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헌권 광주 서정교회 담임목사] ‘오월 어머니상’을 주신 어머니들께 드리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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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헌권 광주 서정교회 담임목사] ‘오월 어머니상’을 주신 어머니들께 드리는 편지
2018년 05월 18일(금) 00:00
어머니! 여름으로 가는 길목에 이팝나무 흰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습니다. 그동안 안부 한 번 제대로 전하지 못한 저에게 소중한 ‘오월 어머니상’을 주셨습니다.

오늘은 광주민중항쟁 38주년 기념일입니다. 며칠 전부터 ‘보아라 오월의 진실 불어라 평화의 바람’을 슬로건으로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하얀 옷을 입고 기념식에 가시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아픔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음을 보았습니다.

‘어머니’ 이름만 불러도 울컥합니다. 그만큼 어머니 이름 안에는 슬픔과 고통이 묻어져 있지요.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는 최대의 고통자라는 뜻이라고 했지요.

또한 아르헨티나 마요 광장에서는 30년이 넘게 매주 목요일 오후 3시에 어머니들이 행진을 하고 있어요. 잃어버린 자녀들에 대한 사랑과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한 강철 같은 ‘5월 광장의 어머니회’의 행진입니다.

광주의 5월 어머니들도 38년이 지나도록 그 아픔과 고통을 감당하기가 버겁기만 하지요. 5월 어머니! 맨몸으로 5월을 지키며 살았던 어머니, 무슨 일만 있으면 닭장차에 실려가 길바닥에 내던져지는 모진 세월을 살았던 어머니들을 저는 두 눈으로 보았습니다.

어머니! 당신들은 시대에 온몸과 마음을 던지며 치열하게 싸워서 한 걸음 한 걸음 역사의 진보를 일궈냈습니다. 특히 1980년 5월 사랑하는 가족이 희생을 당했지요. 또한 서슬 퍼런 군부 독재에 아랑곳없이 민주화 투쟁 대열에 앞장섰습니다. 마음속에 묻은 고통을 치유하고 노후의 외로움을 달래고자 ‘오월 어머니집’에 모여 안부를 묻고 서로 보살피는 일을 하시지요. 뿐만 아니라 오월 정신인 ‘민주, 인권, 평화’를 부단히 계승해나가는 공간이 바로 오월 어머니집입니다.

지금도 오월 어머니들은 옛 도청 원형 보존을 위한 농성을 600일 이상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들과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 때, 차가운 겨울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스팔트에 앉아 있었던 시간이 떠오릅니다. 그때 어머니의 따스한 손을 잊을 수 없어요. 무엇보다 몸 둘 바를 모르는 것은 부족한 저를 오월 어머니상 수상자로 추천 선정해 주신 일입니다. 지난 2007년 제정돼 해마다 시상해온 오월 어머니상은 저 외에도 옛 전남도청 복원 대책위원회와 서유진 인권 활동가를 선정해주셨습니다.

저를 추천하신 어머니는 “장헌권 목사는 목사 이전부터 역사 의식을 갖고 불의에 침묵하지 않으며 고통 받는 현장에서 활동을 하는 종교인이다. 목사가 된 이후에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과 함께, 특히 광주민중항쟁 때 비록 시민군으로 활동은 못했지만 살아남은 자로서 역사에 대한 부채 의식을 가지고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애썼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목사로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이후에는 유가족과 함께하며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명예 회복, 추모 사업에 남다른 열정으로 참여했다….”(민주주의 광주행동 박경린 공동대표)

그러나 저는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분단된 한반도에서 민주주의 회복과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일에 힘을 보태는 것은 목회자로서 당연한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분단의 희생양이 된 장기수들을 돕고 소년원과 교도소에서 선교 활동을 하는 것도 종교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책무라고 봅니다.

지난 12일 시상식 때 어머니들 앞에서 저는 이렇게 수상 소감을 말했습니다. 광주민중항쟁보다 세월호 참사보다 더 무서운 것은 기억하지 않고 잊어버리는 것이라고요. 그날 저는 다짐과 함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큰절을 했지요.

오월 어머니상을 오월 어머니들과 세월호 엄마들에게 바칩니다. 그리고 지금도 못난 목사 자식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시는 김복례(86세)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안부 인사로 가름합니다. 모두 다 건강하길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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