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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임형준 순천 빛보라교회 담임목사] ‘두려움’
2019년 08월 30일(금) 04:50
오늘은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요소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약속 그리고 스스로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다고 느끼면 불안감을 갖게 되고 이것이 반복되면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 잡혀 평정심을 상실하게 된다. 이러한 정신적 불안은 결국 육체적 건강에 영향을 주어 행복감을 앗아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아가면서도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 ‘두려움’이라는 대상을 의외로 감지하거나 경계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실업, 경쟁, 대립, 사고, 병, 죽음, 죄책감 등은 두려움의 대상들이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세상은 온통 두려움으로 싸이게 된다. 두려움 속에 있는 사람들은 육체적 분주함 속에서 자신의 불안을 잊으려고 발버둥 친다. 두려움은 인간의 상상력을 타고 끝없이 확산되기 때문에, 인간의 위대한 가능성과 다양한 창의력을 소멸시켜 버린다.

성장기의 아이들이나 공부하는 학생들이 게임이나 음란물에 쉽게 중독되는 원인은 ‘성적’이라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가상의 대체 수단으로 들어가 은둔하여 현실로 돌아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몇 해 전부터 설교나 상담을 할 때 정상적인 사회생활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거부하고 장기간 집안에 틀어박혀 자신의 방안에서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게임에 빠져서 밤낮이 뒤바뀐 생활을 하는 대상을 지칭하는 ‘히키코모리’라는 단어를 부쩍 많이 인용한다. 두려움으로부터 시작된 은둔형 외톨이로 해석되어지는 ‘히키코모리’는 이제 정신의학적 용어가 되어 버렸다.

검도에 처음 입문하면 사계(四戒) 즉 경구의혹(驚懼疑惑)이라는 네 가지 경계해야 할 마음을 가르친다. 이 사계 중 경과 구는 두려움에 대한 것이다. 검을 겨누고 있는 상대방의 기합 소리가 쩌렁쩌렁하거나 눈매가 날카롭고, 몸집이 크고 험상궂으면 겁을 먹는다. 이렇게 다른 사람으로부터 기인한 두려움을 경(驚)이라 한다. 경은 훈련과 연습에 의해 극복된다. 다른 사람에 대한 두려움은 자신의 힘을 키워 감으로써 이겨 낼 수 있기 때문에 비교적 상대하기 쉬운 적이다.

또 다른 두려움으로 구(懼)가 있다. 이것은 자신에게 기인하는 두려움이다. 자신도 그 두려움의 원인을 모른다. 까닭 없이 무섭고 두려운 것이다. 이 두려움은 경보다 상대하기 훨씬 힘들다. 수련을 많이 쌓은 무사도 근본을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성경에는 여호수아라는 젊고 용맹스러운 장수가 어느 날 지도자인 모세가 죽자 큰 두려움에 빠지는 이야기가 있다. 이 용맹한 젊은 장수도 믿었던 민족의 지도자가 갑자기 죽자 모든 염려와 걱정 근심 후에 몰아치는 두려움을 감당하지 못해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며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수1:9) 성경에는 두려움이라는 단어가 356번 등장한다. 그만큼 ‘두려움’은 인생사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의미다.

모세를 지키신 하나님이 너도 지켜 줄 것이니 믿음을 갖고 강하고 담대하라고 명령어로 가르친다. 그 후 여호수아는 그 명령과 가르치심을 믿고 강하고 담대한 지도자가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잘 이끌어갔다는 이야기이다. 두려움은 자꾸 자신의 내면을 신뢰하지 못하게 하고 열등하게 한다. 두려움은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우리의 삶의 영역을 매일매일 넓혀 간다.

그렇다면 두려움은 싸움의 대상이다. 자신의 마음의 땅을 차지한 두려움을 향하여 강하고 담대하게 명령하고 선포해야 한다. 우리는 각자의 두려움을 향하여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한다. 이 싸움에서 반드시 이기려면 내면의 자신을 신뢰해야 한다. 창조주께서 주신 잠재력을 믿는다면 이제 더 이상 두려움으로부터 마음이 위협당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