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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준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교수] ‘노쇼’의 정치학과 만남의 예술
2019년 08월 05일(월) 04:50
세계적 축구 스타 호날두의 ‘노쇼’(No-Show) 사건이 화제다. 소속 팀인 이탈리아의 명문 축구클럽 유벤투스의 한국 방문 친선경기에서 그가 경기에 나서지 않고 내내 벤치만 지켜 문제가 됐다. 호날두의 노쇼만 문제였던 게 아니다. 한국의 지상파 방송에서 생중계까지 하고 있었던 이 경기는 유벤투스 선수단이 경기장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예정되었던 경기 시작 시간보다 무려 한 시간 가까이 지연되었다. 어렵사리 경기는 마무리됐지만, 이래저래 모욕감을 느낀 관객들은 현재 티켓 환불 집단소송을 불사할 태세인데 정작 유벤투스와 호날두는 사건 일주일이 지나도록 공식적 사과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지 않다.

물론 호날두에 비난의 화살을 집중시키는 것은 온당치 않아 보인다. 프리시즌 기간에 막대한 흥행 수입을 거두기 위해 무리한 친선 경기 일정으로 선수들을 혹사시킨 유벤투스 구단과, 그러한 무리한 일정을 뻔히 알면서도 계약 체결을 강행한 기획사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순전히 기술적인 문제로만 생각한다면 적정한 위약금이나 환불 등의 조처로 타협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합리적 해결책만으로 보상할 수 없는 감정적 차원이 있다.

‘노쇼’는 사람들 사이의 만남과 관련되는 문제이면서 동시에 그 만남의 경제적 이해에 따른 불균등한 권력 관계를 전제하는(속된 말로 ‘갑질’과 관계되는) 용어다. 호날두에 대해 한국의 팬들이 느낀 환멸은 단순히 ‘돈’이나 ‘신용’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무시당했다는 감정의 문제인 것이다. 여기에는 축구 문화의 맥락에서 ‘선진-후진’, ‘중심-주변’의 정치적 논리 또한 암묵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사건 직후 호날두가 자신의 SNS에서 보여 준 무신경한 태도는 한국 팬들의 감정을 더욱 악화시켰다. 비슷한 시기 록페스티벌 참여를 위해 내한하여 ‘노쇼’ 논란을 일으킨 영국의 팝가수 앤마리의 행보는 이 점에서 대조적이라고 평가된다. 폭우와 강풍 등 기상악화에 따른 무대 안전 문제로 공연 취소 사태가 발생했고 행사 주최 측과 앤마리의 매니저 측 사이의 책임 공방이 이루어질 즈음, 앤마리는 직접 자신의 SNS로 한국의 팬들에게 사과와 유감의 뜻을 표명한 데 이어 자비로 호텔 라운지를 대여해 즉흥 라이브 콘서트를 열었다. 이 콘서트 실황은 SNS를 통해 생중계되기도 했다.

스포츠 이벤트를 포함한 넓은 의미의 공연 문화는 그 핵심이 ‘만남의 예술’이라는 점이다. 공연이나 이벤트를 통한 국제적 만남과 글로벌 문화 교류가 잦아지면서 민족주의나 지역주의적 감정이 약화되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직접적 만남과 대면의 순간들이 특수한 ‘장소’를 부각시키고 그 장소에서 형성된 고유의 문화와 해당 지역민들의 집단적 감정에 대한 이해를 요청한다. 공연 당사자들이나 매니저와 기획사 등 공연 중계자들이 세심하게 고려해야 할 점이다.

지난달 9일 전국 순회공연 일정의 하나로 광주 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되었던 ‘이건음악회’ 시리즈는 이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이건음악회’는 세계적 수준의 연주자들을 한국에 초청해 무료 콘서트를 갖도록 하는 기업 메세나 프로그램이다. 주최 측은 지난 30년간 일관되게 초청 연주자들에게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해 왔는데, 공연 앙코르곡으로 반드시 그 연주 팀의 편성에 특화된 ‘아리랑’ 편곡 연주를 하라는 것이었다. ‘아리랑’이라는 곡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연주자들에게 공연이 이루어지는 장소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요청한 것이다. 이 연주회 시리즈가 청중과 연주자들 양쪽 모두의 지지를 얻으며 30년을 롱런해 온 비결 가운데 하나다.

호날두의 노쇼와 같은 사태는 수도권과 지역의 문화적 불평등 관계를 배경으로 한국 내에서도 유사한 방식으로 재연될 수 있다. 수도권 중앙 무대에서 활약하는 스타와 셀럽, 유명 연주자들은 어떠한 태도로 지역을 방문할까? 그것은 많은 부분 기획 단계에서 좌우된다. 장소의 특수성을 고려하면서 수평적 만남을 이끄는 상호 배려와 감정적 조율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