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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상처 그대로…추수 앞둔 농심 ‘한숨’
농작물·양식장 등 막대한 피해
일손 달려 벼 세우기 역부족
전남 피해 복구율 27% 불과
상품성 떨어져 ‘발만 동동’
2019년 09월 19일(목) 04:50
18일 광주시 북구의 한 논에서 육군 제31보병사단 장병들과 광주 북구청 직원들이 제13호 태풍 ‘링링’에 쓰러진 벼를 세우고 있다. /최현배 기자choi@kwangju.co.kr
“돈이 중한 것이 아니여. 농사꾼이라면 나락 하나, 낱알 한톨이라도 더 살려야제.”

광주시 북구 지야동에서 6612㎡(2000평)의 벼농사를 짓고있는 박판규 씨의 논 사이사이에는 거대 공룡이 짓밟고 지나간 듯한 구멍들이 숭숭 나있었다.

지난 6~7일 전국을 휩쓸고 간 태풍 ‘링링’으로 쓰러진 벼들이 머리부터 바닥으로 완전히 고꾸라져 진흙이 묻은 채로 누워있었고, 밑에 깔린 짚들이 썩으면서 물비린내까지 진동했다.

박씨는 “10월 20일쯤 추수를 예상하고 있었는데, 태풍으로 벼가 아직 누렇게 익지 않은 청잎 상태로 물에 잠겼다”며 “쓰러진 벼는 서로 겹쳐 썩거나 미질이 떨어져 낟알이 쉽게 부서지는 등 상품성이 없어진다”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피해면적이 너무 커 작업할 엄두가 나질 않는다”며 “며칠 째 벼 세우기 작업을 하고 있지만, 2000평 중 3분의 1 정도가 태풍으로 쑥대밭이 돼 일을 해도해도 끝이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다행히 내일 구청과 군인 장병들이 대민 지원을 나온다고 해 벼 세우기 작업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면서도 “다만 지원 나온 장병들 중 상당수는 농사일이 처음인 탓에 벼 세우는 기술이 없어 작업 속도가 더딘데다, 그나마도 일일이 사전 교육을 해야만 일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답답해했다.

며칠전 대민지원을 받은 옆 논의 다른 농민은 “보리는 스스로 일어나기도 하지만 벼는 그렇지 않다”면서 “특히나 세워서 묶는 것도 꽉 묶으면 썩어버리기 일수라 통풍이 잘되게 기술적으로 잘 묶어야 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제13호 태풍 ‘링링’이 전남 서해안을 휩쓸고 간지 10여 일이 지났지만, 광주·전남 들녘에는 태풍이 할퀴고 간 상처로 추수를 앞둔 농민의 심정이 타들어 가고 있다. 도로·상하수도 등 공공시설 등은 대부분 복구를 마쳤으나, 논·비닐하우스·과수원·양식장 등 사유시설은 피해를 입증할 보험조사와 추석연휴 등이 겹친데다 일손마저 부족해 복구작업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18일 전남도에 따르면 제13호 태풍 ‘링링’으로 인해 전남 19개 시군에서 101억 원의 물적 피해가 발생했다.

이번 태풍으로 해남·화순·보성 등 전남에서는 벼 쓰러짐(도복) 7004㏊, 과수 피해 1223㏊, 수산 증·양식시설 589어가 등의 사유시설 피해가 집계됐다.

이번에 피해를 입은 도로 등 공공시설은 추석연휴 전 복구작업이 마무리됐지만, 농작물과 양식시설 등 사유시설의 경우 피해 범위가 워낙 광범위해 복구작업이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도복 피해를 본 농가 중 일부는 벼 세우기 작업 자체를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전남은 지금까지 8500여 명을 동원해 벼세우기에 나섰지만, 피해면적이 광범위해 현재 복구면적은 고작 27%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전남도 식량원예과 관계자는 “일손 부족으로 쓰러진 벼를 세우지 않고 수확량이 적더라도 아예 콤바인으로 수확하려는 농가도 많다”면서 “전남도 등에 도움을 청한 농가는 인력을 총동원해 벼를 세우고 있지만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태풍에 직격탄을 맞은 수산물 양식장도 피해 복구에 애를 먹고 있긴 마찬가지다. 7개 시·군 262어가에서 피해가 발생한 전남에선 피해조사 등을 이유로 복구작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재산피해가 집중된 신안군 흑산면의 경우엔 오는 24일께나 피해 금액이 확정되고,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