표정과 버릇까지 창조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프로그램’이다.

만약 인생이 한편의 영화라면, 나는 ‘나’라는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인 셈이다. 그렇다면 배우가 등장인물을 분석하듯,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라는 인물이 어떤 캐릭터인지 궁금한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물론 ‘나’라는 캐릭터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인 ‘프로그램’ 역시 당연히 있을 것이다. ‘프로그램‘은 모든 인간의 내면에 도사린 자신도 모르는 그 무엇, 즉 개별적이고 고유한 ‘나’와 동일해 보인다.

‘나’는 뭔가 있기는 있는 거 같지만 그게 뭔지 들여다 보면 정작 어디에도 없는 신기루 같은 것이다. ‘나’는 ‘사랑’ ‘자유’ ‘가치’ 같은 개념의 일종이다. 개념은 현실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 보이는 여러 현상에서 특정한 측면들을 따로 모아서 추상화시킨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그런 개념이 아무런 현실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가 하면 그것은 아니다. 현실에 뿌리내리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돈은 종잇조각에 불과하지만 교환 가치로서의 화폐가 가진 막강한 영향력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현실 세계 속에서의 ‘나’는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의 뒤범벅이다. 이들은 조건에 따라 생겼다가 조건에 따라 사라진다. 사실 ‘있다’는 말도 매우 애매한 표현이다. 있다는 것 역시 일종의 신기루 같은 것이다. 있는 것 같지만 실재로는 아무 것도 없다. 어떤 조건이 갖춰지면 있는 것처럼 인식될 뿐이다.

그녀는 자신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제가 지금 일종의 외로움 주간이랄까, 그래요. 그렇다고 친구들과 즐겁게 웃고 떠들 때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에요. 그럴 때면 당연히 즐겁다는 생각이 들죠. 이런 게 행복이라고 생각하다가도 금방 불안해져요. 이 행복이 사라질까봐.”

노아 루크먼 식으로 말하자면, 그녀가 자체 진단한 지금 자신의 ‘프로그램’은 외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행복이 끼어들 틈이 없다. 다만 그녀는 자신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여러 가지 조건들로 인해 외로운 감정이 강할 뿐이다. 굳이 ‘나는 외롭다’고 자신을 규정하는 행위도 하나의 생각이다. 이 생각이 조건이 되어서 자신의 감정을 의도적으로 통제하려고 한다.

젊은 시절의 나는 종종 정체를 알 수 없는 무형의 틀 속에 갇힌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비슷한 생각과 행동의 수레바퀴를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자괴감이 들곤 했다. 극복해야 하지만 호락호락 뜻대로 되지 않는 그 무엇, 내 안에 도사리고 있지만 나도 어찌 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나를 압박하곤 했다. 그녀는 다른 의미에서 젊은 시절의 내가 범했던 오류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만약 당신이 지금의 자신에게 화가 나고 삶이 따분하게 느껴진다면, ‘부정하고 싶은 나의 캐릭터’에 싫증을 느끼는 것이다. 만약 우울하고, 무기력하고, 의기소침해 있다면 ‘되고 싶은 나의 캐릭터’를 연기하느라 지쳐 있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항상 ‘부정하고 싶은 나의 캐릭터’와 ‘되고 싶은 나의 캐릭터’ 사이 어디쯤에서 방황하고 있다. 하지만 어디라고 콕 집어서 말하는 순간, 지금의 나는 사라져 버리고 둘 중 하나가 되어 버리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난다. 모든 인간은 개별적이고 고유한 그 무엇으로 규정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 다만 어떤 조건들이 지금의 모습에 영향을 주는지 살펴보는 주체적인 자기 성찰이 필요할 뿐이다.

‘나’? 그런 거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