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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를 선물하니 호된 더위와 나쁜 기운 날려 버리게”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선물의 문화사 - 김풍기 지음
2019년 12월 20일(금) 04:50
“어떤 임금은 신하들과 술자리를 마련하고 양껏 마신 뒤 너나없이 한데 어울려 ‘한림별곡’ 같은 인기곡들을 부르며 춤을 추기도 했다. (중략) 아쉽게도 늘 그런 자리를 만들지 못하거나 성격상 함께 즐기지 못하는 임금이라면, 혹은 신하들을 격려하고 포상하는 차원에서 술을 대접하고 싶었던 임금이라면, 그들에게 술을 하사하면서 선물로 앵무배 같은 것을 슬쩍 키워서 내려주었을 것이다. 예종은 승정원 관리들에게 술과 앵무배를 내리면서 ‘모름지기 마음껏 마시고 취하라’고 한 바 있다.”(본문 중에서)

앵무조개로 만든 술잔. 조선의 문신 배삼익이 1587년 명나라에서 선물로 받았다.


앵무배(鸚鵡杯)는 앵무새 부리 모양의 술잔을 말한다. 사대부들 사이에서 귀한 대접을 받았는데 조선시대에는 뇌물로 사용됐다. 앵무배가 최치원 시에도 등장하는데, 지식인 사이에서는 술을 연상하는 기물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앵무배는 고려 원종 때 몽골의 사신 속리대(束里大)와 고려 태자 사이에 오해가 생기자, 태손이 몽고 사신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 앵무잔과 백은(白銀) 30근을 뇌물로 바쳤다고 한다. 이처럼 앵무배는 오랜 옛날부터 귀한 물건으로 취급되어 명성을 쌓아왔다.

선물은 하나의 물건을 넘어 그것에 담긴 마음과 행위까지를 포괄한다. 사실 우리 삶의 대부분은 선물로 가득 차 있다. 나의 능력 외에도 누군가의 “배려와 애정”으로 꾸려지기 때문이다.

조선의 선물 문화를 다룬 책이 발간됐다. 김풍기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가 펴낸 ‘선물의 문화사’는 조선을 이끈 19가지 선물을 조명한다. 책에 등장하는 19가지 선물은 대부분 경제적 틈새를 메우는 데서 나아가 시대에 꼽히는 유행 아이템이었다.

저자는 조선 시대 선비들의 일기를 보면 선물이 일상적으로 오갔다고 본다. 새해가 되면 왕은 신하들에게 책력을 하사하고, 신하들은 그것을 주변 이들에게 나눠주었다. 18세기 말에는 1만6000~1만8000축을 발간할 정도로 양이 상당했다. 그러나 대도시라야 새해 책력을 구할 수 있었지 시골은 거의 구하기가 어려웠다.

“책력을 보면서 제사 지내기에 적절한지 여부를 살피고 아름다운 절기를 점치는 것은 바로 책력의 기능에서 비롯된다. ‘책력’을 지금은 달력으로 번역하지만, 그 단어에 ‘책’(冊)이라는 글자가 들어있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대나무로 만든 접이식 부채 합죽선.


더위를 날려버리는 단오부채도 귀한 선물이었다. 단오를 즈음해 선물로 주고받은 것 중 최고의 인기 품목이 바로 부채였다. 단오선, 절선으로 불리는 부채에는 더위를 무사히 견뎌내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국왕이 신하에게 부채를 하사한 것처럼 고을 관아 또한 아랫사람들에게 단오선을 선물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한두 개가 아닌 꽤 많은 양을 선물한 것으로 보아 부채의 인기가 적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옛사람들은 부채를 통해서 한여름의 나쁜 기운을 떨쳐내고 더위를 이겨내어 한여름을 보내라는 뜻을 담았다. 어쩌면 상대당의 절의에 대한 존경을 담았을 수도 있고, 선정을 펼치라는 소망을 담았을 수도 있다.”

문사들은 종이를 선물로 받으면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특히 고려 이후 종이의 수요는 꾸준히 늘었는데 유학의 시대인 조선에 들어서면 국가문제로 대두될 정도였다. 조선의 종이는 품질이 우수해 중국에서 인기가 높았다. 당시 중국은 공물로 종이를 요구했고 1407년(태종7)에는 순백지 8000장을 보낸 기록이 있다.

이처럼 책에는 조선의 선물이 다채롭게 꾸려져 있다. 번역 한시와 간찰(편지) 등도 읽는 맛과 보는 맛을 더해준다. 앵무배와 율곡벼루 등 실물 도판은 당대 선물의 면모를 파악하게 해준다.

“분명한 것은 사심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선물을 주고받아야 비로소 우리 사회가 조화로운 공동체로 유지되어 갈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의 건강한 수확은 상당 부분 선물의 몫이다.”

<느낌이 있는 책·1만55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