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 피카소 그리고 G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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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 피카소 그리고 GB
2024년 09월 03일(화) 19:25
“내가 만든 도자기를 모든 시장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부르타뉴 지방의 마을이나 다른 어디에서나 여인들이 우물에 물을 길어 갈 때 내가 만든 물병을 들고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전시관에 들어서자 화이트 벽면에 피카소 미술관의 큐레이터 요안 포를라르가 쓴 글이 눈에 띈다. 천재화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가 생전 한 말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소박하기 짝이 없다. ‘아비뇽의 처녀들’, ‘게르니카’ 등 현대미술사의 문제작들을 그린 거장이었지만 자신이 직접 구워낸 도자기들이 서민들의 삶과 함께 하기를 희망한 것이다.

화가 피카소로만 알고 있는 이들에게 ‘도예가 피카소’는 ‘신선한’ 충격이다. 그래서일까.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문화창조원에서 열리고 있는 ‘이건희 컬렉션:피카소 도예전’(7월16일~9월29일)은 개막과 동시에 거장의 또 다른 면모를 엿보려는 관람객들로 연일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전남도립미술관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접할 수 있다. 여수 출신의 식객 허영만(75) 선생의 만화 인생 50년을 되돌아 보는 특별 초대전 ‘종이의 영웅, 칸□의 서사’(8월6일~10월20일)가 성황리에 열리고 있어서다. 특히 관람객들 사이에는 20~30대의 MZ 세대들이 눈에 많이 띄어 흥미롭다.

그도 그럴것이 요즘 젊은이들에게 허영만 선생은 본업 보다는 부업으로 더 유명(?)하다. ‘식객’, ‘타짜’, ‘오!한강’, ‘각시탈’ 등 내놓은 작품마다 대박을 낸 만화계의 거목이지만 6년전 한 TV 프로그램의 ‘백반기행’을 맡으면서 맛집 전도사로 큰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그의 손때 묻은 원고와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로 재탄생한 대표작 등 2만 여점을 보면 ‘종이의 영웅’에 대한 경외감이 절로 느껴진다. 무엇보다 인상적인건, 두 세줄의 문장과 한 두점으로 그린 ‘영만의 하루’다. 작업실로 출근해 하루 종일 만화를 그린 후 다시 책상앞에 앉는 게 전부이지만 소소한 일상에 대한 단상들은 미소를 머금게 한다.

광주와 광양에서 열리고 있는 피카소전과 허영만전은 공통점이 있다. 다름 아닌 제15회 광주비엔날레(GB·9월7일~12월 1일)와의 ‘시너지’를 노린 기획전이라는 것이다. 사실, 미술애호가들에게 광주비엔날레는 설레임의 대상이다. 특히 타 지역에서 광주를 찾는 이들에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문화나들이다. ACC와 전남도립미술관이 비엔날레 관람객들을 겨냥해 피카소와 허영만전을 야심차게 준비한 것도 그 때문이다. 관람객 입장에서도 비엔날레 이외에 색다른 볼거리를 두배로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일석이조다.

‘판소리-모두의 울림’을 주제로 내건 광주비엔날레가 오는 7일 개막을 시작으로 90일 간의 대장정에 돌입한다.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는 광주 비엔날레는 판소리를 모티브로 인류 보편적인 이슈들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소리의 풍경화’(Soundscape)를 선보인다는 점에서 기대를 갖게 한다. ‘비엔날레도 보고, 피카소도 만나고’. 올 가을 광주·전남에서 펼쳐지는 미술축제의 주인공이 되는 건 어떨까.

<문화·예향국장,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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