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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행순 전남대 명예교수] 나이 들어 외국어라니
2017년 10월 25일(수) 00:00
알렉산더 윌리엄은 50대 후반의 미국인으로 프랑스어를 배우고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13개월의 경험을 ‘나이 들어 외국어라니’에 실감나게 풀어놓았다. 그는 프랑스어를 배우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열정을 훨씬 능가하여 프랑스어 이메일과 대화사이트에 가입하고 프랑스어만 사용하는 몰입 교육도 받았다.

그는 더 나아가 촘스키의 언어학 이론을 공부하고 프랑스어 배우기 전과 후, 자신의 뇌의 활성 부분을 비교하는 뇌과학에까지 접근하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던 중, 심장병이 생겨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두 번째 대수술을 앞두고 자신에게 정직하고 진지하게 질문한다. “내가 죽기 전에 하고 싶던 일이 정말 프랑스어를 배우는 것뿐이었나?”

필자는 4년 가까이 네팔에 살면서 네팔어를 배우기 위해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학원 수강은 기본이고 단어장을 만들어 외우고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수업시간 외에는 내게 네팔어를 하라 주문한다. 귀가 열리도록 네팔어 교재를 스마트 폰에 녹음하여 부엌에서 일할 때, 산책할 때, 운동할 때, 심지어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녹음을 듣곤 한다.

네팔어는 우리말과 어순이 같아서 쉽다는 이들도 있는데 오랫동안 공들인 영어가 훼방을 놓는다. 또 성(남·여, 사물), 수(단수, 복수), 격(존칭, 동격, 하대 등)과 시제(현재, 과거, 미래, 분사, 진행형 등)에 따른 어미 변화들이 어지러워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어미 변화 표를 만들어 정리하고 외워도 각 상황에 맞게 활용하지 못하여 말끝을 얼버무리기 일쑤다.

어느 날, 나는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을 찾아가서 내가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테니 네팔어 수업을 듣게 해달라고 청했다. 교장은 흔쾌히 승낙하고 나를 2학년에 넣어 주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네팔어는 뒷전이고 나는 한국어 교사로 자리매김하여 꽤 인기 있는 선생님이 되었다. 동네 아이들도 나를 “선생님, 선생님!”하며 따른다.

이웃집 아이는 2년 전 4월 27일에 태어났다. 내가 남의 아이 생일을 기억하는 것은 그 애가 태어나기 이틀 전에 겪은 진도 8.1의 네팔 대지진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 아이의 네팔어가 나보다 유창한 것을 보면서 내 자신이 무척이나 한심스러웠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내가 두 살배기보다 네팔어를 못하는 이유가 나이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모국어를 배우는 유아들은 태어나기 전에 이미 10개월의 듣기 훈련을 마친 상태에서 가족이라는 팀, 특히 엄마의 사랑 속에 지속적 몰입 교육을 받는다. 반면에, 나는 수업료로 맺어진 교사와 교과서 문법으로 일주일에 몇 시간씩 네팔어를 공부한다. 학습에 투입되는 총 시간을 비롯하여 모든 면에서 네팔 아이보다 사뭇 열악한 상태에서 학습중이다.

저자는 사춘기를 훨씬 넘기고 그의 나이에 시작한 외국어는 처음부터 실패할 운명이었음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만큼 프랑스어를 익히진 못했어도 인생이 훨씬 풍요로워졌음을 깨닫고, “늘지 않아도 괜찮아, 후회 따윈 없어”를 책의 부제로 달았다.

나 역시 네팔어를 배우느라고 투자한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서 정직하고 진지하게 질문해야 함을 느낀다. 나는 어디까지 왔으며 언제까지 지는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도 시간과 돈과 노력을 쏟아 부으면서 네팔어와 씨름할 것인가?

네팔 숫자는 100까지 제각각이어서 외우기가 무척 어렵지만 나는 이제 숫자를 셀 수 있게 되었고 생존에 필요한 생활 언어는 어느 정도 습득한 것도 같다. 그래도 더 많이 배우고 싶은 것은 쓸데없는 욕심일까?

생의 벼랑 끝에 서 본 저자와 달리 나는 자신에게 온전히 진실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설픈 대답을 한다. 네팔어로 성경을 읽고 네팔 친구들에게 네팔어로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또 강의 중에 절반쯤은 네팔어를 쓰고 싶고.

딱히 꼭 하고 싶은 일도 없는데 이런 사명감 비슷한 이유라도 있어서 배움을 계속하면 다행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