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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에 대한 음험한 향수
[윤영기 사회부장]
2018년 07월 18일(수) 00:00
“촛불 집회 측에서는 (탄핵이) 기각되면 혁명을 하겠답니다. 태극기 집회에서는 인용되면 내란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마침 보수 진영에서 계엄령도 요구하는 판국이잖아요. 극약 처방을 준비해야 합니다. 나라가 있어야 국민도 있지요.”

최근 공개된 국군기무사령부의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문건을 읽다가 그 첫머리에 등장하는 ‘현상 진단’을 토대로 떠올려 본 작성자들의 가상 대화다. 억측일지라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고서는 ‘계엄 문건’을 만든 군(軍)의 속내를 도대체 읽어 낼 길이 없다. 대명천지(大明天地)에 이런 문건을 만든 사람들이 다름 아닌 대한민국 국군이라니. ‘단지 검토 문서일 뿐’이라고 발뺌하지만 나라가 벌집을 쑤셔 놓은 듯 시끄럽다. 당연한 일이다. 제주 4·3을 비롯해 4·19 학생의거, 5·16 쿠데타 등 무려 11차례 계엄 치하를 겪었기 때문이다. 불과 38년 전 민주주의에 족쇄를 채우는 비상계엄령 전국 확대에 반발해 일어난 항거가 5·18민주화운동이다. 계엄군이 자행한 만행의 희생자들이 국립 5·18민주묘지에 누워 있는 영령들이다. 무덤에서 치를 떨 것이다.

계엄 문건의 생산지는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로 다름 아닌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의 후신이다. 전두환은 보안사의 법적 활동 범위인 대공방첩, 군 내부자 반란 조사 등을 벗어나 금단의 경계를 유린했다. 80년 보안사령관을 꿰차고 광주 5월 학살을 진두지휘, 권좌에 올랐다. 당시 2군사령관 진종채, 수경사령관 노태우, 20사단장 박준병 등 5월의 피를 묻힌 장본인들도 줄줄이 이 부대의 장을 거쳤다.

‘보스’ 전두환에게 충성했던 군인들은 권력을 보위하며 단맛을 탐닉했다. 이들이 떠난 뒤에도 보안사는 1988년 ‘511분석반’을 꾸려 군에 불리한 내용을 삭제하고 역사를 날조하는 등 5월의 피를 지우고자 했다. 보안사 소속 윤석양 이병이 1990년 민간인 사찰을 폭로하자 보안사는 뭇매를 맞은 뒤 기무사로 명칭을 바꾸고 악명 높던 보안사 서빙고 건물도 헐리게 됐지만, 그 버릇은 여전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세월호 유족 사찰 의혹, MB정부 댓글 부대 가동 의혹 등 민간을 침탈해 온 이들의 관성은 질기고도 길다. 한마디로 역사의 퇴보다.

기무사의 퇴행적 사고와 음험한 향수는 13장짜리 계엄 문건(계엄사령부 편성표)에 짙게 묻어난다. 계엄사령관(육군참모총장), 합동수사본부장(기무사령관), 계엄군사법원장(국방부 고등군사법원장) 등 주요 보직을 맡을 직책이 적시돼 있다. 검토 단계라면 이들 보직은 당연히 빈칸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계엄법과 시행령에 따르면 이들 보직은 대통령, 국회의 동의를 거쳐야 임명할 수 있는 자리다. 이 자리를 임의로 채웠다는 것은 이미 정해 놓고 집권자를 겁박해 계엄을 단행했던 선배들의 협잡을 떠올리게 한다.

기무사 입장에서 계엄은 통렬하게 반성해야 할 역사가 아니라 벤치마킹해야 할 전투 교범이었을 뿐이었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5·16, 12·12가 그렇듯 잘만 하면 권력을 쥘 수 있다는 군의 탐욕을 자극했을 것이다. 계엄이라는 멍석을 깔고 권력의 장단에 맞춰 칼춤을 추면 영달을 누릴 수 있다는 가당치 않은 생각 말이다. ‘계엄 문건’은 대한민국 역사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린아이 손잡고 언 손을 호호 불어 가며 가냘픈 촛불을 들고 있는 시민들에게 ‘계엄’을 들이댈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문화 비평가 르네 지라르는 이런 의문에 어렴풋이 답을 준다. “욕구 불만의 폭력은 항상 대체용 희생물을 찾으며, 결국 찾아낸다. 욕망을 유발한 대상이 정복·쟁취 불가능할 때 폭력은 그 대상을 폭력을 초래할 아무런 명분도 없는 다른 대상으로 대체한다.”

계엄의 봉인이 해제됐을 때 ‘군의 생태’를 가늠할 수 없다는 점은 더 비관적이다. 80년 5월 광주에서는 3·7·11 공수부대를 포함해 줄잡아 3000여명의 군인이 ‘명령’에 따라 시민들을 학살하고 잔인하게 진압했다. ‘명령’으로 양심·가책·속죄까지도 삭제되거나 유보됐다. 당시 부대원 중에 발포 명령을 거부하거나 무차별 진압을 거부하고 항명한 군인이 있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상부의 명령에 따라 광주 시민에게 총질을 했던 군인들은 단지 ‘명령’을 충실하게 이행했다. 그 뒤에 숨어 ‘셀프 면죄부’를 받고 속죄까지도 면제됐다.

이런 범죄의 유대가 아직 군에서 작동하고 있다면 비극이다. 아직 그 군대의 맹목적인 폭력성이 소멸됐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계엄 문건보다 이게 더 무섭다. 계엄 문건은 ‘인간이 변하지 않는 한 역사가 진보하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일깨운다.

/penfoot@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