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가 아름다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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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가 아름다운 이유
2017년 12월 06일(수) 00:00
결혼한 지 20년이 넘도록 변변한 여행이라곤 해본 적 없는 아내가 가장 가보고 싶어하는 나라가 스위스란다. 학창시절부터 벽에 걸린 알프스의 사진을 보며 막연히 동경해 왔다니 언젠가 꼭 같이 가봐야지 생각해 왔지만, 사나흘 만에 다녀올 거리도 아닌데다 비용 또한 만만치 않은 곳이다.

만년설에 뒤덮인 유럽의 지붕, 스파와 스키, 하이킹을 즐길 수 있고 동화 속 하이디가 손짓할 듯한 알프스. 순백의 눈 위에 펼쳐진 목가적 풍경 속에는 멀리 눈 덮인 산과 드넓은 초지, 야트막한 울타리 속에서 풀을 뜯는 얼룩빼기 젖소, 빨간 지붕의 그림 같은 마을이며 창가에 놓인 조그만 화분들. 사진작가나 영화감독이 아니라도 누구나 연상해낼 수 있는 이 풍경은 사실 스위스 국민들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스위스 연방헌법에서는 국민에 대한 연방정부의 기본 의무를 식량 공급, 천연자원 보존, 농촌 경관 유지, 인구 분산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토이용계획에 의해 인구 분산 정책을 추구하지만 스위스는 농업·농촌을 통해 인구 분산을 도모하고 있다. 농업이 국가의 중요한 기간 산업이므로 필요한 경우 사회적 시장경제 체계를 반영하도록 하고 있으며, 그 대표적인 제도가 직접 지불제다.

이는 식량 안보와 경관 보전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토양 보호와 농약 사용의 제한, 윤작과 동물 보호 등의 조건을 충족하면 1인당 7800만 원까지 수령할 수 있다. 농가당 평균 수령액은 6000여만원, 배우자나 부모가 농업에 같이 종사한다면 배 가까이 받을 수 있으며, 직접 지불제 예산이 농업 예산의 80%를 넘는다. 그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어도 도시민들이 불평하지 않는 것은 알프스의 목가적 풍경을 만드는 주인공이 바로 농업인들이며, 그들이 관광 스위스를 유지시켜주는 주체라는 믿음 때문이다.

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들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알프스 산맥은 보기엔 좋아도 경사가 심한 산악인데다 빙하로 뒤덮여, 영국이나 독일에 비해 평균 경지면적이 적고 불리했다.

시장 개방에 농업인 수는 급감하고 농촌이 황폐화되어 가면서, 그들은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고 알프스의 경관을 유지해주는 농업·농촌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눈 덮인 알프스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빨간 지붕 농촌 마을과 목초지에서 뛰노는 목동과 소떼가 없다면, 관광객이 줄어들고 경제마저 어려워진다는 것을 체감하고서야 농업 보호를 위한 헌법 조문 반영에 나선 것이다.

헌법에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반영하고 있는 국가는 비단 스위스만이 아니다. 포르투갈, 헝가리, 그리스, 이탈리아 등이 농업 관련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포르투갈은 농업 정책의 기본 방향을 농산물의 안정적인 공급과 타 산업 부문과의 균형 발전 이외에도 중소규모 농업종사자 협동조합과 농업 노동자 사업장에 대한 우선적 지원을 명문화하고 있다. 또한 농산물 마케팅과 판매 지원, 위험 보상을 위한 지원 제공 등을 열거하여 농업인들이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농업 가치를 헌법에 반영하자는 농협의 서명운동이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시작한지 30일 만에 이뤄낸 성과이니 놀라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 농업인과농민 단체는 물론이고 국회의장을 비롯한 여야 의원과 자치단체장들이 앞장서고 학생, 상인뿐 아니라, 대기업들까지 참여했다니, 농업·농촌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와 관심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다행히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에서도 헌법 조문 초안에 농어업의 공익적 기능을 담은 조문을 반영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러나 현행 헌법에서도 경자유전의 원칙과 국가의 농어업·중소기업 보호와 육성 의무를 명시하고 있는 만큼, 선언적 의미의 공익적 기능 추가가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농업이 가진 공익적 가치에 대해 보편적이고, 국제적 기준에 맞는 만큼의 지원과 그 보상에 합당한 의무를 명시할 수 있어야 농업·농촌은 물론 국가발전의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30년 만에 다듬어지는 헌법 개정안이 1000만 국민의 염원을 담아 세계가 참고할 금과옥조로 만들어지기를 기대하고 소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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