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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현의 문화카페] 그래도 내일의 해는 뜬다
2016년 12월 28일(수) 00:00
“엄한 현실이 갈라놓았던 자들을 /신비로운 그대의 힘은 다시 결합시킨다/그대의 고요한 나래가 멈추는 곳/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노라…”(시인 프리드리히 실러의 ‘환희의 노래’중)

12월의 어느 날, 23살의 가난한 음악가 베토벤(1770-1827)은 한편의 시를 읽고 심장이 내려 앉는 듯한 전율에 휩싸였다. 인류의 평화와 화합을 노래한 시 구절이 각박한 현실에 지쳐 ‘드러눕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뒤흔든 것이다. 벅찬 감동을 주체하지 못한 베토벤은 ‘절친’에게 편지를 보냈다. “친구여, 나는 이 시를 한 구절도 빠뜨리지 않고 꼭 언젠가 음악으로 만들겠네.”

하지만, 베토벤의 계획은 물거품이 될 위기를 맞는다. 26살 때부터 괴롭히던 귓병이 악화돼 서른 살 무렵엔 거의 들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음악가에게 청력 상실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

아니나 다를까. 32살 때 자살을 시도하며 쓴 유서에는 당시 절망이 어떠했는지 생생하게 담겨 있다. “이 재앙은 그 어떤 것보다 예술가에게 치명적이다. 남들보다 훨씬 풍성해야 할 감각 하나가 없다니…. 죽음 이외엔 다른 길이 없도다.”

그러나 그는 초인적인 의지로 자신의 운명과 맞서 싸우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나무 작대기 한끝은 피아노 위에 닿게 하고, 다른 한끝은 입에 물었다. 입술의 미세한 떨림을 통해 피아노의 진동을 느끼며 악보를 채워나갔다.

그로부터 31년이 흐른 1824년 5월 7일 오스트리아 빈 극장. 연주가 끝나자 환호와 박수갈채로 객석이 떠나 갈 듯했다. 하지만 무대 위에선 단 한 사람만이 객석을 등지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청력을 잃은 베토벤이었다. 젊은 여가수가 다가가 그를 돌려세웠다. 거장에게 경의를 표하는 청중들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이 초연된 이날은 음악사에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으로 꼽힌다. 특히 실러의 ‘환희의 노래’를 가사로 쓴 4악장 ‘환희의 송가’는 교향곡으로는 최초로 대규모 혼성합창을 도입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일 년 중 베토벤의 ‘합창’이 유난히 많이 울려 퍼지는 때가 이맘 때다. 유명 교향악단들이 헨델의 ‘메시아’와 ‘합창’을 레퍼토리로 송년무대를 장식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온갖 시련 속에서도 불후의 명곡을 탄생시킨 악성(樂聖)의 ‘인간승리’가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세밑과 맞아서다.

다사다난했던 2016년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불황의 깊은 그늘과 희대의 민간인 국정농단까지 겹친 금년처럼 격동의 해가 있었던가 싶다. 이럴 때 고단해진 심신을 ‘합창’ 교향곡으로 추스려 보는 것은 어떨까? 마침 오는 31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제야음악회에서 광주시향이 베토벤의 ‘합창’ 4악장 ‘환희의 송가’를 연주한다. 만일 공연장 찾는 게 여의치 않다면 CD나 음원으로 내일의 ‘희망’을 가슴에 품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난청이란 ‘절대 절망’ 속에서도 환희를 잉태한 ‘불멸의 작곡가’를 떠올리면서.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